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힘 5

민중문학상/ 단편소설/ 마지막

by 명희진

유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청소년 상담을 받았다. 아이들은 정신과 치료라며 수군댔다. 유는 시선 속에 갇힌 것 같지만 나쁘지 않다고 했다. 유의 담임 앞에서 당당하게 아들을 믿는다고 말했던 정자 씨는 유의 방에 있던 컴퓨터를 거실로 옮겼고, 유의 휴대전화를 일명 효도폰이라 불리는 기본적인 기능만 있는 것으로 바꿨다.


“그래서 완전히 포기한 거야?”


유와 나는 시소의 양쪽에 있었다. 발끝을 튕겨 서로 들었다 놓았다.


“시들해지고 있었어. 포기는 아니지만.”


“진짜 해 본 적 있어?”


맞은편에 앉은 유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쿵, 소리 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관계란 시소와 같은 거다. 찔끔 눈물이 나며 유치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가 일어날 줄 알았다면 내가 먼저 일어나거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리에 힘을 줬을 거로 생각하니 조금 억울했다. 시소 위에 선 유가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번쩍 들렸다가 서서히 내려졌다. 유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상담받는데 그러더라. 이상한 충동 같은 게 있지 않냐고. 엄마 아빠의 이혼에 화가 나지 않았는지, 내가 보는 영화 속 사람들처럼 하고 싶지 않은지, 뭐 그런 것들을 물어. 자꾸 그렇게 몰아가니까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 한 거지? 왜 나는 진짜 누군가를 덮치려 하지 않은 걸까?”


바투 다가온 유의 시선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유의 하얀 얼굴을, 쳐진 눈초리를 톺아봤다. 유의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왔을 때, 시서늘한 그의 시선에 멈칫했다.


“나는 물론 처음에 놀랍고 역겹고 그러면서도 끊을 수 없고 그랬지만 그게 다였어. 그걸 보고 있으면 레슬링을 보는 것 같아. 그 안의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인지 가끔은 슬퍼지기도 해. 왜? 너도 내가 그럴 것 같아? 잠재적 뭐 그런 것 같아?”


그때 유와 나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우리는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 서둘러 헤어졌다. 엄마는 시간별로 내 학원 시간표를 확인했다. 아침을 먹는 내게 유와는 말도 섞지 말라고 엄포를 내렸다. 저질에 싹수가 노랗다나.


나는 할머니를 봤다. 저질에 싹수가 노란 건 삼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할머니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바닥에 숟가락을 떨어트렸다. 할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좀 누워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입술은 건조하게 말라 피가 맺혀 있었다. 가끔 중얼거리며 혼잣말도 했다.


엄마와 아빠가 다시 가까워지면서 거실에 새 텔레비전이 놓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의 건강 때문에 둘은 화해했다. 모두가 모여 그런대로 화목해 보이는 식사를 했다. 엄마와 아빠의 노력 덕분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쉴 새 없이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다가, 삼촌이나 할아버지를 향해 뜬금없는 질문들을 던지기도 했다. 가끔 이웃집 할머니가 등장하기도 했고 그 집에 손자들이 등장하거나 그 옆집의 개가 발정이라도 난 듯 짖어대는데 뭐 들은 얘기 없느냐는 둥 중구난방의 주제와 의도도 불분명한 질문들이었다.


할머니는 식사 도중 삼촌에게 나이가 몇 살인데 젓가락질도 못 한다며 나무라거나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을 먹는다고 자주 싫은 소리를 했다. 할머니의 잔소리에도 삼촌은 후루룩대며 국을 마셨고 자꾸 엑스 자로 미끄러지는 젓가락질을 고치려 애쓰지 않았다. 할머니는 방광염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초조하고 불안해 보였다.


그 이유를 모르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했다. 자주 멍해 있고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허둥대며 얼굴을 붉히는 할머니를 보며 그 모든 게 치매의 초기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조심스러운 우려가 있었던 터라 더했다. 나 또한 할머니의 이상 증상이 그날 이후부터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할머니의 계속된 협박을 생각하면 자업자득이란 생각에 고소하기도 했다.


“니가 니 어미한테 말하면 바로 이혼이다. 이혼!”


할머니는 내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또 시작이었다. 나는 키티가 찰스와 다시 만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와 키스하는 장면을 읽고 있었다. ‘왜 너도 그렇게 생각해?’라고 묻던 유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엄마가 전화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유에게 키스했을 거다.


