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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Sep 25. 2024

운수 좋은 날

2023 jtbc 마라톤 10K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운수 좋은 날 현진건>     


2023년 11월 5일.  jtbc 마라톤 10km 대회에 친구와 함께 나가기로 한 날이었다. 마라톤 대회 전날. 마라톤초보인 내가 마라톤 왕초보인 친구에게 조언을 했다.

“야! 내일 너 늦으면 안 돼. 8시 30분 출발이라고 해서 그때까지 오면 안 되고, 6시 40분까지 와. 아무리 늦어도 7시까지는 와야 해!”

친구는 물었다. 

“뭐하러 그렇게 빨리 가. 그럼 너무 일찍 일어나야 해.”

“그래야 짐도 맡기고, 몸도 풀고, 화장실도 갈 수 있어. 너는 그래도 서울 살아서 가깝잖아. 인천에서 가려면 새벽 네 시에 일어나야 해”

친구는 순순히 수긍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송도러닝크루와 함께 버스를 타고 jtbc 마라톤이 열리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갔다. 나올 때부터 조금 흐리더니,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엄청나게 비를 맞았다. 아직 뛰기도 전인데 신발이 다 젖었다.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평화광장에 가자 마라톤을 하러 나온 수많은 사람이 보였다. 대회장 분위기가 느껴지자 졸음은 사라졌다. 젖은 양말이 조금 찝찝했지만, 저 수많은 사람과 함께 달리고 싶었다.   

그때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늦을 것 같은데.”

“몇 시에 도착하는데?”

“6시 50분에서 7시 사이”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어서 안심했다. 오전 7시 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너 어딨냐?”

"나 평화 광장 앞이지."

"거기 어떻게 가냐?'

“그냥 우리랑 똑같이 주황색 옷 입은 사람들 그냥 따라와. 그거 다 마라톤 나가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친구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여기 왜 이렇게 사람이 없냐?”

“뭔 소리야. 아까 지하철역에 마라톤 옷 입은 사람들 꽉 찼더구먼.”

“어. 이상하다…. 여기가 아닌가?”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하며 물었다.

“야! 너 지금 무슨 역이야.”

친구는 대답했다. 

“올림픽 공원 역,”

“야. 왜 올림픽 공원을 갔어. 월드컵 경기장을 와야지!”

“어제 평화의 광장 검색하니까 올림픽 공원이라고 나오던데?”

친구의 황당한 소리에 내 이름은 맹비오에서 맹비난으로 바뀌었다.

“야! 올림픽 공원 평화의 광장이 아니라 월드컵 경기장 앞에 있는 평화광장이잖아! 너는 무슨 어디서 하는지도 모르고 출발을 하냐!”

비난을 퍼붓고 나서야 현실을 직시했다. 

“야! 근데 우리 그럼 어떻게 하지?”

친구는 올림픽 공원에서 월드컵 경기장까지 얼마나 걸리나 확인했다. 

“나 8시쯤이면 도착할 수 있어!”

“그럼 얼른 와! 출발 전에 올 수 있겠다.”     


○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크루원분들과 짐을 맡기러 갔다. 짐을 맡기러 온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짐은 큰 트럭에 보관하는 듯했다. 트럭이 여러 대 있었지만, 모든 트럭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끝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크루원분들과 함께 17호 차에 가서 줄을 섰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내 차례가 왔다. 그런데 그때 짐 보관을 도와주시던 자원봉사자께서 말씀하셨다. 

“17호 차는 짐 보관 마감되었습니다. 18호 차로 가주세요!”

이럴 수가!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오랜 기다림 끝에 내 차례가 왔는데,  다시 꼴찌가 되었다. 너무나 속상했다. 다시 한참을 기다린 후에 겨우겨우 짐을 맡길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화장실도 가고 준비 운동도 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화장실도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은 보이지도 않고, 줄 서있는 사람들만 보였다. 그렇다고 화장실을 안 가기엔, 내 방광은 너무나 작았다. 지금 가지 않으면 일이 터질 게 분명했다. 가장 사람이 적어 보이는 줄에 가서 섰다. 알고 보니 내가 서있는 줄은 대변을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있는 줄이었다. 줄은 짧지만, 시간은 오래 걸렸다. 나는 그 사실을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 그때라도 다른 화장실로 갈까 고민했는데, 지금까지 기다린 게 아까워서 그냥 기다렸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함께 왔던 크루원분들은 모두 떠났다.      



홀로 남겨진 나는 짐 보관하는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짐 보관하던 트럭 문이 닫히더니,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어! 아직 내 친구 안 왔는데?’. 나는 아직 출발하지 않은 트럭으로 달려갔다. 트럭 문을 닫으려는 아저씨께 여쭤보았다. 

“혹시 지금 모든 트럭 다 출발하는 건가요?”

