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미의 달라진 주말 일상

적막을 찾아다니는 어미

by 에스더

그날도 아침 8시부터 어미는 부산스럽다.

앞집 엄마와 9시에 남양주로 출발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핫하다는 수영장이 딸린 남양주 대형 카페 10시 오픈시간에 맞추어 가려면 8시 기상은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유부초밥, 김밥, 과일, 라면, 과자, 음료를 바리바리 챙기고, 동네 마트보다 2배 비싼 간식을 사달라고 조르는 사태를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 떠나기 직전까지 어미는 최대치의 집밥으로 4살 첫째 아이 배 속을 채운다.

그렇게, 막히는 시간을 간신히 피해 가깟으로 오전 오픈런에 늦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에,


이 어미보다 1시간은 더 부지런했던 엄마들의 줄로 문도 안 열린 카페 앞은 이미 문전성시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그 인파 속으로 뛰어들어 줄을 선다.

보따리짐을 이고 지고,

황금 같은 주말을 결코 집에서 지지고 볶지 않고 싶은 어미에게 인파 따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물놀이하는 아이가 잘 보이면서도 수시로 주전부리를 먹으러 테이블로 안전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명당자리 안착에 성공하고, 튜브까지 씌워 물로 아이를 띄워 보낸 어미는 그때부터 액자 육아(눈으로 액자의 그림을 보듯 하는 육아)를 하며 앞집 엄마와 들이키는 아메리카노가 그렇게 달다.

부산스러웠던 오전 시간을 보상받는 순간이다.


그다음 날 일요일은 동네 언니와 파주 나눔 농장에,

그다음 주는 신랑 친구 부부네와 1박 2일 캠핑이,

그 다다음주는 첫째 친구 엄마와 낚시터...

광명 이케아와 김현아(김포현대아웃렛) 물놀이장, 영종도 마시랑은 수십 번,

1시간 거리의 경기도 카페, 과학관, 박물관 리스트는 수십 개였고 2~3번씩 방문한 곳도 많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의 첫 육아 주말의 풍경은 평일보다 바쁘고, 동분서주하느라 에너지 고갈에 허덕였다. 그럼에도 아이를 싣고 어디론가 향하거나, 어쩌다 계획이 없는 주말이면 동네 공원에서 아는 엄마 누구든 불러 수다의 꽃을 피우고, 아이는 아이들끼리 하루 종일 킥보드와 인라인을 타게 했다.




엄마들과의 수다는 정말 달콤했다.


공통 관심사, 반찬 나눠주는 다정함, 개그우먼 못지않은 입담들, 마르지 않는 남편 험담...

워킹맘이었던 어미는 주말 약속을 떠올리며 아이보다 더 설렐 때도 많았다.


설레고, 달콤한 것들은

이래서 경계를 하라고 하였을까?


맥심 커피와도 같은 엄마들과의 시간들은 너무나도 달콤 쌉쌀하게 모든 피로가 날아가듯 개운함을 주지만 지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물론 웃을 일 없는 일상에 그렇게 크게 웃고 떠들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시간들은 맥심보다는 큰 즐거움과 이득을 가져다 준건 사실이다.


그렇게 중독성이 강한 그 만남들의 횟수를 늘리고 어느덧 의존적으로 감정을 털어 내기 위해 습관적으로 그 만남들을 만들고 있었다.

그럼 아이들은?


아이가 있는 엄마들과 만나며 아이들끼리도 노니깐 죄책감 없이 만남의 횟수를 늘렸다. 횟수가 늘수록 내 아이들은 엄마의 친구 아들딸과 끼워 맞추어 놀아야 하는 거였고 어른들의 수다를 방해하지 않게 하기위해 마이쭈를 입에 찔러 넣거나 아이의 요구사항을 무심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을 좋아해도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에 맞추어야 하고, 벌레를 좋아해도 킥보드만 타는 아이를 따라다녀야 했다. 아이들끼리 감정싸움이라도 나면 각자 엄마들은 자기 아이들을 묻지도 않고 다그치고 억지 화해를 종용한다.


그러다 서서히 나도 앞에 앉아 있는 엄마들과의 대화에도 권태기가 찾아왔다.


결국 들어보면, 자기 중심적인 얘기들, 은근 돌려 하는 자기 자식 자랑, 자기 문제에 대한 위로를 더 원하기 때문에 내 감정을 조금 위로 받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내 아이가 어떻게 방치되고 있는지 살피다 화들짝 놀란다.

어미의 본업을 잊고 수다에 빠져 아이를 방치하고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주말에 집에 붙어 있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아니, 적막한 것을 못 견디는 어미였다.

그 적막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만 했기에 되는대로 시간을 때우고 흘려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적막을 찾아다닌다.

오롯이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나'와 만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안다.


이제 내 아이들은?

지루함의 충격에서 처음엔 힘들어 했지만 금세 적응한다. 왜냐하면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하는 어미를 옆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어미를 또 아이들은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그 어미를 따라 일기를 쓰고,

책을 탐독하고, 산책을 즐기고,

아무도 말 걸지 않는 그 시간을

그저 보고 듣고 느끼기만 하는 어미를.


그리고

오롯이 내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내 아이가 하고 싶은 것들로만 짜는 계획들.


그제야 비로소 어미는 안다.

내 아이가 어미와의 대화시간을

얼마나 설레여하는지. 원했었지.

아이의 눈동자가 이렇게 초롱초롱 했었는지를.

순간

‘동네 아줌마들과 웃고 떠는 어미 보고 내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싶다.


서로의, 각자의,

내면을 들여야 보는 시간들이 너무도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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