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에 떨어진 핵폭탄
6시 반,
평소보다 신랑의 퇴근 시간이 늦다.
"늦누?"
"ㅇㅇ, 나 기다리지 마."
"... 무슨 일 있어?"
"응!"
"... 안 좋은 일이야?"
"응, 소화 잘 되는 저녁으로 준비해 줘"
마지막 카톡은
내 등골을 충분히 서늘하게 만들었다.
평소 주는대로 잘 먹는 신랑이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먹어야 할만큼
속이 말이 아니라는 뜻인데,
우리에게 안 좋은 일이란
신랑이 회사에서 잘리는 일뿐인데..
내가 개복치인걸 아는 신랑은
웬만해서는 안 좋은 일이라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소화가 잘 되는 저녁을 부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직감적으로 정말 큰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사고가 터졌구나..
그리고 8시, 신랑 전화
한 번이 채 울리기도 전에 받았다.
평소와 다른 상기되고 무거운 목소리
"사고가 났어. "
"......"
"장중 추가 증거금이라는 제한 때문에 매매가 물려서..
내일 반등하면 오히려 수익으로 돌아올 수 있고.."
"... 손실 규모가 어느 정도인데?"
"마이너스 60%?"
"그게 얼마 정도야?"
"... 말하고 싶지 않다..."
"... 그래, 일단 조심히 와. 닭죽 해 놓을게..."
이날은
2024년 8월 5일,
한국 주식시장에서
서킷브레이크와 사이드카 제도가
동시에 발동될 만큼
주가가 폭락한 날이었다.
펀드매니저인 신랑은
이날의 주가 폭락으로
운영 사고가 났었던 것이다.
10시가 다되어
신랑은 귀가를 했다.
애써 괜찮은 척 아이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집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두려움과 걱정 어린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내일 주가가 반등해서 시작하면 괜찮아"라고 안심을 시켰지만
돌아서는 뒷모습은 긴장감과 초조함이 역력했다.
닭죽을 내어 주었지만,
두 숟가락을 채 먹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날 새벽 5시.
아침잠이 많은 신랑과 나는 밤을 뜬눈으로 꼴딱 세었다.
"킁아, 다행이야, 야간장이 반등했어.
오늘 가서 잘 방어하면
잠정 손실을 매꿀수 있어. 갔다 올게"
이때까지만해도
정말 그럴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고가 우리집에 생길일이 없어,
어떻게 우리같이 평범한 가정에 그런 어마어마한 일이 생겨'라고
그때 그렇게 믿었다.
출근하는 신랑에게
"걱정말고, 반등했으니깐, 점심 꼭 챙겨먹어"
"응, 심지어 그럴수도 있을거야" 하며
신랑은 서둘러 출근 했다.
그렇게 출근한지 몇시간 후,
신랑의 전화 한 통화.
"결국 사고가 터졌어. 손실이 확정 되었어.
현재 500억이고,
최대한 방어를 하겠지만
추가 손실이 있을거야.
우리 가정에 경제적으로
문제가 복잡해질테니
당분간 소비를 줄여야해"라고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
올것이 왔구나...
마이너스 500억...
마이너스 500억...
회사 짤리는 건 당연한 거고,
회사와 소송을 준비할 수도 있고,
꼴랑 가지고 있는 아파트 한 채,
돈 없어서 절반이 빚인 그 집을
빼앗기는 건가?
신랑은 구속되는 건가?
낙담해서 한강 근처에 가면 어쩌지?
그나저나, 당장 다음달 카드값과 생활비는 어쪄지?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신랑의 펀드매니저로서 생명이 끝날 거라는 것.
내가 전업으로 아이들만 돌보면서
10년을 외벌이로 살아온 우리집에
하루아침에 수입이 끊길 예정이다.
자기는 일주일 동안
손실맞은 투자자들과 만나야하니
앞으로 자기가 뭐 해먹고 살아야할지 알아보란다...
문뜩
신랑과의 첫 소개팅 때
신랑을 높이 샀던 대목이 생각났다.
"저는 제 직업에 200프로 만족해요"
이정도의 직업 만족도라면,
처자식 굶기진 않겠구나,
부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착각했던
대책없고 순진했던 내가 한심 스러워진다.
우선,
아이들 피아노, 플륫 학원을 끊어야 한다.
(생활비 중 가장 큰 지출)
원장님을 너무 좋아 했던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통보에 눈물 바다가 되었다.
차를 처분해야 하고,
신용카드를 없애야 한다.
쿠팡멥버쉽, 코스트코, 신문구독, 유튜브,
멜론뮤직, 상조, 우유배달을 즉시 정지시켰다.
가끔하는 외식, 국내 여행, 매끼 고기만찬,
심지어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집어올리는
군것질 비용까지도 긴축해야 한다.
여름은 덥게, 겨울은 춥게.
남루하고 형편없는 것들도
바꾸지 못하고 그냥 사용해야한다.
이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밋밋하고 지루할만큼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사고와 함께 하루아침에
이 평범한것들을
더이상 누릴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그나마 나는 전업으로 들어서면서
둘째가 3살에 되던 해,
아이들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다가
에어비앤비 숙박업,
전자부품 재택 근무,
공부방등을 소소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벌어 들일수 있는
수입이 300만원 가까이 되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4인가족이 서울에서 300만원으로
한달을 살아낼 각오를 해야 했다.
그렇게
밤이 어두워졌다. 나도 누웠다.
잠을 잘수가 없다. 제발 자고 싶다.
밤새 머리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떠나질 않는다.
낮부터 이어지는 정신 노동이 끝나질 않는다.
밀려드는 불안감에
하와이대저택, 스터디언, 김미경 영상들을 보며
위기 대처법, 갓생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들을 보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그런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그래, 다들 이런 위기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어.
우린 아직 다 잃은건 아니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다시 시작하면 돼.
꾸준히 성실히 몰두한다면
나중에 이런 지옥을 추억 삼아 이야기 할 날이 올거야.'라며
최선을 다해 긍정을 하려 했다.
아이들 숨소리만 들리는
이불 위에 멍하니 앉은채
휘감기는 공포감에
몸 서라를 치며
눈물을 이 악물고 쏟아낸다.
지금이라도
이모든게 꿈이었다고
말해주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