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다행인 사람

나에게 당신만 필요해요.

by 에스더


집안의 공기는 무겁고

긴장감이 돌았다.


서킷브레이커 사건 이후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에게 보고 할

끝도 없는 경위서와 미팅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신랑은 운영 본부장이었고,

이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과 수습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었다.

500억 원의 손실 폭격을 맞은 그의 회사는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다.

새벽 3시에 보내는 그의 메일에

즉시 답하는 사장 또한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례적인 폭락에

신랑의 과실을 논할 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판단착오, 신의성실?

그저, 고장 난 비행기의 추락을

막을 수 없었던 인간 조종사였을 뿐이다.


회사는 그를 징계할

어떤 죄목도 찾지 못한 채

폭격의 폐허를 수습할 뿐이었다.


한순간에 500억원이 증발된 사태는

모두를 경악시켰고

업계에서는

'그 펀드매니저 자살했다'더라는

괴소문까지 돌았다.




견마지로.

개와 말의 노력이란 뜻의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고사성어.


사고가 수습되지 않자

신랑에 사장에게 내놓은 마지막 고육지책.


본인은 당신의 개와 말이 되어

운전기사를 하든, 경호원을 하든,

몇 년이고 급여의 절반을 내어놓겠노라고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자했다.

사장은 싸늘히 됐다고 했다.


사장은

한 번씩 화가 날 때면

아무 때고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트집을 잡고 책임을 지울

그 어떤 죄목을 찾으려 했다.

하다 하다 안되면

갖은 협박과 폭언을 퍼부었다.


그 협박의 중심에는

우리의 아파트가 있었다.


아파트...

10억이라는 분납금에는

시부모님의 노후 전부가 받쳐졌고,

살인적인 세금과 이자를 감당하며

손에 쥔 아파트다.

우리가족의 전부였던 그런 아파트를

압류하겠다는 협박을 하며

어떻게든 사고의 손실을 줄이도록

악랄하게도 신랑의 목을 조였다.


매일같이

팀을 꾸려 한판 하러 몰려드는 투자자들과

손실금의 증발에 미쳐 날뛰는 사장을 감당하며

밀려드는 책임감, 죄책감, 막막함은 옵션이었다.


이 험악하고 살 떨리는 하루하루를

신랑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거지?


멀쩡히 걸어 다니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이 사람이 제정신으로 버티고는 있기는 한 건가

매일이 걱정되어 미칠 지경이었다.


"여보, 괜찮지? 괜찮은 거 맞지?

다른 생각하지 마.

사장 지랄 못 받아 주겠으면

그냥 들이받아버리고 집으로 와.

우리는 너만 필요해. "


"응, 괜찮아. 생각보다 괜찮아.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진취적이야"


진취적이다..


'내가 당신의 개도 되겠고 말도 되겠지만

내 가정을 건드리는 건 선을 넘는 것입니다.'

위기를 맞은 가장의 모습은

진취적이지 않을 수 없었고

비장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사고의 원인이 증권사의

전산 시스템에 있었다는 것이

확실 시 되면서 신랑은 그 어떤 징계도 없이

두달간 사고를 수습하고 퇴사할 수 있었다.


신랑은 퇴사 후

밤낮을 바꾸며 어두운 시간대에만 일어났고

낮에는 도망치듯 잠을 퍼부었다.


휴식이 필요했을것이다.

회복을 위한 휴식.

나 그저 가끔씩

자고 있는 신랑의 코밑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숨을 쉬는지만 확인 했다.

술을 먹거나, 날카롭지 않은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렇게 어둠속에서 내리 생활한지

3개월이 지나고 신랑은 같은 계통으로

재 취업을 하였다.

미래의 어떤 행운을 당겨다 썼다해도

과언이 아닌 운이 따라준 취업소식이었다.


자살 소문이 돌았던 업계에서는

신랑의 등장에

예수냐며, 부활한거냐며

놀라며 농담을 건냈다.

그말에 우린 쓴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으려면 -나겨울>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더 버티는 시간을 보내면 된다.

살아있어서 다행인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런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우울이라는 바다에 가라앉게 될 때가 있지만

지나고 보면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지나온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시간은 없다.

영혼이 잠식했던 시간에도

우리는 숨을 쉬고 있었다.

당신은 당연한 사람이 아니라,

다행인 사람입니다.




신랑은 몸둥이가 뜯기고 멘탈이 조각나도

가족은 절대 사수해야하는 1순위였고

온몸으로 지켜내고 있는 진정한 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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