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문학상/단편소설
텔레비전이 모든 소리를 제 몸에 담고 자폭한 듯 집 안은 조용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아빠와 엄마도 여전히 냉전 중이었다. 식탁에 둘러앉아도 서둘러 밥공기를 비우고 일어서기에 바빴다.
텔레비전이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다음에 텔레비전을 사면 이름을 붙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많이 먹어라. 집 안이 이럴수록 우리가 더 힘내야지.”
어느새 식탁 앞에는 삼촌과 나, 검게 구멍 뚫린 텔레비전만 놓여 있었다. 삼촌은 비엔나소시지 하나를 집어 내 밥 위에 올렸다.
“너 안 보는 사이에 눈이 좀 째진 것 같다.”
눈을 흘기는 내게 낄낄대며 삼촌이 말했다. 낄낄대다 껄껄대기까지 했다. 뭉개진 밥알과 침이 상 위로 튀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마치 다른 사람이었다는 듯이, 볼일 본 자리를 뒷발로 덮어 가리는 고양이처럼 행동하는 삼촌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숟가락을 던지듯 놓고 벌떡 일어났다. 삼촌을 대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사춘기라 했다. 친구 같은 삼촌이라 편하게 투정을 부린다고도 했다. 삼촌과 나는 여섯 살 터울이 진다. 유치원에서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삼촌과 나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에게 혼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농담한 걸 갖고 그렇게 정색하면 민망하잖아.”
“우리가 농담할 사이야?”
“그럼, 삼촌이 조카한테 농담도 못 하냐.”
앙칼지게 말하고 돌아서는데 삼촌이 못마땅한 듯 중덜댔다.
할머니와 나는 나란히 자리에 누웠다. 텔레비전이 묵언 수행을 하고 있어서인지, 냉담해진 두 부부 때문인지 집안은 절간처럼 조용했다. 말똥말똥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할머니의 손이 봉긋이 솟은 가슴에 올라왔다.
“다 컸네. 이제.”
“가슴은 왜 만지고 그래. 이렇게 내가 만지면 좋아? 할머니는 좋아?”
나는 할머니 팔을 베고 누워 할머니 가슴을 조몰락댔다.
“나는 좋지. 와? 젖 줄까?”
“아, 진짜. 창피하지도 않아?”
“니들이 다 이 젖 먹고 자랐는데 창피하기는.”
나는 축 늘어진 젖가슴을 들이미는 할머니의 옷을 잡아 내렸다. 젊은 시절 연애 얘기를 해 달라고 할머니를 졸랐다. 할머니 목에 매달린 쥐젖들이 이야기 방울처럼 조그맣게 흔들렸다.
“연애는 무슨. 너만 할 땐데 뭔들 알았을라고. 아를 뱄으니 거서 산거지.”
“할아버지 안 사랑했어?”
“쬐깐한 게 별걸 다 묻는다. 와? 알아서 뭐할라고?”
“언젠 내 나이에 아빠를 낳았다며?”
“그러니 뭘 몰랐다잖아. 너도 할매처럼 안 될라믄 공부 열심히 혀. 알았어?”
할머니는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비밀을 말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고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혹은 비밀은 스스로 문을 열고 슬금슬금 밖으로 흘러나오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나는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가 된 것처럼 다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나는 할머니의 눈빛이 변했다는 걸, 나의 이야기가 동질감을 불러내지 못 한걸 눈치챘다.
“니 그 야그 아무한테도 하면 안 된다이. 알겄냐?”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약속을 받았다. 쿵 소리 나게 바닥에 떨어진 내 머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뒷머리를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자리에 누운 할머니는 내게 등을 지고 누워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날 할머니가 내게 캐내려 한 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어린 손녀에게 당부하고 싶었던 건 자신이 놓친 과거의 한 부분이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적당한 때’라고 표현했다. 상황이 이끄는 데로 가다 보니 그때는 어려서 몰랐던 적당한 때라는 것을 놓쳐버렸고, 그렇게 지나버리고 나니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억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뜬금없이 사람이 그냥 사람을 만나는 것만은 아니라며 그냥 만난 것이 평생을 후회하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보다는 어른이었던 할아버지가 원망스럽다고 말할 때는 더는 나를 의식하는 것 같지 않았다. 평생 자신의 이름을 쓰고 산 시간은 아빠를 가지기 전까지가 다였다고 말하면서는 감정이 벅차오르는지 물기 젖은 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도 할머니와 등을 지고 누웠다. 할머니가 숨을 내쉴 때마다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할머니와 나의 등이 자동문처럼 닿았다가 떨어졌다. 할머니와 닿은 등이 새로 자라는 이(齒牙)처럼 근실근실 가려운 느낌이었다. 나는 방금까지 가슴을 만지고 장난을 치던 할머니가 낯설기만 했다.
자리에 누워 할머니가 한 얘기들을 하나하나 되짚다 보니 그것들이 영화처럼 영상으로 보였다. 중간중간 내용과는 상관없는 영상들이 끼어들었다. 가령 유와 놀이터에서 얘기한다든지,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고 각자 새로 가정을 이뤄 낯선 이들과 식탁에 앉아 있다든지, 내가 머리를 싹둑 자르고 그것도 모자라 오른쪽 머리를 클리퍼로 밀어버리는 등 두서없는 것들이었다.
이미지는 다옥한 숲의 선명한 초록 이파리들이 술렁거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복닥복닥 모여 앉은 새들이 주둥이를 벌리고 꽥꽥 비명을 지르며 바르작댔다. 나는 귀를 막고 잔달음질 쳐 숲을 지나고 있었다. 삼촌의 손이 불쑥 치마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이상해, 이상한데,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몸을 뒤로 뺐다. 자꾸 안으로 들어오던 삼촌의 손과 치마 속으로 향하던 시선이, 짧고 빳빳한 검은 머리통이,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