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심장

by 오우아

“작가님이세요?”

어느 날 책방아지트를 찾은 손님이 뜻밖의 질문을 하였다. 책방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많이 듣는 단골 질문은 ‘책’과 관련되어 있다. 많은 분들이 책을 좋아하느냐고? 여러 번 질문했고 더불어 책방까지 해서 부럽다는 말을 여쭤보았다. 하지만 작가님이라는 말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같다.


나는 아직까지도 독서를 좋아한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검은 글자들이 만들어내는 화음(和音)에 따라 생각하는 존재가 되는 모양이 너무나 행복했다. 책을 읽는 것과는 동시에 책을 모으는 취향까지 생겼다. 지금 생각해봐도 청소년 시절에 돈이 생기면 책을 먼저 샀는지 의문스럽다. 내 기억 한구석에서 발품을 팔았던 헌책방 골목이 반짝거릴 정도로 책을 사랑했다. 나에게 유일한 물욕(物慾)은 책이었다.


고백하자면 책을 좋아해서 읽고 글을 쓰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결국에는 『문학의 위로』라는 에세이를 쓴 작가가 되었다. 또한 책방아지트라는 또 다른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이 꼭 싫지만은 않았지만 굳이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문학의 위로』를 출간한 지도 7년이나 흘렀으니 이제는 작가라는 감정도 무뎌졌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작가보다는 책방지기라는 말이 더 편안했다.


또 하나, 책을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했다. 출판사라는 같은 직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와 결혼하게 되리라 예상할 수 없었다. 비록 적성에 맞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지만 나는 직업이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직업은 기본적인 생계유지를 수단이 아닌가. 매슬로의 욕구단계설(Maslow’s Hierarchy of Needs)에 따르면 가장 하위 1단계인 ‘생리적 욕구(The Physiological Needs)’이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고 일을 해야만 하는 존재의 가벼움을 생각할수록 무척이나 답답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것들이 예상에서 벗어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존재의 가벼움이 없었다. 맑고 명랑했다. 반대로 내 얼굴은 니체같은 이미지가 도드라졌다. 그녀의 얼굴이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사랑하려고 사랑한 게 아니었으나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지금에 와서 들으면 거짓말이었다. 처음부터 사랑하려고 사랑하였으니까.


갑자기 찾아오는 사랑의 순간,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은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다. 그들의 사랑은 취미도, 성격도 아닌 오로지 손(手)의 온도에서 생겨났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한나의 손을 잡은 미카엘의 손. 한나는 차가운 손이었고 미카엘은 따뜻한 손이었다. 그 순간 한나는 미카엘이 따뜻한 손에 따뜻한 심장이라는 것을, 미카엘은 한나가 차가운 손에 따뜻한 심장이라는 것에 이끌렸다. 그들은 서로 손의 온도는 달랐지만 서로가 따뜻한 심장일 것이라는 사랑스러운 믿음이 생겼다.


우리가 사랑할 때 심장이 얼마나 따뜻한가? 우리는 꽃이 아름답게 피기를 바란다. 꽃이 사랑의 전부이며 목숨이기 때문이다. 필사적으로 사랑하면서 필사적으로 꽃을 피운다. 하지만 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뿌리라는 것을 사랑한 후에 알게 되었다. 식물이 아닌 우리는 심장이 없으면 사랑할 수 없다. 심장에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은 감정이 살아 숨쉬고 있다. 심장은 사랑의 급소였다.


그러나 따뜻한 심장이리라 믿었던 미카엘의 사랑은 다정하지 않았다. 심장의 기능으로 완벽했을 뿐이다. 완벽하려고 최선을 다했을 뿐 그의 심장에는 아쉽게도 중력(重力)이 없었다. 중력 없는 사랑. 나는 이런 사랑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아니, 더 솔직하게는 중력 있는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력 없는 사랑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허구(虛口) 같은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았다. 허구를 느낄 때마다 사랑이 반으로 접혔다. 중력 없는 사랑은 한나의 말처럼 “허구”이니까.


만약에 따뜻한 얼굴을 가진 그녀가 차가운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사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가 따뜻한 심장이어야 한다. 봄이면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잎이 푸르러지고, 가을이면 곱게 물드는 단풍이 되고, 겨울이면 훌훌 털어버리는 나무처럼 살아야 한다. 사계절 내내 꽃이 핀다고 하면 어떨까? 사랑이 환상적이다. 사랑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닌다. 보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워 보여도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피로감을 숨길 수 없다. 환상적인 사랑은 모든 불가능을 모두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환상과 허구가 동의어가 된다.


오랜 시간 글을 읽고 써오면서도 작가라는 말은 조금 다른 문제로 여겨졌다. 내가 작가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 허구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소설가, 시인이라고 했으면 더욱 동굴 속에 갇혀 지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막막한 시공간을 건너야 했는지를 생각하면 작가라는 사실을 적당히 숨기며 사는 모습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맞지 않았다. 작가라는 단어만큼 나를 증명하는 다른 얼굴은 없었다. 작가라는 얼굴은 허구가 아니었다. 글의 촉감으로 나를 증명함으로써 비로소 따뜻한 심장이 되었으니까. 따뜻한 심장은 삶의 연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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