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힘 1.

민중문학상 /단편소설

by 명희진


“나 이혼할란다!”


아무도 할머니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물론, 알아듣지 못한 척한 거다. 일요일, 그것도 늦은 아침과 점심 사이의 여유로운 식탁 앞 화제로는 적절하지 않았다. 아빠는 큼큼, 마른기침하고는 엄마에게 어떻게 해 보라고 눈치를 줬다. 엄마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아빠를 무시하고 압력밥솥 뚜껑을 열었다. 쉭, 김 빠지는 소리와 동시에 허연 김이 올라오며 고소한 밥 냄새가 거실에 퍼졌다.


“노망 났나. 아침부터 헛소리는…….”


할아버지는 미역국을 뜨며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요일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즐겨보는 <전국노래자랑>이었다.


“싱거운가.”


“간장 좀 가져올까요?”


눈치 빠른 엄마는 후다닥 일어나 부엌으로 달아났다. 엄마가 빠지자, 할머니를 제외한 우리 모두 황(黃) 가였다.


“나가 이미 다 말했지라.”


텔레비전만 보는 할아버지가 못마땅한 듯 할머니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할아버지는 가소롭다는 듯 할머니를 흘끗 보고는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텔레비전에선 할머니와 비슷한 또래의 할머니가 진달래색으로 볼을 칠하고, 연분홍 한복을 입고, 무릎을 살짝살짝 구부리며 장윤정의 ‘어머나’를 수줍게 불렀다.


“나잇값도 못 하고는.”


텔레비전 속에서 까딱까딱 무릎을 구부리며 노래하는 여자에게 인지, 할머니에게 인지 모르게 할아버지는 고사리나물을 씹으며 말을 뱉었다.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어요?”


아빠가 할아버지를 보며 속삮였다. 그 안엔 상황을 어떻게 해 보라는 의도가 포함돼 있었지만, 화난 할머니를 달랠 수는 없었다.


아빠는 짧은 머리에 정확히 ㄴ자로 각을 잡고 앉아 있는 삼촌을 향해서도 눈짓했다. 어쩌면 삼촌은 할머니의 화를 녹일 수 있을지 모른다. 삼촌은 할머니의 아킬레스건 같은 거였다. 뭔가 부족하고 언제나 덜떨어진 삼촌은, 한마디로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얼마 전에 제대한 삼촌은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밥만 먹었다.


“싸게 서류 준비해라.”


할머니는 삼촌의 밥그릇에 고등어 살을 발라 올리며 아빠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애들 있는데, 밥상머리에서.”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숟가락 가득 흰쌀밥을 담아 보란 듯이 입에 넣었다. 부엌에서 메주라도 씻는지 엄마는 감감무소식이다.


“그걸 왜 제가 준비합니까?”


대학에 강의를 다니는 아빠가 고심 끝에 뱉은 말이었다. 아빠는 드라마 작가다. 아니 드라마를 썼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빠가 쓴 드라마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됐었다. 지금은 자료도 구하기 어려운 그 드라마 하나로 아빠는 지금까지 작가라 불리고 대학에서 드라마 창작 강의를 한다.


간혹 드라마를 쓰는 것 같았지만, 결과물이 나온 적은 없다. 가끔 영화를 보는 것 같았고, 그보다 가끔 책을 읽었다. 그리고 아주 빈번하게 술이 아빠를 업고 집에 들어왔다. 언제나 아침쯤이었다.


나는 아빠가 쓴, 정확히 쓰다 버린 대본을 읽은 적이 있다. 스승과 제자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였다. 향수를 일으킬만한 낡은 감상이 보이긴 했지만, 장점이 될 만큼 뛰어나지 못했다. 거기다 구성이 너무 평이했다. 가슴을 절절하게 하는 대사들이 없진 않았지만, 그깟 사랑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나 같은 인간으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자기 감상과 로맨스로 가득할 뿐이었다.


아빠는 학생들과 작업하기도 했다. 그럴 땐 더 자주 술을 마셨고 외박도 종종 했다. 나는 아빠가 자주 사랑하는 걸 알았고, 그 때문에 드라마를 쓰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에게는 상처를 멀리서 바라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는데, 그건 한 사랑이 지나기도 전에 다른 사랑이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니 어미는 나다.”


웃음이 터진 건 내 잘못만은 아니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 있었다면 웃음이 터졌을 거다. 그때 아빠가 어른들 얘기 중에 눈치 없이 앉아 있다며 내게 고래고래 소리 질렀고, 그 소리에 놀란 나와 삼촌의 시선이 ‘우연히’라는 트로트가락이 떠도는 허공에서 부딪혔다.


삼촌은 별일 아니라는 듯 내게 여유로운 윙크를 날렸지만, 나는 아빠의 고함 때문이 아니라 삼촌의 윙크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할머니는 그날 밤, 이불을 들고 내 방으로 왔다. 이미 삼촌의 방에서 퇴짜 맞고 왔다는 걸 알았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도 삼촌은 할머니의 젖을 만지고 잤다. 어느 날 아침 엄마에게 현장을 들킨 후, 삼촌은 할머니와 같이 자려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할머니와 엄마 사이도 황사 바람 부는 삼월 날씨처럼 서걱댔다. 징그럽게라는 엄마의 농담 섞인 진심이 할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탓이다. 징그럽게. 나는 삼촌에게 적절한 표현의 부사라고 생각했다. 적당해도 이만큼 적당한 표현이 없었다.


“거, 뭐 시다냐, 어떻게 하는 건지 좀 찾아봐라.”


침대 옆에 이불을 깔고 누워 한참을 뒤척이던 할머니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


나는 ‘이혼 방법’이라는 단어가 생략된 걸 알았지만, 능청을 떨며 되물었다.


“거 인터넷으로 좀 찾아보라니까.”


“그니까 뭐? 할머니가 거시기하면 그게 나가 거시기요 하고 나온대?”


“저 쬐깐한 년이 또 말장난이지.”


할머니는 자식이 있어도 누구 하나 마음 같은 놈이 없다고 구시렁대며 벽을 보고 누웠다. 나는 할머니를 힐끔 보고 인터넷 서핑을 했다. ‘이혼하는 방법’이라고 검색 창에 치자 ‘판검사 출신 변호사 법률 사무소’가 기다렸다는 듯 화면을 채웠다.


남의 이혼이나 시키려고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했나 싶었다. 대략 두 가지 이혼 형태가 있는 것 같았다. 합의 이혼과 재판 이혼. 나눌 재산이 없다면 대부분 합의 이혼을 권했다. 간단할 뿐만 아니라 깔끔하다나.

나는 그 외에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리는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 타인의 이혼 경험담을 읽었다.


상간녀의 직장에 찾아간 본부인의 이야기와 거기에 달린 댓글을 눈으로 좇았다. 그 아래는 상간녀의 사진이 모자이크도 없이 올라와 있었다. 거실에서 주말 드라마가 흘러나왔지만, 할머니는 고치가 되기로 작정한 듯 모로 누워 있었다. 검게 염색된 머리카락과 하얗게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의 경계가 할머니의 결심만큼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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