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늘 가혹하다

by 이채이

먹먹함처럼 또 물안개가 오른다.

숲은 나지막하게 엎드려 허파를 들썩거리고, 나는 짐승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있다. 불규칙한 맥박으로 두근거리던 생명에 촉촉한 물기가 새어들었다.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나의 일상이다.

바닷가 우체국으로 간 편지는 답장이 없어서, 오늘도 허탈했다. 물봉숭아의 꽃잎을 말려두고, 산수유 빨간 열매도 두어 가지 꺾어 두었다. 산국들이 한창이지만 곧 향기를 잃을 듯해서 애가 탄다. 나의 다정은 당신에게만 유효하다.

기러기 떼가 무리 지어 날아갈 때면 애써 가슴을 진정시킨다. 성실한 우체부는 당신의 곁에 머물 테지만, 철새들은 먼 이국을 향한 기대로 분주해졌다. 맨발로 땅의 온기를 느끼며 새들이 떠날 날을 헤아려본다.

나무에 기댄 채 멍해진 나를 문득 꾸짖는다.

아직 남아 있는 온기에 기대를 걸고, 새들이 좀 더 머물기를 바라본다. 길이 얼면 새들은 가버릴 테고, 하늘엔 길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테지.


산속 작은 집 창을 열고, 오솔길을 거슬러 오는 우체부를 기다린다. 그의 빨간 상자에는 당신의 전갈이 들어있을까? 당신이 보냈을 법한 고둥껍데기나 파도의 자장가는 아직 배달되지 않았다. 당신의 말은 여전히 잠잠하다.


산비탈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리와 햇살을 며칠을 더 견디면, 잎은 단단히 구워질 것이다. 기쁨에 겨운 나는 바닥을 구르고, 잎을 모아 하늘을 향해 던질 테지.

나의 목청에 놀란 기러기들이 고도를 낮추면, 은행잎 한 움큼 실어 보내려 한다. 그때까지 기러기의 항로는 결정되지 않아야 할 텐데..

"당신의 바다에도 가을이 찾아왔습니까?"

말이 없는 당신에게 나의 독백은 무한 반복이었다. 사랑을 차지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기다림은 언제나 가혹하다. 한 번도, 나의 당신이었던 적 없는 당신을 마주할 때처럼.

당신의 우체부가 내 편지를 빠트린 건 아닌지, 조곤조곤 물어야 한다. 시샘 많은 파도가 제대로 대답해 줄 리 없겠지만, 그래도 캐물어야 한다. 부디 왁자 왁자한 모래알들의 입막음은 하지 마시길...

당신이 무엇으로 나의 가을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외롭지 않다는 말, 잘 지낸다는 말로 보고픔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나는 허구헌날 그리움을 뭉치고 있을 뿐이다. 그리움이 더 굳기 전에 밀대로 밀고, 가늘게 썰어 볕에 말려둔다.

보라색 아스타가 마른기침을 해댄다. 서리가 심한 아침에는, 고루 마른 그리움을 우려서 따뜻하게 기억하려 한다.

조금씩 꽃이 시들어 가고 있다. 꽃이 얼어버리면, 먹먹함이 마음을 점령할 것이다.

오늘도 당신은 물안개처럼 가득하다.

당신이 없는 계절은 늘, 이렇게 흐린 채 흘러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