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을 보고 상처, 치유, 글쓰기에 대하여
‘자전거 도둑’은 매우 짧은 단편소설이다. 집중해서 읽으면 10분 정도면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업 중에 토론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 깊이는 어느 장편 못지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단편이기에 제한된 정보 속에서 인물이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더욱 난해하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 된다.
이번 주제는 ‘상처, 치유, 글쓰기’이다. 이것은 여기서 글쓰기는 단지 글을 쓴다는 행위보다는 다른 이에게나 나 스스로에게 표현, 표출함으로서 치유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는 말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두 인물이 있다. 바로 김승호와 서미혜이다. 그 둘은 이 사회를 사는 평범한 인물들이다. 한명은 신문기자이며, 또 다른 한명은 에어로빅 강사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전거라는 매체를 통해서 서로 만나게 되고, 이야기 하게 된다. 내가 볼 때 이 둘은 유년시절 상처를 가지고 있다. 김승호의 경우는 혹부리 영감에 의해, 풍에 맞은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그로인해서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서미혜는 간질을 가지고 있는 오빠에 의해서 어찌 보며, 성폭행에 가까운 상황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서 수치심과 예전에 좋아했던 오빠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있는 그들은 스스로의 치유 방법은 달랐다. 김승호는 자신의 뺨을 때리는 아버지의 눈에 안 보이는 눈물을 보았고, 이는 혹부리영감에 대한 복수심으로 변하여 수도 상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것으로 복수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영화 ‘자전거 도둑’을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김승호는 꼭 서미혜 뿐 아니라 다른 주위에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이미 김승호에게 있어서는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으며, 이제는 과거의 대한 씁쓸한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 인 것 같다. 이 상처마저도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치유해가는 것 같다. 하지만 서미혜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그녀는 유년시절에 자신의 오빠를 직접적인 죽음으로 몰고 감으로써 일시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지만, 이는 그녀에게 치유가 아니라 더욱 큰 상처로 남게 되는 것 같다. 소설에서 보면 오빠가 죽은 다음에는 가출을 시작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있어서는 사처에 소금을 뿌린 듯 더 큰 상처가 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상적인 심리로 어릴 적 같이 타던 자전거를 기억해 다른 이(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성)의 자전거를 몰래 빌려서 타는 것 같다. 마치 자신의 오빠에 대해서 속죄하듯이 하는 행동 같다. 그리고 소설에서 아직도 자신의 오빠의 어릴 때 사진(간질 전)을 다이어리에 소중히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아직 그녀는 치유 받지 못한 것 같다. 그 치유 방법으로 자신이 훔친 자전거 주인과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치유를 받고자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자전거주인인 김승호는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자전거 주인을 자신의 오빠를 대신해서 용서를 구하고자 한 것이고 이것이 그녀 자신의 치유의 한 방법인 것 같다. 하지만 김승호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피하고 만다. 이로 인해서 그녀는 치유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치유해줄 다른 이를 찾아가는 것 같다. 만약 김승호가 그녀를 토닥토닥 감싸주고 그녀에게 그 일은 오빠도 용서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그녀는 다시 다른 이의 자전거를 몰래 빌려 타지 않았을 것이면, 어느 정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치유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둘은 좋은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승호는 다른 이의 상처를 감싸줄 만큼의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소설은 극단적인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우리는 나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서 상대방이 상처입고 또한 나도 상처를 입곤 한다. 이럴 경우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자신과 상대방이 치유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는 그에게 직접 못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나의 상황을 이해받음으로써, 자신이 치유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기 위안일수도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어릴 때 잘못을 하게 되면 ‘반성문’이란 것을 쓰게 한다. 반성문을 쓰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라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서 자기스스로 치유하라는 목적도 있는 것 같다. 진심으로 반성문을 쓰게 된다면, 자신의 반성하게 되고, 스스로 치유가 되는 것 같다.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주로 수다를 많이 한다.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감수성이 예민한 여성의 경우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치유하고자하는 것이 아닐까?
* 이글은 2010년을 전후하여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