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 감사하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동네 엄마들의
남편 자랑 퍼레이드.
"우리 애 아빠는
퇴근하고 와서
애 목욕시키고, 책 읽어주고,
저녁 육아를 도맡아 해."
"우리 애 아빠는
내 생일이라고
생일상과 맞춤 케이크를
준비했더라고. 매년 해.“
"우리 애 아빠는
매주 아이들과 캠핑을 그렇게 다녀."
나도 남편 있다.
우리 애 아빠는
퇴근하고
저녁 먹으러 집에 들렀다가
당구장으로 가. 매일.
애들이 가지 말라고 매달려도 그냥 가.
화장실과 컴퓨터 방에서
담배 피워.
금요일 밤은
술 먹고 새벽 4시까지 놀다 들어와.
어느 날은 아침까지 연락이 안 돼서
실종신고를 한 적도 있지.
집안일 분담? 육아 분담?
그게 모야?
(내가 미혼모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내 생일은
둘째 태어나고
운 좋으면 '생일 축하해'를 들을 수 있고,
그냥 지나가거나
"맞다, 오늘 너 생일이네?"하고
넘어가기도 해.
.
.
.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는 건
또 기분 탓이겠지?
연애 때 날 죽도록 사랑했던
내 운명, 내 사랑이는 어디로 간 걸까?
나의 아버지와 엄마 이야기
매일 만취해서 들어와서
엄마를 괴롭혔던 아빠
두 분은
매일을 사랑과 전쟁 드라마를 찍으셨다.
아니, 그냥 전쟁 드라마를 찍으셨다.
그래도
엄마는 아침이면
아빠에게 해장국을 대령하고
늘 아빠의 건강을 염려했다.
중학생이었던 내 눈에는
엄마의 그런 헌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런 남편과 왜 살까,
왜 이혼을 안 할까.
"엄마는 아빠가 안 미워?
아빠한테 왜 이렇게 잘해?"
그에
엄마의 놀라운 대답,
"딸아,
엄마 아빠는 서로 죽도록 사랑해"
“….”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죽도록 사랑한다고?
매일 술 먹고
늦은 시간에 들어와
가족을 귀찮게 하는 아빠가
늘 싫고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뒤치다꺼리를 다하는 엄마가
불쌍하고 가엽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사랑도 아니고
죽을 만큼의 사랑한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말,
"아빠는
힘든 일 엄마한테 얘기 안 해.
뒤에서 조용히 혼자 처리해."
“….”
아빠는
휘청이는 공장 운영을 포기하거나
숙취가 가득한 날에도
출근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는 사장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성치 않은 몸으로도
쓰러질 것 같은 사업체를
여러 번 일으켜 세우셨다.
부도가 나고
지하 단칸방에서 살아야 할 때도
나의 4년 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셨다.
아빠 형제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고,
고금리 대출을 알아보면서.
내 유학 시절은
공장 기계들을 팔아서
생활비를 보내주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아빠는
수십 년을 묵묵히
가족의 삶을 짊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 가족을 지켜내려고
외롭게 싸워 오셨다.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차가운 현실에 얼마나 고독했을까?
술과 담배 없이는
견디기 힘든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엄마에게,
그런 아빠의 희생과 책임감은
투박하고 다정하지 않았어도
사랑 그 자체였겠구나 싶다.
그런 아빠에게는,
부족한 살림에도 억척스럽게 살아낸
엄마의 따뜻한 내조와 헌신이
또 사랑이었을 것이다.
두 분의 사랑은
죽을 만큼 힘든 위기들을
함께 이겨낸 진짜 사랑이었다.
내 남편 이야기
그 사람도 그런 무게를 짊어지고 있진 않을까?
내 주변에서는
즐기기만 하는 내 남편과
애 둘을 전담하여 키우는 나를 보면
"그런 남편과 살고 있는 네가 보살이다"라며
남편은 늘 동네 엄마들의 욕받이였다.
모두의 욕받이였던 내 남편도
그 만의 사랑 방식이 있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남편은 조용히 정기보험에 가입을 했다.
가입자가 죽었을 때만 나오는 보험금.
가입 사실도,
그게 무슨 보험인지도 모른채
5년이 지나고 우연히 알았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다고
장난처럼 말하는 남편이었는데
그런 남편이
세상에 태어난 첫째를 마주한 순간
가장 먼저 한 일이 이것이라니.
아이 탄생의 기쁨을 뒤로하고
이 소중한 가족이
본인이 없이 남겨질 상황을 상상하며
죽음을 대비해 놓은것이다.
가슴에서 울컥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아이와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기 바빴던 나는
이런 진중한 고민과 마주해 본 적도,
그럴 용기도 없었다.
남편은 달랐다.
뜨거운 행복이 시작된 그 순간에도
가장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며
묵묵히 책임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신랑에게 물었다.
"넌 게으른 수사자 같아.
내가 애들 다 키우고
궂은일은 내가 다하잖아. 수사자 맞지?"
이 말에 신랑은 이렇게 답했다.
"맞아, 수사자.
근데 수사자는
외부의 침입에 목숨 걸고 싸우지."
“….”
그가 가장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에게 가족은
목숨 걸고 지켜냘만큼
소중한것이자
그만의 사랑 방식이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어요."
당신은 여전히
11년 전 그 레스토랑에서
내게 다가온
내 운명, 내 사랑이었다는걸.
여전히
애정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