아저씨께서는 말씀하셨다. 

“네! 마라톤 출발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가서 기다려야죠.”

jtbc 마라톤 10km 코스는 출발지와 도착지가 다르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출발해서 여의도 공원에서 끝이 난다. 짐도 이곳에서 맡기지만, 찾을 땐 여의도 공원에서 찾아야 한다. 그제야 짐을 트럭에 보관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짐도 우리처럼 달려가야 했다. 나는 아저씨께 간곡히 부탁했다. 

“제 친구가 지금 오고 있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아저씨께서는 물으셨다. 

“언제쯤 오는데요? 오래는 못 기다려요. 마라톤 시작하기 전에 우리도 출발해야 하니까.”

“한 5분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그리곤 친구에게 바로 전화했다.

“야! 너 5분 내로 안 오면 짐 다 들고 뛰어야 한다.”

“응! 지금 내렸어. 최대한 빨리 뛰어갈게.”

나는 안도했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친구는 소식이 없다. 이때쯤이면 올 시간이 됐는데…. 친구에게 다시 전화했다. 

“야! 왜 안 와!”

“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아뿔싸. 나는 결국 아저씨께 말씀드렸다. 

“그냥 먼저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친구가 조금 늦는다네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트럭은 떠나갔다. 



출발 시간이 다 돼서야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혹시나 짐을 맡길 곳이 없을까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냥 짐을 들고 뛸 생각을 한순간, 어떤 아주머니께서 말을 거셨다. 

“제가 짐 여의도로 옮겨다 드릴까요?”

순간 우리는 당황했다. 짐을 맡겨도 될까? 이게 무슨 상황이지? 사기당하는 건 아닌가? 우리의 방황하는 눈빛을 알아차리셨는지,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제 남편이 마라톤 나갔거든요. 방금 내려주고 저는 도착지 가서 기다리려고요. 짐 있으시면 저한테 주세요. 도착지 쪽에 맡겨둘게요.”

아주머니의 스토리가 꽤 설득력 있었고, 짐 가방 속에 별다른 귀중품도 없었으며,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기에 우리는 결국 아주머니께 짐을 맡겼다.      



마라톤을 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출발선에 서니 다시 설렜다. 아침부터 황당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모두 해결했다. 무섭게 내리던 비도 그쳤다. 폭풍이 지나가고 평화가 찾아왔다. 이젠 아무 걱정 없이 달리기만 하면 된다. 목표는 50분 이내로 완주하는 것이다. 동아 마라톤에서 ‘나’보다 12초만 빨리 달리면 된다. 그래, 오늘도 한번 시원하게 달려보자!     

시원하게 달릴 수가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 넓은 서울 길이 꽉 막혔다. 사람을 피하며 달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막힌 사람을 뚫어내면서 달려야 했다. 초반만 지나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 편히 달린 구간이 없었다. 서울의 교통체증이 악명 높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러너 체증도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50분 이내로 들어오겠다는 목표가 조금씩 흔들렸다. 날씨도 좋고, 컨디션도 좋은데, 길이 막혀서 목표를 저버릴 순 없었다. 사람들 사이의 작은 틈만 보이면 그 사이를 파고 들어갔다. 결승점에 들어와 기록을 확인했다. 48분 34초. 다행히 목표를 달성했다. 

휴우..     


○     


결승점에 도착하자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렸다. 친구를 기다려야 하는데, 여의도 공원이 너무 넓었다. 어디서 기다려야 만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친구는 휴대폰도 짐가방에 넣어두어서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서울가서 김서방 찾기’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게다가 짐 보관하는 곳은 여의도 공원과 조금 거리가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짐 보관하는 곳으로 오거라!’

짐을 찾으러 갔다. 줄을 서는데 비가 그치질 않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난장판이었다. 황당하게도 내가 짐을 맡긴 18호차만 줄이 엄청 길었다. 다른 차는 줄이 금방금방 줄어들었는데, 내가 있는 줄만 줄지를 않았다. 짐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친구가 걱정되었다. 이 정도 안오는 거면 내 텔레파시는 틀렸다. 짐 찾기를 미루고, 친구를 찾으러 여의도 공원을 갔다. 여의도 공원을 두 바퀴나 돌았지만, 친구를 찾을 순 없었다. 내가 자꾸 움직여서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건가 싶어서, 여의도 공원 모형 비행기 앞에 10분 정도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다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A어머니께서 전화 오셨는데, A가 너 찾고있대. 의무실 부스에 있으니까 찾으러 오래.”

나는 바로 의무실로 달려갔다. 친구는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짐을 찾으러 갔는데, 여전히 줄이 길었다. 30분은 더 기다려서야 짐을 찾을 수 있었다.



10km를 달린 순간보다, 달리지 않는 순간이 더 힘든 마라톤이었다. 

정말 괴상하게도 운수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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