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의 해무는 속을 알 수 없는 여인 같다. 그녀는 말없이 머리칼을 풀어, 바닷물을 들인다. 그 뒤로 흐릿하게 풍경이 지워지고, 나는 천천히 멀어진다. 바다 안개는 방향을 흐리게 하고, 위치를 잃은 나는 허공을 더듬는다. 모든 소리는 축축하게 가라앉고, 해무는 그것마저 삼킨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남해의 바다는 느리게 숨을 쉰다. 짙은 해무가 피어오르고, 모든 것은 제 그림자를 잃는다. 이런 날이면 문득, 하얗게 혼돈이 번져 나가는 풍경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지고, 낮과 밤이 섞인다. 현실과 꿈이 맞닿는 지점에서 나는 길을 잃는다.
해무 안에서는 오직 나의 존재만이 또렷하다. 물결은 멈추고, 시간은 눅눅하게 젖는다. 새들은 저마다의 방향에서 날아와 머리 위를 맴돌지만, 그들의 날갯짓조차 소리를 잃는다.
사랑 앞에서, 마음은 늘 선명하면서도 흐릿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형체가 없다. 해무는 어선을 가두고, 사람의 마음을 묶는다. 태양은 빛을 잃고, 나의 눈은 서서히 침침해진다. 모든 것은 추측으로만 이어지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랑은 결국 안갯속으로 흩어진다.
혼돈의 해무 속에서 두 사람이 키스한다.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버린 채, 로망스처럼 서로를 탐한다. 해무는 그 순간을 감싸 안고, 모든 흔적을 덮는다. 남겨진 사랑들이 맞이할 아침의 퍽퍽함을 그들은 아직 모른다. 남겨진 이들이 감당할 막막함을 그들은 외면한다.
바닷가의 안갯속에서, 그들은 무수한 비밀을 만들고, 사량도의 해무는 그 비밀을 문지르고 또 문질러 없앤다. 어스름 속에서, 그들의 형체는 둘이 되고 하나가 되고를 반복한다.
기억은 해안으로 밀려온 쓰레기처럼, 잔존하는 상념처럼 출렁인다. 사랑에는 틈이 있다. 그 틈으로 이 막막한 안개가 스며들고, 산천을 떠도는 바람이 무심히 지나간다. 영원한 사랑은 없고, 순간을 지나지 않는 영원은 없다. 안개가 걷히기 전에 서둘러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씁쓸하다.
해무 속에서 잃어버린 사랑의 잔광을 더듬는다.
이곳에서 선명해지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