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이 겨울엔 내가 얼어 죽어도 쟤 따뜻한 건 보기 싫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있고 여름엔 내 온몸에 땀띠가 나고 말지 저놈 시원한 건 못 봐준다! 하고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단다. 그냥 사람들이 웃자고 한 말인지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래설까, 양띠가 태반인 우리 동기들은 겉돌기만 할 뿐 좀처럼 뭉쳐지지 않았는데 자랄 때는 물론 나이를 먹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 뒤둥그러지기만 하던 친구들이 동창회 회장단의 끊임없는 손짓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면서 슬슬 모이기 시작했고, 일 년에 두 번 정기동창회 말고도 이런저런 일로 만날 일을 만들더니, 양력설과 음력설사이 제일 추운 섣달에 동백꽃을 보러 남해엘 가기로 했다.
사람은 사람끼리의 일로 바빴고 세월은 세월대로 쉼 없이 흘러가 이젠 누가 봐도 늙었는데 우리끼리 있을 땐 아직도 얘, 쟤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친구들이다.
지난달 아이린의 정원에서 송년모임을 했고 그날 참석하지 못했던, 지금은 퇴직하고 남해에 자리 잡은 김교수의 동백꽃을 앞세운 꾐에 빠져 우르르 남해로 몰려가기로 했다.
'남해 갑시다' 번개 공지에 저욧! 참석합니다.
친구들이 번쩍번쩍 손을 드니 신이 난 회장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단톡방에 공지를 올린다.
볼 곳 먹을 곳 잠잘 곳 사진과 지도를 쉼 없이 올려 까까까까까톡톡톡 정신이 들락날락할 지경이라 단톡방 소리를 죽였다. 아! 살 거 같네. 진작 죽일걸.
오늘도 각자 신분증과 복용하는 약을 챙기라는 회장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아무리 젊은 척해도 소용없다. 약보따리 챙겨 들고 가야 한다. 장거리 운전이 걱정되지만 내가 타고 갈 차 담당은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니 자동차쯤이야! 그들을 믿는다.
그러나 저러나 이 모임을 지극정성 이끌었던 전 회장은 말띠고 지금 꼼꼼하다 못해 촘촘한 회장과 총무는 잔나비띠다. 말과 잔나비가 양 떼를 몰고 다음 주 목요일 남해로 동백꽃을 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