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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도, 있을 건 다 없어도

뽀송한 날들 - 포일도서관

by 원호

우리 아파트는 위치가 참 좋다.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서울 구치소 옆이라서 그런건 아니고. (물론 택시탈 때는 더 없이 유용하다.) 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는 포일어울림센터라는 건물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자리에는 원래 농어촌 기반 공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둘째를 임신한 채로 첫째 손을 잡고 농업기반공사로 소풍을 오곤 했다. 학의천의 돌다리를 건너 공사의 입구까지 빙 둘러서 오려면 꽤 멀었는데도 공사의 탁트인 공간이 좋아서 봄에는 나들이를 갔다. 얼마 후 전국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공사들이 한참 세종시로, 나주로, 또 더 먼 지방 어딘가로 이사를 갈 때, 여기 있던 농어촌 공사도 이전을 했다. 덕분에 우리 첫째는 다정한 친구 몇명을 떠나보냈다. 농어촌 공사가 이사를 간 자리는 몹시 넓었다. 그래서 백화점이 들어온다느니 아울렛이 들어온다느니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는데, 결국은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해서 처음에는 나를 포함한 동네 사람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도 백화점 앞에 살아보나했는데, 슬리퍼 신고 백화점 가보나 했는데... 에라이.


실망이 무색하게도 나는 삼년전 이 아파트에 이사를 왔다. 아파트를 지으면서 건설사가 의왕시에 기부체납했다는 포일 어울림센터가 바로 아파트 옆에 지어져있다. 7층짜리 작고 야무진 이 건물은 이름처럼 동네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다.


일층에는 시니어 바리스터분들이 커피를 만들어주시는 따뜻한 커피숍이 있다. 아침에 가면 커피와 치즈베이글 세트가 단돈 사천원. 평일에 쉴 수 있는 날이면 나는 이미 행복하지만, 책하나 들고 햇볕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서 커피와 베이글을 먹는 호사를 누리면 고급 브런치도 안부럽다.


이층에는 아이들이 쉴수있는 청소년문화의집과 상담센터가 있다. 내가 어릴 때는 놀 곳이 참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가열차게 놀았는데,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동네 골목과 공터를 누리고, 중학교 때는 노래방을 즐겨갔다. 요즘은 손바닥 만한 땅도 놀릴수 없어 건물이 빼곡히 차지하고 있으니 공터는 없지만, 동네마다 청소년 문화의 집이 있다. 여기는 청소년 지도사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안전한지 지켜봐주고 활동을 도와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땅콩쇼파에 누워서 만화책을 보거나, 오락기 앞에서 신나게 오락을 한다. 나와 딸들도 여기와서 닌텐도를 많이 연마했다. 친구들과 함께 온 아이들은 포켓볼도 치고, 코인노래방 가서 노래도 부른다. 한곡에 100원. 출출할 때, 라면 끓여먹는 기계는 덤이다.


바로 앞에는 우리 첫째가 이용했던 상담센터가 있다. 친구들과 싸우고 학교에서 이해받지 못할때, 이 선생님이 우리 첫째 마음을 많이 다독여주셨었다. 속이 편해지고는 따로 인사도 안드리고 그만가겠다고 했는데, 전화드리니 상담선생님은 아이들은 원래 불편감이 없어지면 그렇다고, 아이가 편해져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한층 더 올라가면 내가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바로 그 공간 포일 도서관이 있다. 포일 도서관은 조그마한 도서관이다. 갑자기 떠오른 읽고 싶은 책을 검색해보면 늘......없다. 거의 예외없다. 그럼에도 나는 여기가 좋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낮은 쇼파들이 몇 개 있고, 정성스레 골라놓은 그림책이 꽂힌 책장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여기 눈길을 주는 법이 거의 없었는데, 어느 한가한 날, 쇼파에 앉았다가 깨달았다. 동화책 꽂이 옆으로 매달 동화책 한 권을 골라 벽면을 다르게 장식해 놓은 것을. 그러고보면 그림책 뒤의 작은 병풍에도 매달 꾸밈새가 달라지고 있다. 피카소의 그림이 줄지어 걸려있을 때도 있고, 인상파의 그림이 걸려있을 때도 있다. 지금은 노랗고 강렬한 고흐의 해바라기가 걸려있다. 때에 맞추어 명절 그림이나 크리스마스 장식도 빠지지 않는다. 뒷편 전면유리로는 언제나 은은한 햇살이 걸려있고, 맞은 편 공원의 초록에 눈이 편안하다.


