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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n 17. 2022

인생은 회전목마

36살에 첫 아이를 낳았다. 6년간 기다림 끝에 얻었으니 임신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나의 행복을 향한 여정은 난이도 상 레벨 같았다. 가까스로 아들 둘을 얻었으나 지금은 둘째 아이가 던져준 숙제들이 많아서 놀이치료며 특수체육을 다니고, 학교도 잘 다닐 수 있도록 곁에서 돕고 있다. 


결혼 후, 6년 동안 매일 같이 꿈꾸며 아기를 기다렸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나에게만 아기가 안 생겨서 참 힘들었었다.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간절해야 생긴다"라는 얘길 했다. "저 지금도 간절해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간절한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분의 얘기에 한 계단 올라선 듯한 간절함이 생겨났다.


 "더 간절해져야 생겨요"

그분은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고, 남자였다. 결혼한 남자였고, 아들이 둘이나 있었다. 전문직을 갖고 있으며 싱겁게 농담이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부부 동반한 모임 자리에서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조언을 던져줬다. 그런데, 나는 그걸 덥석 물었다. 


'그래!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아기를 기다리고 실망하고를 반복해 왔는데, 더 간절해야 한다고? 그래, 더 간절해 보자' 

섭섭하고 서러운 마음도 생겼지만, 곧 생길 거라는 위로나 격려가 필요한 것보다 당장 내 품에 아기가 있어야 해결될 문제였기에 나는 더 간절해져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 아기가 안 생기면 나는 여길 떠날 거야. 한국을 떠나서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지'라고 마음먹었다. 그 정도로 비장했다. 

남편에게 얘기하고 같이 기도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새벽기도에 가기 시작했다. 새벽 5시 교회로 가서 기도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성에 못 차서 하루 세 번을 기도했다.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기도했고, 저녁에는 산책 겸 운동으로 걸으면서 속 타령인지 푸념인지 모를 기도를 했다. 눈물이 절로 나왔다. 내 나이 36살을 며칠 앞둔 12월이었는데, '만으로 35세가 되면 노산으로 이것저것 검사도 많이 해야 하고 아기에게도 안 좋다던데..'라는 불안에 배수진을 치고 내년에는 반드시 아기를 안아야 한다는 각오로 간절히 구했다. 나에게 왜 아기가 있어야 하는지를 파워포인트로 브리핑하듯이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하며 기도하였다. 반드시 있어야 하고 반드시 주셔야 할 이유들을 성경에서 찾아서 '여기에 적혀 있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거짓말하신 거 아니신가요?'라고 따지듯 기도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딱 한 달 만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완전한 태몽도 꾸었다. 정말, '이것은 무조건 태몽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생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스토리로 꿈에서 한 번도 본적 없던 동물들이 나타나서 나에게로 왔다. 

태몽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임신 사실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금방 행복해졌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고 하는데, 정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긴장이 확 풀렸다. 


36살 1월에 임신 사실을 알고, 10월에 출산하였다. 내가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기도해서 무언가를 얻어냈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나의 자랑이었다. 

그렇게 첫아이랑 행복하게 살다가 둘째도 임신하였다. 38살 늦은 나이에 출산하였는데, 지금은 나보다 더 늦게도 출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늦은것도 아니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제일 고령산모일 거 같고 제일 고생하는 것 같았는데, 이게 웬걸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이란 것을 알았다. 


 나의 소원 중 하나가 아기랑 마트가기 였다. 


아기띠 하고 걸어 다니기도 버킷리스트에 있었다. 두 가지를 이뤄내면서 나의 자존감이 올라갔고, 꿈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행복에 젖어 있었다. 온 세상에 아기와 나만 있는 것 같고, 우리 아기를 돌보기 위해 우리 부부는 자신도 내려놓고 아기가 내딛을 인생 계단이 되어줄 생각에 희생만 해왔다.  나중에야 정신이 좀 돌아왔지만, 첫둥이 낳고 한동안은 가장 행복한 한때였다. 


둘째까지 임신하여서 나는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여자가 되었다. 작고 사랑스럽게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를 손에 잡고 배 속에는 더 작은 아기를 가졌으니 몸은 고되고 지쳐갔으나 엄마인 게 너무나 좋았고, 내 인생을 쭉 돌아보아도 그때만큼 행복했던 때도 없었다 싶을 만큼 행복했다. 


둘째가 태어나서 6개월 때 머리둘레가 크다며 큰 병원 가서 검사해보라고 했을 때도 설마~ 하는 생각에 당당히 찾아갔다. 갔다가 충격을 받고 오긴 했지만, 집에 두 아이를 보면 모든 게 잊혔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이와 함께 걸어가는 걸음걸음과 인생 고비고비들을 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인생은 즐기면서 배우는 게 아니라
고생하면서 배우게 설계되어 있구나 싶다.





길가다가 아기를 돌보고 있는 엄마 중 나 같아 보이는 사람이 보일때면 그때의 내가 떠오르면서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가 헤아려지고 나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저런 모습이었겠구나 하면서 객관화된다. 그때는 그토록 간절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무뎌져 있고, 너무나 행복했다가 염려로 불행했다가 반복된다. 꼬부기를 키우면서 나는 드디어 인생의 고난이 뭔지 조금씩 알꺼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귀여움을 벗고 어린이가 되어가니 엄마가 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더 큰 희생이 필요하구나. 바로 참아야 하는 것. 그래서 사랑은 오래참고라고 성경에 써있었구나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청난 고생을 하다보니 인생을 조금씩 배워간다. 24살때 보던 세상이 아니라 44살이 되니 인생이 다채롭고 더 입체적이다. 달콤하지 않다는 것은 그 때도 느꼈지만, 인생이 달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생은 쓴 맛이 나도 살아갈만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되고 나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쓴맛나는 인생이지만 그래서 끝까지 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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