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속에서 시작된 희망
"너희는 눈을 들어 높은 곳을 보라
이것들을 창조한 자가 누구냐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 권세가 크고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사야 40:26
끝없는 증오와 분열의 순환 속에서, 우리는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무너져 가는 지구의 생태계를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 인류 문명에 희망은 남아 있는가?
‘희망’이란 과연 무엇일까.
희망(希望)이라는 말은 ‘실처럼 가느다란 가능성’을 뜻하는 희(希)와, ‘멀리 내다보는 시선’을 의미하는 망(望)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희망이란 실낱같은 가능성을 끝까지 바라보는 용기이자, 그를 향한 시선이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위해, 우리는 무엇에 시선을 두어야 할까?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
나는 그 ‘무엇’을 코스모스라 말하고 싶다.
다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문명으로 돌아와 보자.
20세기 중반, 인류는 스스로 만든 가장 참혹한 전쟁을 마주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간이 얼마나 무모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고, 특히 원자폭탄은 과학이 어떤 파멸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하지만 바로 그 폐허 위에서, 인간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1945년, 무기화된 과학의 절망적 파괴 이후 불과 몇 해 만에, 인류는 그들의 지식을 코스모스를 향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군사력과 이념의 우위를 증명하기 위해 우주를 또 하나의 전장으로 삼았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자, 미국 사회는 충격과 불안에 휩싸였다. 이 작은 금속 구체가 머리 위 하늘을 돌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과학적 성취 그 이상이었다. 미국인들은 하늘 위에서 감시받고 있다는 공포를 느꼈고, 소련이 우주 공간에서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었다. 언론은 이를 ‘스푸트니크 쇼크’라 부르며 연일 경고를 쏟아냈고, 미국 정부는 과학 교육, 기술 개발, 정보 수집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갖게 되었다.
당시 미국은 스푸트니크를 단순한 위성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곧 미사일 기술의 상징이었고, 공산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보다 기술적으로 앞설 수 있다는 상징적 메시지로 해석되었다. 이는 냉전의 심리전에서 커다란 타격이 되었고, 미국은 이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1958년 NASA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우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어 1961년에는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를 여행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고, 이에 자극받은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의 선언 아래 "우리가 10년 안에 달에 갈 것"이라 공언하며 아폴로 계획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다.
이 우주 경쟁의 실제 동기는 그 자체의 과학적 탐험이나 인류의 진보를 위한 여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냉전 시대의 이념 경쟁이었고, 각국은 우주 개발을 자신의 정치적 우위를 증명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그러나 그 경쟁은 인류에게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안겨주었다.
첫째, 우주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코스모스는 '국경을 초월한 공간'이었다. 인류는 우주개발을 통해 광활한 코스모스는 인류의 공동의 자산이어야 하며, 그 가능성은 각국이 함께 나아가야 하는 공동의 목표임을 알게 된 것이다.
둘째, 기술 발전이 단지 물리적 성취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변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우주에 나간 사람들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 지구를 넘어 우주와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를 여행했다. 그가 지구 궤도를 돌며 남긴 말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시선을 바꾸는 선언이었다.
"The Earth is blue. How beautiful it is."
“지구는 파랗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Look at the sky. That is the future of mankind."
"하늘을 보라. 그것이 인류의 미래다."
이후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남긴 그 한 걸음은 인간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순간이었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인간에겐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그 발자국은 단지 과학 기술의 성과가 아니라, 인류가 처음으로 지구 너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 순간이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충격이었다. 작고 푸르고 고요한 그 별은, 인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연약했고,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폴로 14호의 우주비행사 에드가 미첼은 이렇게 말했다.
"The Earth looked like a beautiful blue-and-white Christmas tree ornament. I saw it and I cried."
“지구는 아름다운 청백색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보였다. 그 아름다움에 눈물이 났다.”
이 감동은 단지 개인의 체험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그 시점부터 인류는 하나의 지구,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우주비행사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지구를 처음 보게 되었을 때 받은 충격은 가히 존재론적인 것이었다.
