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찍어봐

지워지지 않을 '선'이 될 거야.

by 에스더

그날도 낭독 노동을 하는 중이었다.

아이가 집어 온 그림책을

기계처럼 읽어주고 있었다.


피너 레이놀즈의

'THE DOT'이라는 그림책


그림에 소질이 없었던

Vashiti라는 아이가

그의 작품으로 도배가 되는

전시회를 열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 꼬마를 화가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선생님의 마법의 한마디였다.


"점만 한번 찍어 볼래?"


그 썰렁한 점은 다음날

선생님의 자리 중앙에

화려한 금태 액자에 걸린다.


그 초라해 보이는 점을 넣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아까운 액자였다.


Vashiti는 그 액자를 보는 순간

마음의 전환점을 맞는다.


"솔직히...

저것보다는 잘 찍을 수 있다..."


그 작고

심심한 검은색 점보다는


조금 더 크거나,

조금 더 색을 입히거나,

조금 더 무늬를 넣는 건 할수 있을 것 같으니깐.


어느새 Vashiti는,

점을 그리지 않아도 점으로 보이는 점까지

그려내며 다채로운 점들을 그려냈다.





살아내고 있는 이 하루하루는

Vashiti의 점만큼이나 권태로웠다.


이날은

몸부림을 치듯

변화가 목말랐다.


아이들 등굣길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근처 공원으로 돌려 향했다.


빠른 걸음,

느린 뜀박질을 반복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스쿼시를 끊은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나의 몸뚱이는 5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금새 땀범벅이 되었다.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할 상태가 되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하찮은 몸뚱이까지.

나에게 무슨 가치가 남아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눈물.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

내가 꿈꾸는 그곳에 다다르지 못하고

그냥 이대로

권태로이 흘러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


결혼 10년

책육아 10년

이게 10년 전 내가 상상했던 그 모습인 걸까?


무탈하게 살아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나였지만

권태로움과 싸우고 있구나를 느끼며

감정이 일렁였다.

부정을 떨쳐 버리고

긍정으로 돌아가기 불가능했다.

나 자신을 모질게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런 감정 소용돌이속에서

갑작스러운 뜀박질에 놀란 폐과 심장은

그새 차분해졌다.


눈물을 닦고

숲속 계단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 권태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점.

점 하나만 찍어보자.


내 삶은

내가 살아 숨쉬는 한

만들어 지고 있다고.


그게

글로, 예술로,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지,


나는

매일 낭독을 하고,
아이의 하루를 설계하고,
돈을 아껴 쓰고,

따뜻한 저녁식사를 만들어 내며,
지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기운을 내어 다독였다.


그리고

그 삶을 문장으로 남기고 있다.

지워지지 않을, 내 시작의 증표

하나를 찍듯이.


이 점들이

나에게

누군가에게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

'기꺼이 찍어보리다'라는 마음으로.


큰 변화가 아니어도 괜찮아.

이 점이 모여 선을 만들어 낼 거라 믿어본다.


내 성실은 모두가 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성실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가치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음이 가뿐해진다.

어느것 하나 쉽게 얻어지지 않음에

오늘 하루도 쉽게 살아지지 않음에

오히려 감사하다.


이 하찮은 몸뚱이부터 재정비해야겠다.

다음달 스쿼시 등록을 목표로

기초 체력을 만들어 보자.


그 길에 도착하지 않았을 뿐

방향을 잃은 건 아니니까.

걱정말거라, 애미야.




<살고 싶다는 농담_허지웅>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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