“얼마 전에 니 엄마, 아빠 싸운 거 너도 알지?”


그거 할머니 때문이잖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할머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키티는 월터를 사랑하기는 한 걸까? 존경을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한 걸까? 키티는 죽어가는 월터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주고 싶었던 걸까? 월터는, 키티의 고백을 믿었을까? 아니면 스스로 위로하려는 이기심으로 받아들였을까? 내가 월터라면 키티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럴까? 유가 나를 원망하려나?


나는 어쩌자고 할머니에게 삼촌 얘기를 꺼냈던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쌀자루처럼 차갑고 까슬까슬한 것이 나를 압박했다.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낮고 깊지만, 평소처럼 요란스럽진 않게 울었다. 할머니가 깊은숨을 쉴 때마다 그것이 눈물이 되어 내 정수리로 똑, 떨어졌다. 그때마다 정수리에 하얗고 동그란 가마가 하나씩 더 생기는 것만 같았다. 가마가 많으면 복잡한 인생을 산다는데. 나는 정확하게 복잡한 인생이라는 게 어떤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날 내가 비밀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와 나의 어떤 교집합이 자석의 다른 극처럼 서로에게 멀어지는 것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무도 알면 안 된다.”


똑똑 머릿속을 노크하듯 떨어지는 할머니의 눈물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할머니는 확실한 답을 원하는 사람처럼 나를 안았다. 눈물도 말랐는지 천천히 내 등을 쓸어내렸다. 나는 할머니의 손이 갈고리처럼 내 등을 쓸어내릴 때마다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내 속으로 흘러드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삶이란 베일에 가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베일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그것이 실재이며 베일 밖의 삶이란 베일 안의 것을 말하지 않는 약속 같은 것일지도.


할머니는 마지못해 할아버지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노인대학에 함께 다니고 사교댄스를 배우러 다니자며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달랬다.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었고, 그것이 허락의 표시라도 되듯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할머니는 거북한 듯 손을 빼내고 드라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끈질기게 구애하는 청년처럼 할머니의 손을 끌어 꽉 쥐었다. 급기야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잘못 터진 수도처럼 꺼이꺼이 소리까지 냈다.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이 볼을 타고 흐르는 할머니의 눈물을 훔쳤다. 부엌에서 이 모든 광경을 치켜보던 엄마가 나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학교 홈페이지에 유를 퇴학시켜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진정서가 올라왔다. 나는 인터넷으로 어디까지가 성범죄에 해당하는지를 찾았다. 모두 애매하고 두루뭉술한 답들 뿐이었다. 엄마도 학교에 진정서를 낸 사람 중 하나였다. 밥을 먹을 때면 유의 문제가 밥상에 올랐다.


“어머니, 어떻게 그런 애랑 같은 학교에 다녀요?”


엄마는 목소리를 높여 할머니의 동조를 얻으려 했다.


“어릴 때 싹을 확 잘라버려야 해!”


아빠는 고함을 지르듯 흥분해 삼촌을 봤다. 아빠 입안에 있던 밥알이 삼촌 얼굴로 튀자 삼촌이 인상을 썼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아직 어린데, 혹시 더 큰 일을 저지를 수 있으니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느냐며 엄마가 유의 문제를 자꾸 밥상에 올리는 게 거북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렇지, 누구한테 해코지한 것도 아니고…….”


할머니는 드라마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말에 엄마는 난색 하며 수많은 성추행과 성폭행 사례들을 나열했다. 엄마의 말에 할머니는 자주 젓가락을 떨어트렸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밥그릇에 반찬을 올려주거나 팔을 살짝 잡았다 놓았다. 나는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봤다. 그러나 삼촌은 눈을 덩둘히 뜨고 텔레비전만 보며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턱주가리가 빠졌나. 스물도 넘은 놈의 새끼가 젓가락질이 그게 뭐야. 내가 너무 오래 살았지. 너무 오래…….”


