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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Sep 12. 2024

두뇌에도 달리기가 좋다는데

아닌가?

나는 기억력이 정말 나쁘다. 무슨 일이든 순식간에 잊어버린다. 기억력이 나쁜 건 정말 불편한 일이다. 우선 공부할 때도 어려움이 많다. 어릴 적 이것저것 해봤는데, 딱히 잘하는 게 없었다. 아빠는 ‘잘하는 게 없는 사람에겐 공부가 최고’라며 공부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공부도 쉽진 않았다. 배운 걸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탓에 같은 내용을 남들보다 두세 번은 더 반복해야 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공부는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되었다. 내가 학생 때 본 선생님은 분명 교과서 속 모든 내용을 빠삭하게 알고 계셨는데, 나는 여전히 잊어버린다. 지금도 계속 공부를 놓지 못한다. 정말 끝도 없다.      



자잘한 불편함도 크다. 방금까지 칠판에 열심히 판서한 뒤, 아이들을 보며 잠시 수업했다. 다시 칠판에 필기하려고 하니, 분필이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아이들에게 묻는다. 

“얘들아, 선생님 분필 어디 갔니?”

교실 속 모두가 함께 두리번거리다 누군가 찾아낸다. 

“선생님! 선생님 책상 위에 있어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아. 이게 바로 앞에 있었네.”

정말 면이 서질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나를 보고 이런 희망이라도 품으면 좋겠다. 

‘저런 사람도 할 수 있는 게 공부인데.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니야?“     



인터넷에서 우연히 치매 자가 테스트를 해보았다. 14개의 질문 중 ’예‘가 6개 이상이면 치매 검진을 받아보라고 적혀 있었다. 


기억력에 문제가 있습니까? 예!

기억력은 10년 전에 비해 떨어졌습니까? 아니요! 원래 안 좋았습니다. 

기억력이 동년배에 비해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기억력 저하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낍니까? 예! 불편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예! 방금 일도 기억하기 어렵네요. 

며칠 전 나눈 대화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예! 방금 나눈 대화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며칠 전 한 약속을 기억하기 어렵습니까? 예! 약속을 잊어버린 적이 많습니다.      


7번 만에 ’예‘가 6개가 되었다. 아직 치매 검진을 받기엔 너무 젊은 나이다. 어떻게든 기억력을 회복해야 한다. 기억력에 좋다는 오메가3를 먹은 지 3년이 지났는데, 효과는 감감무소식이다. 심지어 1년 전부터는 한 번에 두 알씩 먹고 있는데….     





다행히 얼마 전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다. 달리기가 뇌 건강에 아주 좋다는 소식! 달리기가 신체 건강에 좋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몸소 느끼기도 했다. 달리기를 하며 훨씬 건강해졌다. 살도 빠졌고, 심장도 튼튼해졌고, 체력도 강해졌다. 달리기가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힘든 일이 있거나 머리가 복잡해질 때 한 번 달리고 오면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 이제는 힘든 일이 생겨도 달리기와 함께 털어버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달리기가 두뇌에도 좋다고? 운동이 뇌와 무슨 관련이 있길래?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달리기와 뇌가 관련이 있지. 당연히 관련이 있지. 달리기를 하면 BDNF가 많이 분비되는걸.“

도대체 BDNF가 뭘까? 왜 항상 과학자들은 자기들만 아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우리 몸은 계속해서 원래 있던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가 생겨난다. 보통 80일이 지나면 우리 몸은 과거의 세포와 결별하고, 새로운 세포로 가득 찬다. 하지만 뇌세포는 만들어지는 속도가 다른 세포에 비해 느리다. 만 25세가 지나면 죽는 뇌세포의 수를 새롭게 만들어지는 뇌세포 수가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 뇌는 점점 작아진다. 1년에 대략 1% 정도 뇌의 크기가 줄어든다고 한다. 뇌의 크기와 비례해서 우리는 해마다 1%정도 머리가 나빠진다.   



이를 막아줄 수 있는 마법의 물질이 있다. 바로 BDNF! BDNF는 뇌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고, 뇌에서 보내는 신호를 전달하는 뉴런의 기능 향상 및 발달을 자극하는 인자다. 간단히 말해 뇌세포가 잘 성장하고,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름과 같은 물질이다. 달리기를 하면 이렇게 좋은 BDNF가 많이 분비되고, 신상 뇌세포가 쭉쭉 자라난다. 우리의 인지 기능과 학습 능력은 저절로 좋아진다. 안데르스 한센 박사가 쓴 <뇌는 달리고 싶다>라는 책에서도 달리기가 두뇌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는 실험이 나온다. 일주일에 3번 40분을 달린 그룹에서는 뇌에서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해마의 크기가 줄어들기는커녕 2% 늘어났다. 달리기가 두뇌에 좋다는 말은 이제 더이상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라 과학이다.


      

달리기 하길 참 잘했다. 몸에도 좋고, 정신에도 좋은데, 두뇌까지 좋아진다니! 이제 더 이상 기억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달리기를 하면 해마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는데, 머리도 커지는 것 아닌가 걱정이다. 내가 쓴 첫 번째 산문집 <사라진 모든 것들에게>에서 저자 소개에 이렇게 썼다. ‘기억력이 나쁜 초등교사‘. 아. 이제 달리기 때문에 기억력이 더 이상 나쁘지 않을 텐데. 사람들이 책에 거짓을 썼다고 비난하면 어쩌나.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하고, 오늘도 기억력이 좋아지기 위해 달리기를 하러 트랙을 간다. 



오늘은 딱 10km. 25바퀴를 뛰어야겠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열 바퀴. 열두 바퀴. 열두 바퀴. 아? 열세 바퀴인가? 아닌가? 열세 바퀴. 응? 아까 열세 바퀴 셌던가? 열세 바퀴. 몇 바퀴가 남았더라? 에라 모르겠다. 결국 손가락을 쫙 편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을 접는다. 25바퀴만 달리려 했는데, 30바퀴는 달린 것 같다.     



달리기가 두뇌에 좋다는데. 

뭐든지 예외가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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