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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ug 03. 2022

"당신은 좋은 부모입니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대사 처럼

금쪽같은 내 새끼가 이 사회에 끼친 좋은 영향력을 꼽아보라면 10가지 정도 쭈욱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정도로 가정을 세우고 국가를 세우는 프로그램이며, 자녀들을 세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가장 애정 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가 읽었던 다양한 육아 책은 이론이었다면 금쪽이는 실전 편으로 책을 보지 않아도 바로 적용해 볼 수 있도록 쉽게 풀이해 주고 있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책과 멀어지게 된다. 책 볼 시간이 없고, 잠깐의 숨 돌릴 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을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쓰고 싶어 진다. 가뭄에 단비처럼 찾아오는 잠깐의 해방 시간이기에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 지니 책을 읽을 수 없다. 게다가 필요한 육아용품 쇼핑도 해야 하니 시간이 늘 모자라다. 나도 그때는 책을 안 읽었다. 육아와 관련된 책은 미리미리 읽어두는 게 좋겠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읽어두어야 하는데 그때는 그게 또 그리도 읽기 싫었다. 그래도 금쪽같은 내새끼가 있으니 급한대로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급한 불을 끄고 아이가 기관에 가기 시작하면 읽어보자.


아이가 어릴수록 생존과 관련 있는 필요만 채워줘도 잘 자란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크면서부터 이 역할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는 아이를 훈련시켜야 한다.

훈육과 가르침을 통해서 아이가 스스로 독립된 개체로써 세상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나는 혼자 알아서 깨우치며 눈치껏 배워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이들에게 귀에 피가 나도록 잔소리를 해도 바뀌지 않는다. 매를 들어도 바뀌지 않는다. 아이와 진심이 닿아야 하고, 사랑이 전달되어야 하고, 때로는 그냥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들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사고가 커져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려 줘야 하기도 하다.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성경책에 쓰여있는데, '사랑이 왜 오래 참고' 인지 부모가 되어서 진하게 깨닫게 되었다.

오래 참다가 암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참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성격에 따라 괜찮은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나의 악하고 무례하고 교만함의 끝이 어디인가를 보게 되었다. 나의 날 것 그대로 포장하지 않은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것들이 전부 올라온다.

평온할 때는 물아래에 흙이 가라앉아 있어서 깨끗한 듯 보이지만, 가끔 아이들로 인해 태풍처럼 바람이 일어서 물이 동하게 되면 순식간에 뿌옇게 바뀌어 버린다.

아이들을 통해서 내가 실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이제는 또 못 참고 욱했네 하고 넘어가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당신은 좋은 부모입니까?"  누군가 묻는다면,

"좋은 도우미이지만, 좋은 부모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고 있지만, 나의 사랑은 너무나 1차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냥 아이가 소중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끌어안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도와주며 기다려주는 정도의 수준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양육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가 이제는 더 이상 나의 권위에 따르지 않고, 늘 불순종하고 무시하며 화나게 하며 실수하며 떼쓰며 나를 폭발하게 한다. 그런 상황이 되면 실오라기가 불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듯 나의 사랑은 분노의 불에 사라져 버리고, 괴물에 미치광이에 신경증 환자가 되어서 아이를 몰아세운다.

그리곤 나중엔 후회하고 사과한다. 정말 이렇게 반복을 몇 년 하다 보니 이제는 면이 안 선다.

나도 내가 너무 싫은데 아이들이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며 안아주는 게 감사할 뿐이다.

이 미치광이 같은 분노의 불이 나오면 모든 것을 태우고 사랑하는 자녀까지 태울 기세로 일어난다. 정말 이 불은 지옥에서 온 불이다.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이제는 분명히 느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와 관계가 멀어지고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싶다면 내가 변화되어야 한다. 나는 양가적 부모의 태도를 갖고 있는 듯하다.

자녀는 양가적 태도의 부모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동시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은 감정이 든다고 한다. 내가 나의 부모님께 드는 감정이 그러한데, 나는 3형제 중에 부모님을 가장 멀리 하는 편이다. 가끔 전화드리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로만 만족했다. 만나면 불편했고 함께 있으면 벗어나고 싶어졌다. 내가 왜 그런 것인지 늘 궁금하고 이상했다. 어떤 사람들은 엄마와 친밀해서 자신의 멘토라고 여기기도 한다던데, 나는 왜 이러지? 내가 나쁜 딸인 건가.

그런데, 그 미스터리가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행동들을 보니 이해가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때로는 과하게 사랑을 베풀고 희생하고 다정하지만, 때로는 과하게 화를 내고, 아이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아이가 나에게 매달리며 안길 때 좋을 때가 많지만, 내가 바쁠 때 안기거나, 안기면서 머리카락이 당겨지거나 살이 꼬집히는 일이 발생하면 아이를 밀쳐내거나 소리를 지르게 된다.

갑자기 자기를 밀쳐내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이 무슨 감정이 들지..

왜 갑자기 나를 싫어하지 하며 혼동스러울 것이라 생각된다.


 어릴 적 엄마와 외출을 하려고 나서던 중 엄마는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고, 나는 뒤이어 나가던 중이었다. 때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게 되었고, 친구에게 '나 끊어야 해'라고 말하지 못하는 바람에 통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10분 20분 30분이 흘렀을까?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셔서 나는 전화를 급히 끊고 나가려 일어섰지만, 엄마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계셨다. 

추운 곳에서 떨고 계셨으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엄마는 나에게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 안가! 너 혼자 가!" 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때처럼 화가나서 소리지르는 엄마를 본적이없다.

너무 미안하면서도 엄마의 분노 앞에서 나는 얼떨떨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무렇지 않게 식탁에서 다시 만나고 우린 다시 생활하며 살아갔다. 그런 별일 아닌듯한 별일들이 나의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고, 나의 감정과 마음에서 작은 조각이 되어 녹지 않고 남아 있다. 그건 언제든 건드려지면 현재에 영향력을 주곤 한다. 감정을 잘 표현해야 하는데, 표현하는 방법이 잘못되어 있을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 나의 감정을 어른스럽게 성숙하게 잘 표현하고 싶다.

나의 엄마는 늘 바쁘셨다. 손이 느리셨고, 당시 세탁기도 없고, 가스불도 없이 연탄불에 밥을 하셨었다. 내가 초등학생정도 되었을 때부터 가스레인지가 생겼던거 같다. 그러니 얼마나 일이 많았을까. 고만고만한 삼남매를 키우느라 늘 집안일이 산적해 있었고, 조금의 여유도 없이 자신의 꿈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나면 늘 쉬고 싶으셨지 않을까. 지금의 내가 그러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래서 인지 엄마는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거나 하지 않았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것만으로 엄마의 역할을 다 하셨다고 생각하신거 같다. 뭐 엄마도 받아본적이 없는 거니까 해줄수도 없으셨을것이다.

그래서 이제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감정을 나누려 하니 쉽지 않다.   


지금 우리 집에도 경고등이 들어와 있음을 본다.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더 늦기 전에(늦은 때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더 쉬운 시기가 있고, 늦을수록 어려워질 뿐) 내가 변화되어야 한다. 내가 우리 엄마와 맺는 관계처럼 나의 자녀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된다면 나는 외롭고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꺼 같다. 그래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를 반복한다.

내가 나를 바꾸는 게 이토록 어렵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기며 사람들에게 나의 다짐과 계획들을 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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