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힘 2

민중문학상/ 단편소설

by 명희진


“할머니가 이혼하겠대.”


나는 그네 위에 서서 유를 내려다봤다. 유는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흠.”


유는 애매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무릎을 구부렸다 펴며 그네를 굴렸다. 야린 빛을 머금은 벚꽃잎이 하늘거리며 유의 머리 위로 거붓이 내려앉았다. 유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는 그네 위로 올라섰다. 겨울 사이 유의 키는 나보다 훌쩍 자라있었다. 유가 무릎을 굴리자 빠직대는 쇳소리가 비명처럼 공원 안을 울렸다.


“그것참, 유감인데.”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선 유가 멀찍이 벌어지며 말했다.


“유감이라. 그렇게는 생각 안 해 봤어.”


무릎을 굴려 힘을 주자 유와 반대 방향으로 쇳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너희 가족……이상적이라고 생각했거든.”


나는 유와 만났던 지점에 우뚝 서서, 멀어지는 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의 긴 몸이 뒤로 넘어갈 것처럼 공중으로 올라가 있었다. 유의 휴대전화가 모래 위로 떨어졌다. 유가 탄 그네가 휙, 긴 바람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나를 지났다. 유와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긴 끈에 매달린 추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잔가지처럼 흔들렸다.


“이유가 뭐래?”


유는 나를 지나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로 벌어졌다가 다시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내게로 왔다.


“이유? 그러게.”


“…….”


“ …뭘까…….”


나는 우뚝 멈춰 섰다. 한 발로 모래에 긴 선을 그으며 멈춘 유는 휴대전화를 주웠다.


“귀한 자료인데, 잘못되진 않았겠지?”


유는 작게 중얼거리며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유와 나는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으며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유의 부모가 잦은 싸움에 지쳐 이혼하기 전까지, 유의 엄마인 정자 씨와 엄마는 가까운 이웃이면서 사이좋은 친구였다.


이혼이 부부만 갈라놓는 게 아닌지 정자 씨와 엄마의 사이도 소원해졌다. 게다가 아빠가 정자 씨 얘기만 꺼내도 엄마는 털을 곧추세운 고양이처럼 날카로워졌다. 달라지지 않은 건, 유와 나뿐이다.


유의 장래 희망은 포르노 배우가 되는 거다. 더 크게는 포르노 배우이자 감독이 되는 거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휴대전화로 에로 동영상을 접한 후부터였다. 그리고 유는 그러한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유가 주로 관람하고 소장하는 것들은 서사가 탄탄한 것들이다.


단지 그 안에 관능미 흐르는 여성들과 야성미가 넘치는 남성들이 과하다 싶게 옷을 벗고 서로 탐한다는 것뿐, 보통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고 유는 말했다. 유는 그것이 순수한 열정이라고 했지만, 내게 보여주고 싶진 않다고 했다. 분별력이 떨어지는 나이라 성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분별력이나 영향의 문제가 아니라 기호나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므로 따져 묻지 않았다.


“뭐 이유 따위가 중요한가.”


눈앞의 길을 따라 빼곡히 늘어선 나무들이 노란색과 빨간색 셀로판지를 덧댄 것처럼 변해갔다. 나는 깔끔하게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유에게 오래전 그의 부모가 헤어진 이유를 묻고 싶었다. 유의 가족도 완전해 보였으니까.


유가 내 가족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쩌면 할머니는 누군가 이유를 물어주길 내심 바랐는지 모른다. 그러면 오래된 장롱 가득 쟁여놓았던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지도. 왜 40년 이상을 함께 산 남편과 남이 되고 싶은지 말이다.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가 등을 구부정하게 말고 내 방에 이부자리를 깔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힐끔 나를 본 할머니는 다 큰 여자애가 밤늦게 다닌다며 잔소리다.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할머니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 게 어느새 싹 가시고 할머니가 말하는 반대로 움직이거나 말대꾸하고 싶어진다.


할머니는 네 나이에 나는 네 아비를 낳았다고 구시렁대며 자리에 눕는다. 책상에 앉는데 모로 누운 할머니의 허옇게 갈라지고 노란 발뒤꿈치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본 채석강의 절벽들을 닮았다. 할머니의 발뒤꿈치에서는 왠지 찝찔하고 짠 바다 맛이 날 것 같았다.


“할아버지 나갔어.”


