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사랑

by 이채이

게는 바다 밑바닥의 평야에 산다. 해류가 거센 골짜기에 모이지 않고, 염도가 일정한 해면 평야에 산다. 바람을 등지고 포근한 들을 품은 곳을 찾는 사람처럼, 해류가 잔잔한 모래나 진흙의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게의 삶은 외롭고 척박하다. 살기 위해 제 살 껍질을 찢고 상처를 낸다. 새 살이 아물기를 기다리며 고독한 날을 견딘다. 누구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연약한 생의 순간을 지키기 위해, 게는 돌이 되기도 하고 흙 속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때때로 마른침을 삼킨다. 숨죽이는 시간만큼 간절히 굳건해지길 소망한다. 인간에게 제 굴이 필요하듯, 게에게는 아늑한 자신만의 집이 필요하다.

게는 부끄럼이 많아 바다의 전면을 헤엄치지 않는다. 낮의 밝음에 두려움이 앞서면, 모래 속으로 숨어들어 납작 엎드린 채 곁 발로 걸어간다. 달님이 바다에 발을 담그면, 게는 달빛을 따라 걷는다. 작은 방패로 눈을 가리고 고요히 밭을 갈러 간다.

소금기 가득한 밑바닥의 땅을 경작한다. 밭고랑에 걸려든 작은 새우 서너 마리, 밭에서 뜯어낸 해조류 한 움큼. 이것이 바다 농장에 기대 사는 삶의 충만감이다.

밤의 바다는 애틋하다. 암게의 살갗이 아리도록 연한 날. 마음 가장 온순한 부분을 건드리는 그의 사랑 고백은 유순하게 성사된다. 달빛 아래 사랑은 연안의 바다를 따라 일렁인다. 둘은 껴안고 다독인다. 암컷의 여린 살결을 쓰다듬는다. 투명하도록 부드러운 딱지를 집게발로 감싸 꼬옥 안아준다.

다정은 밤새 녹아내려, 별빛이 내리듯 꼭 누른 집게 발자국이 등딱지에 찍힌다.

이 속수무책의 사랑은 갯벌 위에 잠시 머무르고, 구른다. 짧은 사랑 뒤에 영영 이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수컷은 바다 밑바닥의 제집에 돌아가 터덜터덜 다시금 땅을 일군다. 집게발을 모래에 깊이 박아 넣고 천천히 밭을 간다. 소금기가 눈에 들어와 눈을 깜빡이고 헹군다. 멀리 해풍이 분다. 그에게 남겨진 건 기다림과 가슴 졸임 뿐이다.

광활하고 아득한 그 어느 곳에 조류를 피해 그녀가 떠다닐까. 부푼 배를 안고 겨우 살아있을까.

결결이 붙은 알을 안고 바위 뒤에서 겨우 숨는다. 암게는 들판을 지나 완충의 바다에 간다. 이제 홀로 어린 알을 키워내던 응어리가 다 풀어질까. 자식을 품에 안은 채로 온몸을 턴다. 어린아이들을 바다에 모두 내어준다. 그녀의 품을 떠나는 생명들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흩어진다.

여수의 작은 항구에 게가 풀렸다. 통발이 물 위로 올려질 때, 두 마리의 게가 함께 올라왔다. 짠 내와 파도, 그리고 그들이 품은 바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게들은 서로의 집게발을 맞잡은 채, 끝내 풀지 않았다. 수게의 집게발엔 농경의 흙이 묻어 있고, 암게의 등엔 집게발 자국이 지문처럼 나 있었다.

통발 속에 굳은 두 마리의 게. 잠시, 모든 것이 멎는 듯했다. 바다는 숨을 삼켰다. 그들의 마지막 포옹이, 흔들림 없이 멈춰 있었다.


* 암게는 탈피 직후 등딱지가 연약할 때만 교미할 수 있다. 암게는 평생 한 번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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