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근수근문화일기
일시 : 2024년 11월 23일(토) 오후 5시
장소 : 경기도 수원시 모식당
'동창회의 목적'이라고 제목을 쓴 것은 사실 약간의 어그로일 수도 있다. 실은 동창회라기보다는 대학원 동문회이며, 근대사를 전공한 선후배들이 모이는 자리다. 어쨌든 연말을 맞아 교수님을 모시고 동문회를 다녀왔다. 우리 과는 대부분 학부생이 대학원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대학교 시절부터 이어져 온 선후배 관계가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래서 호칭도 자연스럽게 '형', '누나', '오빠', '언니'로 불린다. 물론 학번 차이가 크거나 관계가 깊게 이어지지 못한 경우에는 '선배님', '후배님'으로 존대를 하게 된다.
나는 이 모임에 오는 이유가 단순하다. 사실 '놀러' 오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그리고 대학 시절의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내게 대학 시절은 아주 즐겁고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동문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고, 다시금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모임을 주최하는 선배의 목적은 나와는 다르다. 그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이 모임을 유지하려 애쓴다. 우리끼리의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교류 나아가 일자리, 그리고 학계 영향력을 가지고자 한다. 하지만 이모임이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항상 있다.
사실 우리의 모임에는 더 무거운 이야기가 깔려 있다. 정년퇴임하신 교수님 이후로 학교에서 더 이상 근대사 전공 교수를 새로 임용하지 않고 있다. 근대사 전공 자체가 점점 학교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는 의미다. 이미 과의 존립 여부는 위태롭다. 국문과와 함께 인문학부 체제로 통합된 후로 과의 독립적인 정체성은 많이 흐려졌다. 심지어 최근에는 과의 명칭이 '디지털헤리티지학과'로 변경된다는 소문을 들었다. 전통적인 근대사 전공에서 점점 멀어지고, 디지털 시대에 맞춰 재구성되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듯하다.
그래서 이 모임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자리가 아니다. 동문들 간의 네트워크를 지속하며, 과거 우리가 배운 것들을 어떻게 오늘날에 연결할지 고민하는 자리다. 물론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오는 이유가 '놀러' 오는 것이지만, 대화 속에서 묻어나오는 선후배들의 고민을 들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