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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나무 숲

친구이야기

by 원호

어느 날부터 카톡이 시끄러워졌다. 그 안에서 회사 업무와 동창회 경조사, 못 나간지 오래된 모임까지 늘 무언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거기에 놓치면 손해라는 쇼핑몰 알림과 택배 출발 메시지 등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들이 반갑기 보다 무거운 날이 많았다. 다들 사정이 비슷한지 어느 날 참다 지친 S가 조용한 메신저를 하나 깔자고 했다. S가 추천한 메신저에는 광고도 없고 별 기능도 없고 심지어 사람도 S, 나, H 셋 뿐이다. S는 사명감으로 재활로봇을 만들면서 맨날 회사 욕을 달고 사는 친구고, H는 미국평가기관에서 일하는 자칭 외노자다. 우리는 조용한 메신저에 모여 온갖 시시한 이야기를 함께 한다.


오늘 나눈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아침에 나물을 하나 무쳤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맛도 그냥 그래서 나물은 사먹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럼 친구 하나가 나물이 너무 좋다고 옛날에는 가지 나물이 싫었는데 이제는 나이 먹어서 가지요리가 맛있나보다라고 고백한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가지튀김요리를 진짜 맛있게 하는 양꼬치집이 떠올라 맛집 추천을 하면서 저번에는 너무 사람이 많아서 삼십분 기다렸던 이야기를 했다. 기다림의 이야기는 친구 머릿속에서 콘서트 갔던 기억을 불러 일으켰고 우리는 이승환이 연말에 콘서트를 한다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우리의 이야기는 친한 친구들의 대화가 늘 그렇듯 갈지자를 그리다 못해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한다.

때로는 거침없이 서로 부탁도 한다. 미국사는 친구가 주로 부탁을 자주한다.

“나 지금 유튜브 보는데 떡볶이 나와서 미칠 것 같아. 누가 나 대신 좀 사먹어주라.”

“오늘 점심에 냉모밀 먹어줄 사람없어?”

우리가 먹는 사진을 보면서 대리 만족 하고 싶은 외노자의 간절한 청이다.


나는 요즘 젊은 회사사람들의 (?) 말에 상처받은 이야기를 주로 한 다.

“야, 꼭 얘기할 때 나보고 '어렸을 때'라고 안하고 ‘젊었을 때' 이런다. 나는 아직 젊은데, 이게 뭔 소리냐?”

"회식하는데 내가 멀리 앉은 사람들한테 ‘리모콘' 했는데 다들 빵 터졌어. 요새 누가 리모콘이라고 하냐고. 그게 웃겨? 그래서 요새 는 뭐라고 하냐고 했더니 와이파이래. 야, 그게 그거지. 난 또 뭔 신박한게 있나 했네.”


오늘 아침에는 S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어제 대장암 말기인 아버지가 갑자기 너무 아프셔서 응급실에 갔는데 혹시 정신 잃으시면 어디까지 조치할지 간호사가 물어봐서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지난번 보다 병원밥이 맛없다고 농담도 하셨다고 한숨 돌렸다고 한다.

나는 잠시 조용한 응급실에 숨을 헐떡이며 긴장한 S가 되었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따뜻한 수다와 조용한 위로가 함께 하는 대나무숲이 있어서 좋다. 대나무숲에가서 소리치는 순간도 내가 대나무 숲이 되어주는 순간도 좋다.


시시한 이야기 덕에 올해 연말에는 대나무 친구들과 이승환 콘서트에 간다. 우리가 6학년때부터 어린왕자였지만 이제는 환갑이 되어버린 그 오빠를 볼 생각에 벌써 마음이 간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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