1968년 아폴로 8호가 보내온 새까만 우주 너머로 떠오르는 푸른 지구(Earthrise)의 사진은 인류에게 “우리는 단지 하나의 별 위에 살고 있다”는 운명적 공동체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당시 미국 시민의 인터뷰에서 한 고등학생은 “내가 지구 밖에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 순간 처음으로 ‘경계 없는 우리’를 느꼈다.”라고 자신의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냉전이라는 이념의 분열 속에서도, 우주를 향한 시선은 개인들에게 '인류 전체가 함께 바라보는 어떤 것'으로 작용했다. 국적이나 인종, 종교를 넘어서 ‘우리는 모두 이 푸른 행성의 일부’라는 공감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당시의 어린이, 청소년, 과학자, 예술가들에게 우주는 ‘도달 가능한 미래’로서의 희망이었다. 우주를 향한 찬란한 여정을 보며 아이들을 꿈을 키웠고, 학생들은 천문학과 물리학, 환경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과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사령관이었던 캐나다의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는, 이러한 우주를 향한 인류의 발돋움을 보며 꿈을 키웠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인간은 오랫동안 별을 보고 꿈을 꾸던 존재였지만, 근대 이후 점점 땅만 보고 살아왔다. 하지만 우주 경쟁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감각을 회복하게 했고, 그 감정은 과학이 아닌 경외, 겸허함, 그리고 새로운 믿음으로 이어졌다.
인간에게 하늘은 더 이상 신화의 배경이 아니라 직접 도달할 수 있는 실재가 되었다. 그리고 우주 경쟁이 인류에게 가르쳐 준 사실은 누가 먼저 갔느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딘가로 갈 수 있다는 증거였다.
코스모스에 대한 경외감과 그 앞에선 인류의 겸허함, 그리고 연대를 상상하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
이러한 자각은 전쟁의 잔재 위에서 시작된, 인류의 성숙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위대한 순간인가. 인간은 코스모스에 나아가 그 속에 들어갔고 그로 말미암아 지구와 자연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
우주를 향한 시선 속에서 인류는 지구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인류는 자연에 대해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생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태동했고, 최초의 지구의 날(Earth Day)이 시작되었으며, ‘환경’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이 문명 속에 등장했다. 강을 지키고 숲을 보호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을 고민하는 철학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인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세우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오늘날에도 자연은 스러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플라스틱을 줄이는 작은 실천, 태양광을 쓰는 집들,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는 법과 운동, 그리고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전 세계의 목소리들. 그 속엔 인간이 아직도 질문할 줄 알고, 책임을 느낄 줄 아는 존재라는 희망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국경이 없었다. 이 인식은 단지 감탄으로 끝나지 않았다.
적십자, 국경 없는 의사회, 세계 식량계획, 그리고 수많은 인도주의 단체들이 그 연대의 감정을 구조적 실천으로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코스모스를 다시 바라본 감정은, 마침내 서로를 바라보는 윤리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과학도 변하고 있다. 정복과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조화와 공존을 위한 길로 다시 쓰이려 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기술들은 자연의 힘을 활용하여 인간 사회와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자연을 착취하거나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방식이었지만, 오늘날의 과학은 청정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통해 자연을 보호하며 동시에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유기농업이나 생태 농업은 과학의 진보적 방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전통적인 농업은 농약이나 화학 비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생태학적 농업은 자연과의 공존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토양의 건강, 생물 다양성 그리고 지속 가능한 생산을 이루어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과학은 다시, ‘어떻게 더 많이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그러니 코스모스를 향한 시선을 되찾은 인류에겐 희망이 있다.
희망은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 속에 있고, 작지만 꾸준히 나무를 심는 손길 속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는 여전히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존재다.
비록 그 수는 많지 않더라도, 끝나지 않는 성찰의 목소리들이 지금도 존재한다. 그 목소리는 거센 소비 문명과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우리를 다시 코스모스를 향한 회복의 여정으로 인도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그 질문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회복할 수 있다.
우리는 다시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