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에 간다. 그곳에 훌쩍이는 여승이 있어 염주알을 쥐어주러 간다.
구름의 문을 열고 들어선 산문엔 출가한 여자가 있다. 새벽 마당의 이슬을 쓸고 저물녘의 그리움을 털어내던 여자였다. 양지바른 빈터마다, 가을이면 노란 산국이 무더기로 피어났다. 산국의 꽃 털이 거칠어서 외설스러워 보였다.
산국에서 남자의 냄새가 났다. 바람은 이미 겨울의 입김으로 얼어가는데, 그 향은 헐떡이는 땀과 체온을 기억한다. 꽃잎에 얼굴을 묻었다. 누군가가 남기고 간 거친 숨이 귓가에 눌려졌다.
오후는 모네를 언덕으로 불러내던 그 빛으로 가득하고, 모네의 강둑에 핀 꽃들처럼 잔바람이 옷깃을 펄럭였다. 여인의 치맛자락엔 들국의 향내를 숨겨둔다. 아무도 누구의 향인지 묻지 않았다. 그리움은 이름을 가지지 않으니까.
그 향기에, 여승은 설핏 웃었다.
산비탈의 바위를 비집고 덜컹 돌부리를 캐냈다. 가끔 부처님의 마음이 계곡에 머무르면, 흐르던 물이 참선에 든다.
욕정은 조용한 수행의 틈을 비집고 일어나, 이미 사라진 그녀의 머리칼을 한 올씩 잡아당겼다.
파문으로 흔들려 신음하는 그런 날마다, 여자는 은행나무를 심었다.
오백 년은 산다는 나무를 심어서 시리고 푸른 젊음을 넘어가고 싶었다. 안개에 갇힌 욕망의 시간을 건너가고 싶었다.
세월이 사각사각 쓸려간다. 고요를 흔들었던 것들이 잠잠해진다.
운문사의 은행나무가 잎을 떨군다기에, 애써 찾아간다. 여승의 손을 잡고 마음을 준다.
가을날, 이별을 바라본다. 손을 놓지 못해 머뭇거리는 지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망각의 땅에 쌓여간다. 그 땅에서 나는 나를 잊고, 너는 너를 잊는다.
바람이 쏠려온다. 나무에 달린 잎들은 아직 착륙 허가를 받지 못했나 보다.
흔들리며, 하늘 위를 선회하는 날개처럼
주저하며, 맴돌며, 아직 내려오지 못한다.
가을이, 조금 더 남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