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나아가는 것
아이들이 등교를 마친
아침 9시.
아이들 책상과 맞붙어 있는
나의 작은 사무용 책상에 앉는다.
노트북과 작은 모니터,
키보드, 공책, 달력, 전화기를 놓으면
컵 하나 놓을 공간이 조금 나오는 이 책상이
요즘의 나의 일터이다.
이 좁은 책상에서
나는 매일
아시아, 오세아니아, 한국 지역의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를 찾고,
영업 전화를 건다.
그들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대표전화로 무작정 전화를 걸어
구매팀 연결을 부탁해본다.
당연히, 쉽사리 연결해주지 않는다.
어렵게 구매팀에 연결이 되어도
기존 거래처를
방금 걸려온 회사로 바꿀 리 만무하다.
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빠와 남편의 반응은
근심과 걱정 그 자체였다.
아빠는
"우주에 갔다 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 같아"
신랑은
"넌 분명 열성을 다해할 텐데,
맨땅에 헤딩하기에 너의 열성이 너무 아깝다"
그럼에도
난 이일을 제안 받았을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켜달라고했다.
아이들의 육아 시간을 피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신랑의 고용 상태가 불안정해지고
학원비라도 벌어야 했다.
그치만 아이들 육아도 포기할 수 없었다.
9시부터 애들 오기 전 2시까지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이전 회사 동료가 집에 놀러 왔다.
아시아 시장을 영업해 볼 사람을 뽑고 싶은데
사업체가 너무 작아서
면접 보러 오는 사람도 없고
영어를 어느 정도 하면서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 있는 사람을 뽑기에
연봉도 부담스럽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에게는
아이들의 육아를
침범하지 않는 시간대의 일이라는 게
가장 중요했기에
그 친구로부터 이 일을 제안받았을때
고민 없이 하겠다고 결정했다.
급여를 많이 줄 수 없지만
괜찮다고 했다.
육아를 하면서
생활비 조금 벌어보자는 마음이었다.
쉽지 않은 일 일 거라고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우주에서 별을 따오는 일 일 줄은 몰랐다.
이 일을 시작하고 지난 3월로
만 1년 동안 매일같이 좁은 책상에서
전화기와 씨름을 해왔다.
이렇다할만한 성과 없이 1년이 지났고
매일 전화를 걸어
매일 거절을 당했다.
매일 아침 노트북 앞에
나를 질질 끌어다 앉혀놓는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은 일이지만
나는 매일 나 스스로를
그 자갈밭으로 질질 끌고 가 앉히고
가시덤불 속으로 밀어 넣는다.
성과 없는 하루하루에
그 사장 친구에게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 일과가 힘겹게 끝나도
보람이라는 게 없었다. 성과가 없으니.
그리고, 내일이 다가오는 것이 늘 걱정되었다.
나의 인스타와 유튜브 알리고리즘은
자기계발, 살림, 아이교육, 독서이다.
그 속의 인플루언서들은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내 연봉을 하루에 벌어들이고,
아이도 잘 키우고,
호텔처럼 집을 예쁘게 가꾸며
깔끔한 살림을 한다.
내가 꿈꾸던 삶이다.
그런 비교 속에서도 난 꿋꿋했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무리 괴롭고 모진 거절을 받았어도
답답함에 괴성을 질러본 적은 있지만
거절에 무뎌지고 계속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결국 전화기를 붙들고
울음이 터진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만 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구매팀을 바꿔달라는 부탁 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리셉션은 대꾸도 없이
어느 영업팀 여직원을 바꾸어줬다.
(구매팀을 바꿔달라고 했는데)
그래도 그 여직원은
영어로 소개를 늘어놓는 내 말을
친절히도 들어주었고,
Korea라는 말에 한국 영업 담당자의 이메일을
열심히 불러주었다.
이메일을 어렵게 받아 적었는데
그 이메일 주소가 구매 담당자가 아닌
영업담당자였다는 것을 안 나는 다급히
영업담당자 말고 구매담당자의 연락처가 필요하고 했다.
그러자,
그 직원도 인내심이 한계에 부딪혔다.
구매팀은 영어를 못한다,
그들의 내선번호를 모른다,
알아도 회사 내규상 알려줄 수 없다 등등
나를 떨쳐버리고 전화를 끊으려고 안감힘을 썼다.
구매팀 내선번호와 이메일을 꼭 받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그 영업사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 직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와 몇 분을 그렇게 실랑이를 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설득하는데,
뚜뚜뚜뚜....
그쪽에서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다.
순간
끊긴 전화기를 붙들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는 많이 겪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도
이날은 달랐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매달려 본 적이 있었나.
무엇이 나를 이렇게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어린 시절 공부를 덜한 결과인가.
내 과거를 자책하고 현실을 비관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에
흐느꼈고 그런 내 모습이 처량했다.
되기는 하는 일일까..
언제까지 해야 하나..
막막함에 괴로웠다.
말했지만,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한 푼 벌어보겠다고 내가 자처한 일이다.
울음은 길지 않았다.
여전히 괴로움이 남아 있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다음 회사에 전화를 돌렸다.
신호가 가고 어느 리셉션의
밝고 상냥한 목소리를 들리니
방금 전까지의 괴로움과 우울감은
새로운 기대감과 전투태세로 바뀐다.
제발 되라라는 심정 하나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많은 전화를 돌려
기회를 낚아보려 한다.
최선은 이런거다.
넘어졌고,
또 넘어질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그래도 다시 해보겠다고 용기를 내는 것,
이것이 최선이다.
다시 일어선 것에
스스로를 칭찬해주었다.
잠시 무너졌어도
다시 해보겠다는 마음을 높이 산다.
버틴다는 것은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임을 깨닫고
오늘도 전진해본다. 최선을 다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