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작, 가족이야기 - 딸
이렇게 모여서 가족 여행을 한 것은... 가만 있어보자, 엄마랑 둘이 간 적이 있었고, 언니네랑 엄마와 같이 가려다 실패한 적이 있었고... 음... 그러니까 이렇게 온전히 언니네 식구, 우리집, 동생네 가족이 엄마를 모시고, 다 같이 여행을 간 것은 처음이었다.
두어 달 전부터 여행 예정 장소는 계속 바뀌었다. 우리 삼남매의 단체 채팅에서 여행계획은 동남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제주도도 입에 올랐다가, 엄마아빠의 신혼여행지였던 부산까지 갔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각각의 사정으로 점점 수도권과 가까워졌다. 후보지는 강원도를 찍고 대부도로 최종 결정되었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아이들 놀기 좋은 작은 수영장에 깔끔하게 정돈된 아늑한 독채 펜션이었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초등학생, 중학생 할 것 없이 물로 뛰어들었다. 약속한 듯이 어른 남자들은 아이들과 수영장에서 놀아주고, 여자들은 수영장 앞 테이블에 앉았다. 뜨거운 햇살을 차양으로 잘 가린 테이블에 맥주도 한캔씩 앞에 놓았다. 해가 저물도록 아이들은 뛰어놀고 저녁에는 칼국수에 동동주를 한잔씩 했다.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으로 한턱 냈다. 늙어서 사진 찍기 싫다던 엄마도 오늘 만큼은 기꺼이 손녀와 내 카메라 앞에서 하트 포즈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여기서 불안한 사람은 나뿐인가 싶다. 오늘 여행지에서 하루 자고 나면 내일은 일요일이고, 월요일은 병원에 가야한다. 지호의 수술 2년차 검진이다.
지호는 2년 반 전에 동정맥 기형으로 뇌수술을 받았다. 나는 아직도 수술실 앞 대기실의 공기를 기억한다. 수술 전에 수술실에 아이와 같이 들어가도록 의료진들이 편의를 봐주었다. 마취 직전까지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놔. 끝나고 먹어야하니까."
하면서 농을 던지던 의사 선생님은 우리보다 먼저 수술실에서 준비하고 계셨다. 아이 전신마취 후 수술실에서 대기실로 걸어나오는 나를 간호사 한분이 부축해 주셨다.
"아이 수술이라 교수님이 준비 많이 하셨으니까 잘 될꺼에요."
이 한마디를 잡고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세시간 거릴꺼라던 수술이 네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 나는 손톱으로 자꾸만 손을 잡아 뜯었고, 남편이 옆에서 그러지 못하게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네 시간 반쯤 지나서 우리는 부르는 방송이 나왔다. 대기실로 헐레벌떡 뛰어갔더니 땀 범벅이 된 의사 선생님이 서 계셨다.
"수술은 잘 되었어요, 어머니. 부위가 두군데라고 말씀드렸었는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 세군데라서 좀 오래 걸렸어요. X-ray를 많이 쬐서 오늘 밤에는 많이 토할 꺼에요. 옆에서 잘 지켜봐 주세요. 지금 회복실에서 제가 직접 확인했어요. 손발도 잘 움직이고 하더라구요."
수술 이후 열흘 동안 지호는 밤새 열이 펄펄 끓었다. 수술 전 금식을 하면서 지호는 먹고 싶은 것도 생각해두었다. 하지만 수술 끝나면 바로 바나나 우유를 먹을 거라던 지호는 물도 거의 넘기지 못했다. 교수님은 매일 회진을 오셔서 나를 안심시키셨다.
"원래 혈관이 막히면서 그 반응이 열로 오는 분들이 있어요. 지호가 그 경우인 것 같아요."
지호는 날마다 열이 펄펄 끓었고, 물 세숟갈, 밥알 한두개를 억지로 먹었다. 우유색의 영양보충제가 들어가고, 전해질 수치를 맞추기 위한 약도 추가로 들어갔다. 그리고 병원에서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부터 지호는 조금씩 밥을 먹고 선생님 말대로 열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호가 퇴원하던 날은 교수님의 외래 진료가 아침 일찍부터 있는 날이었다.
통통한 체격의 교수님은 진료가 시작되기 전에 땀을 흘리면서 지호를 보러 병실까지 뛰어오셨다.
"오늘 퇴원이지? 잘가고, 고생 많았다."
그리고 퇴원 2주후, 6개월 후 검진을 갈 때마다, 지호를 보면 늘 "많이 컸네."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선생님이 아무리 친절해도 그 선생님을 보러 가는 길만큼 긴장되는 길이 없었다. 특히 2주 전쯤 MRI/MRA를 찍고 나서부터는 계속 긴장 중이다. 지난주에는 병원에 기부도 했다. 좋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신이든 누구든 보고 있다면 이렇게 하는 나를 좀 기특하게 여겨서 우리 지호를 잘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월요일 병원에 도착해서는 아무런 말을 할 수 가 없었다. 말을 하려고 입을 열면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정작 지호는 진료를 마치면 병원에서 뭐 사먹을지 고민 중인듯 했다.
오늘의 첫 진료. 오랜만에 병원에 들어가서 또 의사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 표정이 밝다.
"아우, 진짜 많이 컸네. 잘 지냈어?"
"어머니, 여기 사진 보이시죠?"
하면서 설명해주신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순서 없이 부어있던 지호의 뇌혈관이 좌우 균형맞게 자리 잡은게보였다. 그동안 우리 지호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정리하느라 바빴겠구나, 생각하면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선생님, 지호 비행기 타도 돼요?"
내 질문에 선생님이 웃으면서 지호를 보고 답하신다.
"네, 그럼요! 너 놀러 가는구나. 어디가? 어머니, 이제 좀 천천히 봐도 되겠어요. 3년뒤에 뵐께요."
병원 편의점에서 초콜릿, 군고구마, 커피까지 사서 휴게실에 앉았다. 많은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3차 병원의 휴게실. 우는 이도 웃는 이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남편이 여행서부터 얼마나 긴장했는지, 이제 좀 마음이 놓인다면 긴 숨을 내쉬었다. 나의 좋은 친구와 예쁜 아이와 달콤한 것을 함께 먹고 있다. 좋은 날이다. 3년 뒤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은 마음껏 행복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