친구이야기
"얘들아 니네 뭐 먹고 싶은지 엄마가 물어보래.”
어제 한국에 도착한 H에게 메시지가 왔다. 이번주 금요일에 횡성에 사시는 H의 부모님 댁에서 하루 묵기로 했는데 어머니가 맛있는 밥을 해주신단다.
“나 그거 예전에 너희 엄마가 해주신 아구찜!”
눈치없고 염치없는 나란 인간, 애석하게도 입맛은 살아있다.
"엄마가 여기 아구가 없대. 아마도 그건 힘들듯"
"응응. 그렇지? 나도 너무 했다 싶었어. ㅎㅎ"
염치가 없어도 포기는 빠르다.
H는 중학교 학년 때부터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깔깔거리며, 함께 어울려 다녔다. 나는 속 깊으면서도 재미있는 H가 좋았다. 중 3때 전학을 간다고 할 때는 얼마나 서운했는지.
새로 이사간 곳에서 H 어머니는 아구찜 가게를 시작하셨다. 나는 그 가게에 놀러가서 생전 처음으로 아구찜을 먹었는데 그 맛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나를 위해서 맵지 않으면서도 맛있게 만들어주신 그 아구찜의 땡기는 맛과 통통한 콩나물, 처음 먹어본 미더덕의 톡 터지는 식감까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H가 이사를 간 뒤에도 우리는 여전했다. 전화로 내내 수다를 떨다가 방학이면 종로에서 문제집을 사고 함께 김떡순을 사먹으면서 그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와서는 나와 잘 맞는 또 다른 좋은 친구 S를 만났다. S는 신기하리만치 나와 달랐다. 운동 신경도 좋고 여러가지에 관심이 많았다. 학점만 신경쓰면서 쉬운 수업을 골라 듣는 대신 정말 관심있는 수업을 찾아서 다른 단과대까지 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대에서 전공을 체대에서 부전공을 마친 S는 더 공부를 하고 싶다며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나의 절친 S와 H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성격 좋은 친구들이라 금방 서로 친해졌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어울려 다닐 것 같았지만 사는 건 늘 예상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석사를 마치고 H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수화기를 통한 기나긴 수다 끝에 “만나자"라고 약속을 잡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스물 아홉, 그 즈음에 S는 박사논문을 쓰면서 편찮으신 부모님도 돌보느라 바빴다. 나도 회사에 취업해서 3년차의 고비를 맞으며 돈을 버는 일에 허덕이고 있었다. 한 시절의 끝이었다.
15년이 흘렀다. 나는 그 사이 오래 사귄 친구와 결혼을 하고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몇 달 전 마흔 셋 나이에 처음 이직을 하고 낯선 곳에 적응하려고 여전히 분투 중이다. S는 박사를 마치고 지금은 재활 로봇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개발하고 인증을 받고 해외 학회에서 전시도 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인다. 그 와중에도 주말이면 바닷가에서 부모님 바람 쐬게 해드리는 부지런하고 착한 딸이다. H는 미국 평가기관에서 아이들의 시험점수를 평가하는 일을 한다. H는 1년에 한번 정도는 한국에 들어왔다. 올 때마다 우리는 얼굴이라도 꼭 보았다. 아이를 키우느라 시간이 자유롭지 않은 나를 위해 H가 경기도 구석의 우리집까지 얼굴을 보러 와 주어서 가능했다.
H가 바쁜 일정으로 한국에 오지 못한지 이 년쯤 되었을 때 코로나가 터졌다. 그러니까 올해 만나면 자그마치 오년 만이다. H가 오년 만에 한국에 온다. 우리는 진작부터 만날 계획을 세웠 두었다.
마침내 H가 도착한 올해 초, 겨울바람 부는 어느 금요일. 나와 S는 H의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강원도 집으로 H를 만나러 갔다. H가 미국으로 가고 몇 해 뒤 부모님들은 횡성에 예쁜 보금자리를 마련하셔서 횡성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신다. S의 능숙한 운전으로 밤이지만 많이 늦지 않게 도착했고 부모 님은 우리 등을 토닥이며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다시 중학생이 되어 친구집에 놀러 간 기분이다. 부모님이 난로에 바로 구워주신 군밤,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몸을 녹이고 옥상에 올라가서 함께 별을 구경 했다. 강원도 하늘에는 원래도 별이 많은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점점 더 많아진다. 멀리 반짝이는 별들 사이 뿌옇게 은하수도 보였다. 우리는 목이 아프도록 함께 하늘을 보았다.
"다음에는 우리 돗자리 깔고 누워서 오래 별 구경하자."
좋은 시간은 길어도 아쉽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어머니가 아침 먹으러 오라고 부르신다. 식탁에는 H의 어머니가 직접 키운 재료로 만든 청국장과 김치찜이 모락모락 김을 올리고 있다. 갖가지 나물과 김치 반찬이 먹음직스럽다.
"잘먹겠습니다!" 하고 밥을 먹으려는데 어머니가 큰 접시에 무얼 더 담아서 내오신다 아구찜이다 수줍은 표정으로 맛이 있진 않다고 그래도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아! 철없는 내가 한 말 때문에 아구 사러 동네 농협이며 마트며 엄청 돌아다니신 모양이다.
25년쯤 전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친구의 엄마가 갑자기 장사를 시작했을 때 막막했을 마음과 바쁜 가게에 놀러 온 딸 친구에게 따로 음식을 해주신 따뜻함 그리고 , 이제는 마흔도 훌쩍 넘은 딸 친구를 먹이기 위해 아픈 무릎으로 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하셨을 수고로움 같은 것들이 말할 수 없는 느낌이 되어 입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먹성을 뽐내면서 정말 많이도 먹었다. 그렇게 먹어도 속이 편한 게 역시 엄마들의 집밥은 다르다. 따뜻한 아침으로 몸에 온기가 돈다.
우리는 근처를 산책하고 사과 도 한 알 나눠 먹고 부모님이 싸주신 옥수수와 군고구마를 야무지 게 챙겼다 길을 나서는데 H의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다른 거 없어. 애들 잘 크고 가족 건강하면 그게 최고야. 잘 지내거라"
하셨다.
S네 집이 있는 속초로 출발한다. 우리는 거기서 또 하루 여행할 계획이다. 내일은 함께 일출을 볼 것이다. 집에는 나를 기다리는 내 오랜 친구인 남편과 두 딸이 있고 여기에는 함께 잘 자라온 친구들이 둘이나 있다. 이 정도면 잘 살아온 것 같고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출발하는 마음이 울렁이도록 설렌다. 또 한 시절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