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서 돌고 도는 감기와 남은 여행에 대한 부담감
불가리아 여행은 기대만큼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작은 미련이 남는다. 여행 막바지라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우리 안에서 돌고 돌았던 감기 때문에 모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열심히 불가리아 관광지를 둘러본 다음 날, 우리는 전날 먹다 남은 통닭으로 닭죽을 끓여 먹었다. 빵과 커피도 마셨다. 한국인은 모름지기 밥심이니까,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밖으로 나갔다.
이날은 따로 정해진 일정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그러다 저녁이 되고 출출해진 우리는 평점이 좋은 중국 음식점을 찾아갔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특히 탕수육이 훌륭했다. 볶음밥과 야끼소바는 너무 짜서 먹기 힘들 정도였지만 다행히 중국어 전공자인 효둘이 주방에 부탁해 새로 만들어 주셨다. 덕분에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 일정을 정했다. 소피아는 웬만한 곳을 다 둘러본 것 같아 새로운 도시로 가기로 했다. 선택한 곳은 불가리아 제2의 도시, 플로브디프. 구시가지 유적과 다양한 예술 행사가 있어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효일이는 플로브디프의 멋진 카페에 가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남자친구,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사실 우리는 꼭 하고 싶은 것이 거의 없었다. 효일이는 ‘산책하기’, ‘멋진 카페 가서 사람들 구경하기’ 정도뿐이었고, 효둘과 효삼인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 보기’, ‘터키 열기구 타기’가 전부였다. 첫 번째 버킷리스트였던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 보기는 끝냈고,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터키 열기구 투어는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하지만 몇 안 되는 효둘, 효삼의 버킷리스트였기에 아빠 고니가 준 돈을 털어 열기구를 예약하기로 했다. 셋 모두 머리를 맞대고 가장 저렴한 업체를 찾기 위해 검색에 검색을 거듭했다. 그렇게 최저가로 예약을 마쳤지만, 여행 경비 100만 원 중 16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여행이 많이 남았는데… 돈이 없는 여행은 괴롭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다음 날을 기대하며 잠들어야 했지만, 효일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남은 여행 일정과 빠듯한 예산, 한국에 돌아간 후의 계획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효일은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 플로브디프에 가서 쓰려고 했던 편지를 숙소 방 안에서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다 쓰고 나니 어느새 새벽 6시였다.
그리고 7시쯤 효둘이 일어났다. 효둘은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플로브디프는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효일과 효삼 둘이 다녀오라고 했지만 효일도 밤새 잠을 못 잔 상태라 사실 쉬고 싶었고, 효삼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하루를 통째로 쉬기로 했다.
효일은 그날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효둘과 효삼은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몸을 회복했다. 오후가 되자 효둘과 효삼은 잠에 빠진 효일을 두고 장을 보러 다녀왔다. 장을 보고 오면서 전날 맛있게 먹었던 중국집 음식까지 포장해 왔다. 그리고 효일을 깨워 같이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밖에 비가 오고 엄청 추워.”
효둘과 효삼이 말했지만, 하루 종일 잠만 잔 효일은 아무것도 몰랐다.
플로브디프를 가지 못한 건 아쉽지만, 하루를 쉬었던 건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아무리 좋은 곳으로 여행을 왔다 하더라도 이런 멋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