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주는 일

잘할 거라고 믿지만, 못 해도 괜찮다 아가야

by 에스더


내 친구 집에 우리 가족이 초대를 받은 날이었다.


난 아이들의 방해 없이 친구와 수다를 떨고 싶었다.

방문 하루 전, 난이도가 꽤 있는 성인용 나무 조립장난감을 구입해서 첫째에게 던저줘야겠다고 계획했다. (영상을 조금이라도 덜 보여주려는 계획)


손재주가 좋고 집요한 성격의 첫째 아이는 로켓배송으로 배달된 조립을 당장 시작하고 싶어했지만 애미의 만류에 열어보지 못하고, 친구집에 도착하여 어른들께 인사를 하자마자 앉아서 조립을 하기 시작하였다.


장장 5시간에 걸친 작업이었다.

첫째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조립을 하였고, 그 조립품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난이도가 꽤 높았다. 완성품을 두 손에 소중히 올려 어른들의 식탁으로 가져온것이다. 첫째가 만들어온 완성품을 보았다. 어른들이 시끄럽게 수다 꽃을 피우는 옆에서 꿋꿋이 장시간동안 그 고난위도의 조립을 완성했다는게 세삼 놀라웠다. 어디 하나 허슬하게 끼워진 것 없이 수십 개의 태협이 정확히 맞물려 아름다운 오르골 음악에 맞추어 아기 손톱보다도 작은 수십개의 건반이움직이며 잘 작동되었다.


"엄마, 드디어 끝났어. 나 밥 줘. 배고파 "


5시간의 노동과 몰입이 끝나고 나서야 허기를 느낀 아이는 그제야 밥을 먹었다. 다급히 아이의 밥을 챙기는데 숟가락을 든 아이이 손가락이 벌겋게 부르터있었다. 그 작은 손으로 얼마나 많은 조각들을 끼워 맞추느라 짖눌리고 긁혔을까. 아이의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며 화끈거릴 손끝들을 입김으로 식혀주었다.


그리고 옆에서 아이의 완성품을 본 내 친구의 부부는 이 아이의 집념에 놀라워했다. 얼큰한 취기에도 이 어린 아이의 순수한 열정에 깨어나듯 첫째의 완성품을 들여다보며 같은 말의 감탄과 칭찬을 멈추지 못하였다.


그들에게 멋지게 완성된 그 작품보다, 어떻게 그 어린 아이가 수많은 난관들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더욱 놀랐다. 중간중간 부러져 버린 조각들도 있었고, 그 작은 손의 힘이 딸려 손끝이 아플 때가 많았을 텐데 완성이라는 그 끝에 도달하게 하는 집념이 어디서 나왔냐는 것이다.


나에는 10년을 지켜본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 흔한 키즈 카페를 몇 번 못 갔다. 모임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가 아이들만을 데리고 그곳을 방문한 적이 없다. 동화처럼 꾸며 놓은 그 공간에서 손쉽게 작동 되도록 만들어 놓은 장난감들을 들었다 올렸다 하며 노는 것이 애미 눈에 재미 없었나 보다.


그런 애미가 아이둘을 대리고 가는 곳은, 숲이었다.

매 순간 바뀌는 자연에서 산책을 하고, 숲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게 놔두었다. 그러다 자연에 뒹구는 돌멩이, 흙, 식물들을 가지고 벌레 집을 만들거나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시간 가는지 모르게 관찰하게 하였다.


아이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부탁하기 전에는 먼저 달려가 어미의 힘으로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엇갈린 단추를 풀어서 다시 잠그는 일,

점원에게 냅킨을 달라고 부탁하는 일,

누군가에게 사과하는 일,

학교에 놓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가는 일,

손톱을 깎는 일, 잠자리 이불을 펴고 개키는 일 등등


어른인 내손으로
대신 해결해주고 싶은 충동들을
참아 내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반드시 될 거라는 믿음과 못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끊임없이 쏟아 주려 했다. 아이가 미미한 성취의 순간들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어미의 몫이었다. 말랑하고 흐물거리는 고사리 같은 손과 감정이 꽤나 쓸모 있는 도구로 정교해지기를 기다려 줘야 했다.


나 같은 행동파 어미에게 너무 많이도 지체되어야 하는 그 시간들을 그냥 지켜봐야하는 건 보통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이가 행복한 얼굴로 '엄마 나 해냈어', '하니깐 되네'라는 감격의 순간들을 빼앗지 않는 게 또 사랑이라는걸 안다.




내가 하는 일,

내가 하는 공부,

내가 하는 독서,

내가 하는 운동까지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을 10년을 이어왔다.


그때그때 돈 되는 다양한 일들을 하느라 한 경력으로 모아지지 못하였고,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읽어 주고자 연습하는 영어 낭독은 내 유학 시절의 영어실력과 큰 차이가 없고,

아이를 낳고 시작된 뒤늦은 독서는 그저 힘든 일상에 위로 정도 돼줄 뿐이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스쿼시와 달리기는 이런저런 핑계들로 띄엄띄엄 이어갔기에 큰 실력의 향상은 없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뛰진 않아도 매일 걷고 나아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들 위해 정신없이 달리면서 소리 없이 자라고 있는 내 아이들의 시간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내 곁을
떠나가는 그 순간까지는
나의 삶, 어미의 삶은
정성을 다해 붙들고 싶다.
안간힘으로 '천천히'
꾹꾹 눌러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점들이 모여

지워지지 않을 나의 선을 만들 것이라 오늘도 믿으며 걸어간다.그 꾸준함으로 습관이 모여 내 삶을 이어 줄 것이고, 그 삶은 나와 나의 아이들에게 단단하고 건강한 길을 선처럼 이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그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내 삶이 내게 소중한 것이 되어 가고 있다고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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