나는 가방에서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을 꺼내 펼치며 퉁명스럽게 할머니에게 말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기원에 가는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퇴직과 함께 시작한 할아버지의 사업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여러 점집을 전전하며 얻은 정보를 무시한 결과라고 믿었다. 대기업의 사장이라는 직함까지 받았던 할아버지였다. 나를 본 할아버지는 우유라도 먹을 거냐고 물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미지근한 두유를 먹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편의점 밖을 보며 할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게 시간은 느리고 더디기만 한데 어른들은 항상 시간이 쏜살같이 빠르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나란히 편의점 의자에 앉아 밖을 보며 각자에게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할아버지는 지나버린 시간을 천천히 돌려, 어디에서 할머니와의 시간이 어긋났는지 찾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사법고시까지 포기하고 얻은 아내라고 했다. 지금까지도 고모할머니는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하며 서운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잔밉게 굴었다. 아빠와 삼촌도 할머니를 닮아 공부에 재능이 없다며 이에 덧붙여 아들들 머리는 무조건 모계라며 할머니에게 면박을 줬다. 거기다 나를 끄집어 한데로 묶어 가만히 있는 엄마를 적으로 삼았다.


“쟤는 가시내니까 시집이나 잘 가면 걱정 끝이지.”


언제부턴가 할머니는 곱다시 듣고만 있던 고모할머니의 만성이 된 푸념을 탁구공 치듯 되받았다.


“그치가 할라면 마누라 있고 자슥있다고 못했겄소. 다 타고난 팔자제.”


날아온 공을 받아 치지 못하고 머쓱해 있는 고모할머니에게 마침표를 찍듯 할머니는 툭 뱉었다.


“누구땀시 꽃도 못 펴본 사람도 있는디.”


네트를 맞고 바닥에 떨어진 공의 울림처럼 할머니는 기어이 한마디를 보태, 게임을 자신의 승리로 이끌었다.


할아버지가 없다는 말에 할머니는 베개를 들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삼촌과 티브이 채널을 가지고 승강이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책을 펼쳤다. 자꾸 빳빳하게 풀을 먹인 할아버지의 셔츠 깃이 불안하게 눈앞에 어른거렸다.


할머니의 이혼 공표 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 방에서 지냈고 할아버지는 낮이나 밤이나 기원에 갔다. 늦은 시간 들어오는 할아버지의 몸에서는 밀폐된 공간의 눅눅한 곰팡내와 찌든 담배 냄새가 났다.


엄마는 할아버지 방에서 홀아비 냄새가 난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얼굴을 붉히며 할 말 안 할 말 못 가린다고 타박이었을 할머니는 묵묵히 빨래를 개며 할아버지가 나간 방을 망연히 쳐다봤다.


정작 문제가 터진 건 아빠와 엄마의 싸움에서였다. 수요일과 토요일마다 시(詩)모임에 나가는 엄마는 최근 페미니즘에 심취해 있었다.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인 엄마는 방대한 양의 책을 읽었다. 엄마의 독서는 강박에 가까웠고 그건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았다.


초등학생들과 온종일 함께 있는 엄마는 자신이 읽은 것들과 느낀 점들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절실했다. 그래도 명색이 작가인 아빠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항상 이슬이 내려야 집에 돌아오는 아빠와 독서 토론을? 문학과 창작에 대한 고민을?


시를 쓰고자 하는 중년 여성의 열병을 아빠 같은 사람과 나눈다는 건, 쓰레기통을 뒤지던 길고양이가 우아하고 길게 하품을 늘어놓을 일이었다. 엄마가 열아홉이나 스무 살의 눈은 있으나 세상은 나 몰라라 하는 말랑말랑하기만 한 나이라면 아빠와 술을 마시며 이 시대의 절망과 문학에 대해 밤새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건 아빠의 일방적인 강의일 확률이 높지만.


몇 달 전 엄마는 시를 써보고 싶다며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가 아니라 내게 물은 건, 곧 내가 고등학생이 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며 하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나는 엄마가 일주일 내내 시만 쓴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말 중 ‘하필’이라는 단어가 나를 적극적인 엄마의 편으로 만들었다. 그 후 엄마는 수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폭식에 가까웠던 엄마의 독서는 엄마에게 맞는 영양식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한 시집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고 자주 그것들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아무도 엄마가 배우는 시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혼에 영향을 미칠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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