난데없는 할머니의 푸념과 삼촌을 향한 부당한 공격에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삼촌은 어이없다는 듯 할머니를 쳐다봤다. “살아도 너무 오래 살았어.”라는 할머니의 말끝에 눈물이 맺히자, 밥상 위에 폭탄이라도 투하된 듯 조용했다. 이유를 알 리 없는 텔레비전만 계속 떠들어댔다. 젓가락을 탁, 놓은 삼촌이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엉덩이가 축 늘어진 삼촌의 반바지를 좇았다. 한참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던 삼촌이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젓가락 쓰는 게 그렇게 보기 싫으면 이제부터 포크 쓸게.”


포크로 김치를 콕 찍으며 삼촌이 할머니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 형수님, 저도 그런 친구는 일찍부터 싹을 잘라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삼촌의 이 말을 시작으로 다시 밥상에는 유의 문제가 올라왔다. 나와 할머니는 태연히 턱을 움직이는 삼촌을 어이없이 바라봤다. 어쩌면 그때 내 치마 속에 들어왔던 건 삼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래전 일이라 내가 착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군대에서 삼촌은 기억을 버리는 훈련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것들만 기억하도록 훈련된 것이다. 아니면 어른이 되는 그 경계에는 죽은 자만 건넌다는 망각의 강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지?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촌이 유를 비난할 수 있는 거야. 어떻게?


삼촌의 포크가 콩나물로 향하면 나도 동시에 삼촌이 집은 콩나물을 낚아챘다. 나의 완벽한 젓가락질을 뽐내며 나는 사냥감을 찾은 매처럼 날렵하게 삼촌의 반찬을 낚아챘다. 처음엔 씩 웃으며 다시 반찬을 집던 삼촌도 슬슬 짜증이 나는지 반찬에 손을 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밥그릇이라도 뺏고 싶은 심정이었다.


할머니는 불안하게 나와 삼촌을 관찰했다. 그러면서도 조기를 발라 삼촌의 밥그릇에 올려줬다. 삼촌의 포크가 김치를 향해 움직였다. 나의 젓가락과 삼촌의 포크가 삼 년 묶었다는 배추김치 위에서 쨍, 부딪혔다.


“내가 그렇게 좋으냐?”


삼촌이 김치를 내 밥그릇에 올리며 얄기죽 댔다.


“사과해.”


“뭐?”


할머니는 큰일이라도 터진 듯 부르르 손을 떨었다. 할아버지와 아빠, 엄마는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멍하니 삼촌과 나를 쳐다봤다.


“사과하라고. 삼촌이 잘못한 거잖아.”


나는 내 하얀 반바지에 주황색 땡땡이를 만든 김칫국물 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김치 주려다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왜 삼촌이 집으려는 반찬마다 손을 뻗어.”


“그런 거 아냐, 엄마. 삼촌은 일부러 그런 거란 말이야.”


“아빠가 보기에도 네가 좀 심한데. 그만하고 밥 먹자.”


“아, 그래. 미안, 미안해.”


삼촌이 내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렇게 말고. 정식으로 사과하라고.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버릇없이.”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낮은 소리로 꾸짖었다.


“아니, 당신은 좀 가만히 있으시오.”


할머니는 행주로 내 치마에 얼룩을 박박 닦으며 삼촌을 노려봤다.


“싸게 사과 먼저 해라.”


할머니가 삼촌을 닦달했고 나는 삼촌을 향해 눈을 흘겼다. 사과를 받아도 달라질 건 없었다. 보통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배우고 있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거짓이 존재하는지를 말이다. 할머니의 말처럼 시간이 비밀을 덮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스스로 지켜야 하는지도.


“어디서 어른을 그렇게 쳐다보니?”


퉁, 엄마의 숟가락이 내 머리통을 내리쳤다.


“그래도 삼촌은 나한테 사과해야 해.”


나는 울먹이며 밥알을 씹었다. 할머니가 내 밥그릇에 계란말이를 올려주며 “싸게 사과 먼저 안 하고 뭐 하고 있냐이!” 하고 소리를 질러 모두를 기겁하게 했다. 나는 할머니가 준 계란말이를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계란 비린내가 물컥 올라오며 눈물이 났다.


“....미안해.”


삼촌은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할머니가 삼촌을 흘겨봤다. 삼촌은 짧은 머리를 긁으며 슬그머니 일어나 자기 방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씩씩대며 삼촌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나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한 남자가 어깨를 잔뜩 옴츠려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엉덩이를 긁으며 제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내 방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나는 인터넷에 내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다. 대나무 숲에 선 이발사처럼, 바람 부는 대나무 숲에 대고 외치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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