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둘기 Jan 06. 2024

키오스크

 커피 한 잔 사러 카페에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단돈 1500원! 이 주변에서는 가장 저렴한 카페다. 들어가자 키오스크 앞에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조용히 그 분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키오스크 옆, 음료가 그려진 플라스틱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누르셨다. 터치가 될 리가 없었다. 그때서야 생각했다. 

'도와드려야겠구나..'

할아버지께 다가가 짧게 말했다. 

'이 쪽에서 하시면 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민망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아! 감사합니다.'


불안감에 뒤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다행히 주문을 잘 하셨다. 커피류 터치, 따뜻한 카페라떼 터치. 이제 결제버튼만 누르면 내 차례가 된다. 할아버지께서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셨다. 삼성페이를 사용하시는 듯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결제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카드기 쪽에 핸드폰을 가져다대셨다. 역시나 될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나섰다. 

"결제 버튼 누르셔야 될 거에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때서야 알았다. 결제 버튼만 누르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교실에는 질문하는 학생들이 사라졌다는데... 키오스크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포인트를 적립하시겠습니까? 휴대폰 번호로?, 바코드로?, 적립 안 함? 할아버지는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다. 

"혹시 포인트 적립 하실건가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적립 안 함을 눌렀다. 적립하면 10번에 커피 한 잔을 먹을 수 있는데.. 안타까웠다. 



이제 진짜로 내 차례구나... 생각하는 순간.

결제 방식을 선택해달라는 창이 떴다. 아.. 아직도 끝이 아니구나.  

"카드 결제 하실 거죠?"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카드 결제를 고르고 확인을 누르자, 얼마만큼의 금액을 카드 결제로 하겠다는 창이 떴다. 당연히 다 해야지... 깎아주기라도 할 건가. 매 번 보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질문이다. 전체 금액을 결제를  터치하고 나서야 모든 과정이 끝났다. 

"이제 결제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주문하던 과정을 찬찬히 보니, 너무 복잡하다. 기계가 익숙하지 않은 어른들에겐 어려워보인다. 사실 별거 아닌데...천천히 몇 번 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하지만 내 뒤에 줄 서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초리 속에서 천천히 배우고 익히기란 불가능하다. 키오스크는 누군가에게 두려운 대상이 된다

할아버지는 커피를 받고 나가시면서 다시 한 번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정말 감사합니다."

커피를 대신 주문해준 것이 세번씩이나 고개를 숙여 감사받을 일이 되었나. 씁쓸했다. 


키오스크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패스트푸드점, 카페, 식당까지. 기계가 익숙하지 않은 노인 분들은 점점 가게에 들어가기가 두렵다고 한다. 인류를 편리하게 해주겠다며 나타난 기계가 인류의 자존심을 뭉개고 있었다. 


우리의 먼 조상 호모 네안데르탈인들은 나이가 많아 힘이 약해진 어른을 돌보는 것을 인간의 도리로 여겼다. 누구나 언젠가는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었다지만, 그 '인간'에 대부분의 노인들은 빠져있다. 버스표를 예매하는 것도, 좋아하는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표를 사는 것도, 햄버거를 주문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우리는 그들을 배려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나은 인류인가?


마르크스의 이론은 대부분 틀렸다. 인간의 생산성은 한계에 종착하지 않았고, 공산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점점 소외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현실이 되었다. 키오스크는 인간이 충분히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며 수많은 노동자를 소외시켰다. 또한 기술 문명을 따라가지 못하는 수많은 노인들을 소외시켰다. 


그렇다고 제 2의 러다이트 운동을 할 수 없고... 다만 키오스크가 조금만 더 친절하면 좋겠다. 은행의 ATM처럼 간단하면 좋겠다. 우리에게 지혜를 전해주신 수많은 어르신들이 고작 기계앞에서 자존심에 상처 입지 않길 바란다. 



마음 편히 주문할 수 있는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호모 깜빡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