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작, 가족 - 아빠
우리 아빠는 엄마가 인정한 못 생기고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엄마는 고운 피부에 얼굴도 예뻐서 동네 과수원집에서도 며느리감으로 눈독을 들였단다. 그런 아빠가 이런 엄마를 차지한 비결은 다정함과 친절함이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나는 외모가 아빠를 가장 닮은 딸이다.
아빠가 쓴 연애편지를 본 적이 있다. "조양, 언제 쓰디 쓴 커피라도 한잔 합시다." 로 끝났던 그 편지에는 예쁘게 각이 잡힌 글씨가 아빠의 애정만큼이나 가득했다.
엄마가 그 편지를 받고 쓴커피를 함께 마셔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엄마는 아빠의 꼬임에 넘어가서 이 못생기고 키 작은 남자와 결혼했다.
아빠는 나에게 약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는 한동안 병뚜껑 딱지치기가 유행했다. 골목이나 공터에서 동네오빠들은 병뚜껑 딱지를 한움큼씩 들고 있었다. 콜라, 환타, 사이다 먹은 병뚜껑을 망치로 두드려서 잘 편 다음 딱지처럼 만들어서 서로 따먹기 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 게임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열살 오빠들의 진지한 딱지 놀이에 대여섯살에 딱지도 없는 나를 끼워줄리 없었다. 그래도 구경꾼이 있어서 더 좋았는지 구경을 막는 법은 없었다.
코가 빨개지도록 쪼그리고 앉아 경기를 구경하고 와서 그 이야기를 아빠에게 했다. 아빠는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그 길로 밖에 나가서 마침 가게집이었던 우리집의 모든 병뚜껑을 모아왔다. 그리고 망치를 들고 하나하나 모두 펴서 나를 딱지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형형색색의 딱지들을 동네에서 제일 많이 가진 나는 정말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오빠들은 당연히 나를 놀이에 끼워주었다. 그것도 엄청 인기를 끌면서...
물론 순식간에 다 오빠들 차지가 되긴 했지만 나는 같이 놀았다는 것 만으로도 좋았다.
아빠는 내가 여덟살이 되자마자 초등학교 입학식을 조금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동안은 아빠가 다른 집에서 잘 살고 있는 꿈을 자주 꿨다.
'그거 봐. 아빠 있었네.'
생각을 하면서 꿈에서 깨고 나면 뱃속에 찬바람이 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나는 아빠를 생각해도 울지 않을 만큼 컸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아빠에게 빌었다.
"아빠, 공부 안했는데, 이번 시험만 잘 보게 해주면 안될까? 진짜 다음부터는 열심히 할려고."
"아빠, 준비물 안 가져왔는데, 나 한번만 안 혼나게 해주면 안될까?
"아빠, 이번에는 엄마가 용돈 안줘도 되니까, 새 만화책 이거 한권만 사주게 얘기 좀 해주면 안 될까?"
대부분 무리한 부탁이었지만, 가끔 아빠가 무리를 했는지 정말 들어줄 때도 있어서 나는 부탁을 멈출 수 없었다. 이제는 아빠의 사후세계의 행복을 생각해서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을 만큼 철든 딸로 자랐다.
코코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에 대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사람은 죽어서 모두 천국에 가지만 이승에 있는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동안만 그곳에 머무를 수 있따고 했다. 모두가 그를 잊는 순간, 그는 천국에서도 사라지는 것이다.
아빠와의 기억은 이제 가물가물한 몇가지 이야기로 남았지만,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은 우리 아빠가 천국에서 행복하기를. 내가 오늘도 그를 기억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