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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자연을 다시 바라보며

의식의 진화를 묻다

by 더블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6


"이제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그것이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 알지 못하랴"

욥기 12:7–9



코스모스는 언제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이루어 왔다. 물리법칙은 무질서도를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형성된 고요한 공존을 목격한다.

코스모스 안의 자연은 언제나 균형을 추구해 왔다.
거대한 숲은 미세한 생명들과 호흡하며 살아 있고, 바다의 파도는 달의 인력에 따라 고요와 격정을 반복한다. 죽음은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되어 되돌아오고, 모든 존재는 서로를 순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자연은 낭비하지 않는다.
그 안엔 불필요한 파괴도, 목적 없는 증식도 없다. 무엇 하나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고, 다른 존재를 지배하려 들지도 않는다. 자연은 그저 ‘존재’함으로써 조화를 이룬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이 거대한 질서의 일부로 태어났지만, 언젠가부터 자연을 배움의 대상이 아닌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진화를 ‘경쟁에서의 승리’로 오해한 채,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강하게를 외치며 우리는 코스모스의 조화로움에서 멀어져 왔다.
그러나 진화는 단지 육체의 변화가 아니다.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진화는 도구나 제도보다도, 내면의 변화, 의식의 변화다.
우리의 시선과 태도, 인식의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떤 기술도, 어떤 혁명도 인류를 조화의 길로 이끌 수는 없을 것이다.




철저한 개인주의와 문명의 이기로 인해 우리는 길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인류는 지구의 역사상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와 영향, 그리고 미래를 위한 성찰할 수 있는 생물종이다.
우리는 지금의 위기를 만들어냈지만, 그 위기를 인식하고, 기록하고, 바꿔나갈 수 있는 힘 또한 지니고 있다.

지구상 그 어떤 생명도 자신의 앞에 멸종의 길이 다가왔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는 알고 있다.


드넓은 숲과 목초지가 도시와 경작지로 바뀌어감을 알고 있고,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며 바다의 산호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생명의 존엄성이 파괴되어 가는 것과,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 자각은 단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눈을 뜨는 일이며, 자신을 넘어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 자각의 힘은
무기보다 강하고,
기술보다 앞서며,
인류의 역사를 전환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우리가 다시 자연을 바라본다면, 자연의 언어를 듣고, 그 질서를 배우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내면의 조화를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진화는 파괴가 아닌, 회복의 진화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되물어야 한다.


진화란 무엇인가?


과거, 진화는 생존을 위한 적응이었다. 변화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고, 그 안에서 생명은 다양성을 확장해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화는 더 이상 경쟁을 위한 진화가 아니다.
공존을 위한 진화, 다양성을 껴안는 진화, 그리고 내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진화여야 한다.

이제 우리의 진화는 기술이 아니라 의식의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자연과의 단절을 치유하고, 타인과의 분리를 넘어설 때, 우리는 비로소 코스모스를 닮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비롯된 자연의 일부다.
그리고 자연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훨씬 조화롭게 살아왔다.
그 지혜를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진화는 곧 멸종으로 향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다시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코스모스를 바라보고 지향해야 한다.

그 안에 우리가 잃어버린,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은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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