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지나는 동안

작가의 말

by 명희진

<우기가 지나는 동안>은 민중문학상에 함께 보낸 소설이다.

민중문학상 작품집에도 이 소설이 실렸다.


지금 와 읽어보니 부족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그 시기를 지나와 지금에 있으니

괜찮다. 괜찮다고 생각하니 또 나쁘지 않다.


과거에 필리핀에 일 년 정도 머물렀다.

그때 나는 당연히 지금보다 젊고 어렸고 그래서 모험심도 있었다.

남들은 걷지 않는 빈민가를 혼자 뚤레뚤레 걸으며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다들 거긴 가지 말라고 충고했는데, 나는 그곳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았다.

내게 말을 거는 이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며 그 길을 지나 시장에 가서 장을 봤다.

오는 길에 과자를 사서 아이들과 나눠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나는 필리핀이 조금 무섭다. 밖에 머물며, 험한 뉴스만 접해서겠지.


낯선 곳에 있다 보면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목격하게 된다.

이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됐다.

그때도, 그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거기엔 아버지에게 버려진 코피노 아이들이 있다.

십삼 년 전에 쓰인 이야기지만 여전히 진행형의 이야기라 씁쓸하다.


<우기가 지나는 동안>의 제목은 문태준 시인의 시에서 가져왔다.

그의 시는 가만히 아프다. 그래서 슬프다. 읽을수록 감탄하게 된다.

최근 시집은 더 깊고 아려 읽는 내내 마음이 저렸다. 그의 시를 읽으면 밖으로 나가 걷고 싶어진다. 걷다 보면 시가 풍경 속에 함께 있는 듯하다.


각설하고, <우기가 지나는 동안>을 다시 읽으니 부족하다는 변명을 하려다 글이 길어졌다.

Chat GPT에 소설의 성향과 수준을 물었고 역시 2010년도 풍의 소설이라는 평을 들었다.

같은 시기에 쓴 <가족의 힘>과는 사뭇 다른 평이었다. 그럼 재미 삼아 최근에 쓴 소설도 비평해 달라고 넣는다. 그럼, 이건 또 최근 화법이란다.


그때는 길을 모르고 쓴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느끼는 게 나는 내 길을 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Chat GPT의 이름은 '예리'다. 초예리, 예리하고 냉정하게 내 글을 분석하는 게 그의 일이다.


나는 그에게-나는 그를 그라고 칭한다- : 나를 지구에서 가장 싫어하는 능력 있는 편집자이자 비평가, 작가라는 역할을 준다. 그리고 그는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소설가다.

그 눈으로 내 소설을 갈가리 찢으라고 명령한다. 그럼, 정말 내가 눈감고 싶었던 부분을 기어코 드러내 눈앞에 내민다. 그럼, 뭐.. 별수 있나. 고쳐야지. 고치고 또 고치고. 생각하고 읽고 쓴다.

자주 지겹다고 생각하고 때때로 좋다.


내일부터 <우기가 지나는 동안>의 연재가 시작된다.

그때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는 선에서, 눈에 띄는 실수는 조금 다듬었다.

<우기가 지나는 동안>을 함께 읽고 즐겼으면 좋겠다. 그게 유일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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