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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Sep 20. 2024

걷기와 달리기

오래 달리기 걷기

중학교 체력 검사 시간에 오래달리기를 하던 날이 기억이 난다. 그때 체육 선생님은 오래달리기를 하기 전에 우리에게 강조하셨다.

"오늘 우리가 측정하는 것은 ‘오래 달리기’가 아니라 ‘오래 달리기, 걷기’입니다. 뭐라고?"

우리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괴상한 종목에 웃으며 대답했다.

"오래달리기, 걷기요"

"맞아요. 뛰다가 너무 힘들면 절대로 무리하지 마세요. 걸어도 됩니다. ‘오래 달리기 걷기’니까요. 걷다가 다시 괜찮아지면 계속 뛰세요. 중요한 것은 기록이 아니라 끝까지 완주하는 것입니다."     



걷기와 달리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속도의 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없다. 올림픽 20km 경보 세계기록은 1시간 18분 40초이다. 어제 내가 5km를 30분만에 뛰었으니, 20km를 뛰는 데는 적어도 2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누군가의 걷기는 내 달리기보다 빠른 것이다. 그렇다면 걷기와 달리기를 나누는 정확한 기준은 무엇일까? 체육 교과서에 따르면 한 발이 땅에 붙어 있으면 걷기이고 양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지면 '달리기라고 한다. 경보 대회에서 실격을 판단하는 기준도 이와 같다. 경보 경기 중에는 양발 중 한발이 반드시 땅에 붙어 있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경보 선수들이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실격되고 만다.          


달리기와 걷기의 차이는 비단 이런 규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요즘 좀 더 많이 걷고, 달리려고 노력한다. 다름아닌 건강 때문이다. ‘걷기가 건강에 더 좋은가, 달리기가 건강에 더 좋은가?’ 하는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달리기가 칼로리 소모가 크기 때문에 당연히 달려야 한다는 답변도 있고, 달리기는 무릎이나 관절에 더 많은 무리를 주기 때문에 오히려 걷기가 더 좋다는 답변도 있다. 그런가 하면 걷기의 효과를 위해서는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달리기로 심폐지구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속도로 뛰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현대 사회는 오히려 정보가 너무 많아서 혼란스럽다. 그래서 나는 걷고 싶을 때는 걷고, 달리고 싶을 때는 달리고 있다.     



무엇인가 깊이 생각할 일이 있을 때 나는 걷는다. 걷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가 될 때가 많다. 걷기를 할 때는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차가 없는 나는 두 다리로 이동하고, 적어도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을 수 밖에 없다. 걷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걷는 길이다. 좀 더 걸으며 생각을 하고 싶을 때는 좀 더 돌아서 가는 길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최단 거리로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한다. 가끔은 그냥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래가 좋아서 조금 더 걷고 싶어질 때도 있다.    


      

어떤 생각을 떨쳐내고 싶거나 머릿속을 비우고 싶을 때 나는 달린다. 뛰다 보면 머릿속은 그만 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럼에도 5km 완주 후의 성취감에 중독되어 중간에 멈추기가 쉽지 않다. 달리기는 걷기와 다르게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편이다.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편하고 가벼운 상태로 달릴 몸 상태를 만들어야 하고, 하의는 반드시 허벅지가 쓸리지 않는 매끈한 트레이닝복 또는 반바지를 입어야 한다. 상의도 땀 배출이 잘 되는 기능성 티셔츠를 입는다. 주머니에는 어떤 물건도 넣지 않으며, 오직 휴대폰만 챙기고, 귀에는 에어팟을 꽂는다. 음악은 가볍게 뛰느냐 조금 무겁게 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볍게 뛸 때는 산뜻한 팝을 많이 듣고, 숨이 터질 때까지 뛰어보고 싶은 날은 ‘록키 OST’를 주로 듣는다.     



매일 10km를 뛰고 스스로를 ‘러너’라고 부르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정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하루키와 달리 뛰다가 힘들면 멈추고 걸을 것이다. 가끔은 빠르게 달리기도 하고, 가끔은 천천히 걷기도 하면서 결승점까지 ‘오래 달리기, 걷기’를 할 생각이다. 선생님 말씀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중요한 것은 기록이 아니라 끝까지 완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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