지난 7월 어느 주말에는 더위를 뚫고 도서관에서 하는 특강을 들으러갔다. 이런 날은 더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7층 대강의실에서 강의가 열린다. 층고가 높아서인지 공원과 상가건물이 한눈에 들어와 눈이 시원해지는 7층에는 때로는 영화평론가, 때로는 교육전문가 등 믿고 들을 수 있는 강의들이 진행된다. 이번 강의는 특히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읽고 싶었던 "살롱드경성"이란 책이 있었다. 책을 사주는 복지가 있었던 이전 회사에서 해당 책을 신청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반려가 되었고 나는 그 사실을 퇴사할 즈음에나 알았다. 그래서 결국은 아직 읽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 강사의 강연이라니, 이건 못참지. 집이 가까운데다 날이 너무 더워서 늦장을 부리다가 겨우 시간을 맞춰서 대강의장 앞에 도착했다. 1층에서부터 안내 팻말이 세워져 있어 마음이 설렜다. 강의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해서 나는 맨 뒤에 앉았다. 드디어 강의를 시작하려나보다. 도서관의 사서분이 강사분을 옆에 세워두고, 재미없고 길게 톤의 높낮이도 없이 열심히 저자분의 약력을 읽어내려갔다. 내가 심드렁하게 필기구와 연습장을 꺼내는 동안 소개가 끝나고 드디어 연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제가 왜 여기 오게됬는지 아세요? 방금 저를 소개해준 저 공무원분이 메일을 쓰셨는데, 제가 여기 강의를 왜 와야하는지를 너무 정성스럽게 계속 메일로 주셔서 정말 안 올 수가 없었어요.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분에게 박수한번 쳐주세요."


그제서야 나는 토요일 아침 열심히 강의실을 준비했을 사서분이 눈에 들어왔다. 투박한 표정으로 손사레를 치고 있는 모습에 나는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강의는 생각한 것 보다 더 재미있었고 덕분에 나는 아직도 1930년대 경성에서 이상과 김환기와 그의 친구들의 발자국을 쫒는 중이다.


8월에 무더위를 피해 늘 시원한 도서관은 참 많이 붐볐다. 8월에는 7월 강연과 연계한 도서전시가 있었다. 도서전시래야 책장 한켠을 치우고, 사서분들이 정한 주체에 맞추어 책들을 전시하는 것이다. 도서 전시에는 팜플렛에는 정성스럽게 책의 표지와 제목들과 함께 이런 문구가 있었다.


예술이 삶이 되고 삶이 예술이 되다.

가장 헐벗고 참혹했던 순간에도 문학과 미술을 꽃피운 한국 근대 예술가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지난번 강의를 들은 후 읽고 싶었던 책들이 줄을 맞추어 전시중이었다. 내 마음을 읽은 듯한 전시 덕분에 나는 올여름 서촌과 종로와 북촌 어딘가 누군가 남긴 흔적들을 행복하게 헤매고 다녔다. 미술은 모르지만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인생이 흥미로웠고, 그 인생을 말도 글도 아니고 단 한장의 그림으로 남긴다는 것이 시보다도 더 시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3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그래쌤과 글쓰기 친구분들도 이 도서관에서 열었던 글쓰기 수업 덕분만났다. 코로나로 모두가 집에서 담을 쌓고 지나던 그 때, 인터넷으로 마주한 얼굴로도 학교보다 따뜻한 강의실을 만들고, 힘내서 뭐라도 써볼수 있게 해 준 나의 글쓰기 선생님!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도 재능기부로 우리에게 글 쓸 자리를 만들어주시는 다정한 선생님과 글쓰기 친구들로 나의 인생이 한 뼘은 더 넓어졌다.


내가 이 도서관을 좋아하는 것은 이 곳이 정성과 수고가 묻어나는 공간이기 때문인가보다. 중고등학생의 시험기간이 되면 구석자리까지 책상을 몇개라도 더 넣어서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보여 고맙다. 요즘은 저녁을 먹고 지호와 같이 도서관을 찾는다. 우리는 여기서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가끔 운좋은 날은 쇼파자리에 편안히 팔을 걸치고 앉아서 느긋하게 노을을 바라본다. 오늘도 이 도서관의 몇권없는 책들과 함께 나의 세계가 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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