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송한 날들 - 산책다녀온 날, 함께 글쓰는 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
글쓰는 모임에서 함께 글쓰는 선생님들께 썼던 편지입니다.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작년 봄에 쓴글을 꺼내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좀 전에 쓰던 아파트 장미 싸움 글을 완성하려고 보니, 아파트 앱에서 사람들이 싸움던 글이 떠오르고 괜히 기분도 쳐져서 제껴두었어요. 대신 저도 선생님들처럼 봄내음 나는 글이 쓰고 싶어져서 동네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세수 안 한 얼굴을 쓱쓱 문지르고, 모자 하나 푹 눌러쓰고, 학원가는 딸래미의 배웅을 핑계삼아 따라 나섰습니다.
선생님들께 저희 동네 두꺼비 올챙이를 보여드리려구요. 저희 집에서 육교를 건너고, 인덕원 IT 밸리라는 이름이 붙은 농협 IT 건물 근처로 걸어가다보면 호수라기엔 작고, 웅덩이라기엔 좀 큰… 아, 연못! 연못이 하나 있어요.
작지만 여기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사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파트가 통째로 들어간 연못에서 물고기들이 한가롭게 떼지어 다니구요, 그 위로 소금쟁이들이 능숙하게 미끄러집니다.
연못에는 제법 무시무시한 포식자도 있어요. 저 멀리 오리 한 마리가 물속으로 머리를 박고 배를 채우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여기 먹을 게 많아서 그런지 오리들이 통통하고 깃털에 윤기도 좌르르 합니다.
오늘은 귀여운 두꺼비 올챙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네요. 아마도 개구리밥과 연꽃 아래에서 신나게 몰려다니면서 헤엄치고 있을 것 같아요. 올챙이는 못 봤지만 몹시 반가운 모습도 보았습니다.
저기 수로로 물이 넘어가지 않게 누군가 작은 둑을 쌓고, 노란 꽃이 있는 키 큰 식물도 심어두었네요. 작년에 저 둑이 생기기 전에는 반대편 수로로 올챙이들이 기를 쓰고 넘어가서는 맹렬한 햇볕을 이기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했었거든요. 저희 둘째가 일회용 커피컵으로 물을 떠다 날랐는데, 별다른 소용이 없었어요. 올해는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아 안심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연못은 얼핏 자연 그대로 인듯하지만 누군가의 세심한 손길이 고민을 거듭하며 바쁘게 오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저거 난인가요? 저도 S쌤처럼 도시소녀였다보니… 아, 창포라네요. 이름만 익숙한 창포라니… 너 참 예쁜아이였구나!
여름 초입의 짙은 초록이 되기 전, 연두 빛 나무들은 꽃만큼 예쁜 것 같아요. 나무를 하나씩 하나씩 따로 떼어보면 참 잘 생겼더라고요. 잠시 앉아서 사진도 찍고 분위기 좀 내려니 벌레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네요. 이제 회의시간도 다가오고 슬슬 일어나 봐야겠네요.
짧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까 수업에서 보았던 그 꽃이 길에 예쁘게 피어있네요. 이름을 그새 잊어버렸어요. 저는 이름을 몰라서 아이들하고 후라이 꽃이라고 불렀었는데…
이렇게 예쁜데, 이름을 제대로 불러 줘야겠어요. 지난 달 수업에서 선생님이 어떤 예쁜 꽃의 이름을 몰라 한참 동동거리셨다는 말이 그렇게 달콤하게 들렸었는데, 어떤 기분이셨는지 알 것도 같아요.
돌아오는 길에 제가 이름을 아는 몇 안 되는 꽃나무, 아카시아 나무를 봤는데, 꽃은 이제 다 떨어지고 하나도 없네요. 누군가가 맛있는 아카시아 튀김을 해먹었길 바라면서…
짧은 산책을 마치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수업시간과 산책시간은 잊어버리기 전에 휴게시간으로 입력했습니다. 저 무단 농땡이는 아니랍니다.
내일은 연휴에요. 20년 넘는 직장생활을 통해 저의 신경은 주말과 연휴를 따라 움직입니다. 벌써부터 연휴를 감지한 저의 신경이 설렘을 마구 뿜어내고 있어요. 모두 여유롭고 행복한 연휴되시길 바래요.
선생님, 저희 가을에는 야외수업 한 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