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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Dec 30. 2022

모순된 진실

뇌과학 도서를 읽고 있는데, 거기에 다양한 신체 결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사례로 뇌과학을 설명한다. 

코가 없는 사람, 귀가 없는 사람, 태어날 때부터 눈이 없는 아기. 

그러나 그들에게 뇌를 통해 자극을 주며, 다른 감각으로 소리를 듣고, 앞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뇌의 특별한 적응 능력 정말 놀라웠다. 뇌의 가소성이라고 하는데, 뇌는 처음 태어날 때는 백지처럼 단순한 기능을 갖고 있는 상태로 태어나지만, 환경에 따라서 변화하고 발달하며 죽을 때까지 변화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0년 전의 나 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똑같은 라이프 스타일로 살고 있다면 똑같겠지만, 

10년 동안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졌고, 변화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맞춰 우리의 뇌도 변화가 일어났기에 다른 사람이 되듯 변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로 우리의 뇌도 변했다. 뇌는 코로나를 기억하고 코로나와 바이러스에 관련한 부분에 변화하였다. 

이제는 타인의 마스크가 편하고, 타인의 코와 입을 보는 것이 어색하다. 나의 코와 입을 보여주는 것도 어색해졌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마스크가 없을 때는 리액션을 하면서 많이 부담스럽고, 마스크가 그리워지곤 하다. 표정이 자연스럽게 안될 때가 많다. 나의 뇌에서 마스크 쓴 상태에서 웃음소리나 말로 리액션하며 대화 나누는 데에 익숙해져서 마스크 벗고 대화 나눌 때도 나도 모르게 무표정한 상태에서 웃음소리만 나는 어색한 표정이 만들어 지곤 한다. 이것도 코로나로 인해 나의 뇌에 일어난 변화 중 하나다.

  

또 다른 큰 변화. 10년 전에는 나에게 자녀가 없었다. 당시엔 심심하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지금은 심심하고 싶다. 나의 시간을 자녀들을 위해 많이 할애해야 하기에 나 자신을 돌볼 시간도 없다. 게다가 갑상선 암으로 나의 생각의 패러다임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서 10년 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뇌가 그 변화를 이끌고 있었다. 

나는 뇌이고, 뇌는 나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오감으로 나의 뇌에게 말을 건네고 뇌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따라 나를 바꿔가고 있다. 


책 속의 전신마비의 한 여인의 머리에 칩을 연결하여 생각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며 훈련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녀는 신기하기도 하고 가능성을 찾아서 인지 행복감에 웃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기계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컴퓨터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이렇게 훈련하는 시간 외에 어떻게 보내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어떤 감정과 생각으로 나머지 시간을 누워서 보내고 있을까? 그냥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아니 직접 만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일상을 몰래 훔쳐보기 위해 투명인간이 되어 다녀오고 싶어졌다. 그래야 오늘 내가 갖고 있는 나의 마음의 어려움들이 풀어질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나머지 시간은 힘들고 고통스럽고 무기력하지만, 과학이 가져다준 가능성을 찾았기에 뇌를 훈련하며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발견하였기에 매일매일 뇌를 훈련하며 삶의 의지를 다지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의 마음이 나와 오버랩되면서 그녀가 가진 힘듦에 비할쏘냐마는 내 마음도 많이 힘들구나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는데, 상황은 맘 같지 않고,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물이 끓기 전처럼 아직은 아무 변화도 없다. 

곧 물이 끓어오르는 100 도에 도달할 거라고 위안하며 기다려보지만, 오늘도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처럼 매일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불안하다. '아니야, 아닐 거야. 내일은 다른 날이 기다릴 거야.' 

자녀를 키우는 시기와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시기가 겹쳐지는 시기가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한다. 레이 달리오의 원칙 책에 그가 만들어 놓은 삶의 경험 주기에 그런 내용들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바로 자녀와 부모를 동시에 돌봐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다 자녀가 독립하고, 부모님도 돌아가신 뒤에는 다시 행복감이 높아지는 시기가 온다고 한다. 지금 내가 힘든 건 내가 없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시간이 없고,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하는 시기이기에. 부모가 되어 보니 금보다 귀한 시간을 자녀를 위해 사용하는 희생을 하게 된다. 기쁨으로 하고 있지만 이 봉사 시간이 길어지고, 자녀들은 반항하거나 엉망인것처럼 느껴질 때 이렇게 회의감이 찾아온다. 부모가 되면 너무 힘드니 부모가 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부모가 되어야 정말 고난이 무엇인지 알고 같이 성장한다는 생각에 부모가 반드시 되어 봐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모순되지만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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