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문학상 /단편소설
소년을 처음 본 건 호텔 앞에서였다.
소년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나를 보자 허둥대며 일어나 트라이시클 뒤로 갔다. 아이는 다섯 살 정도로 소년의 동생 같았다. 속을 다 드러내듯 간잔지런한 이를 보이며 웃는 운전석의 소년과 아이를 번갈아 보며 어쩌지 못하는 내게, 자신이 일어난 자리를 가리키며 아이가 앉으라고 손짓했다.
“아무 곳이나 가장 가까운 마사지 가게로 가줘.”
나는 어쩔 수 없이 트라이시클에 앉아 중얼거리듯 영어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소년이 페달을 밟았다. 나를 당혹스럽게 한 건, 페달을 밟는 소년의 가는 다리도 페달을 밟을 때마다 내 무게에 소년의 조그만 엉덩이가 들썩이는 것 때문도 아니었다. 소년이 출발하자마자 아이가 달리며 트라이시클 뒤를 밀었기 때문이다. 평지에서 아이는 손에 힘을 덜 쥐고 밀고 오르막길에선 땀을 뻘뻘 흘리며 작은 손으로 의자 봉을 꽉 쥐고 밀었다. 아스팔트라도 녹일 듯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렸다.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필리핀에는 더운 계절과 몹시 더운 계절만 있다는 레아의 말이 떠올랐다. 우기 때는 시원한 날씨를 기대해도 되냐는 질문의 답이었다.
목과 소매 부분이 낡아 해진 소년의 티셔츠에는 ‘곷ㅁ낙’이라는 한글이 적혀 있다. 척 봐도 소년의 티셔츠가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흐릿하게 남은 흔적으로 그것이 ‘꽃미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꽃미남, 나는 작게 웅얼거렸다.
소나기라도 맞은 듯 소년의 목을 타고 흐르는 땀줄기를 보자 후회가 밀려왔다. 소년을 외면하고 택시를 잡거나 다시 호텔로 들어가 소년이 사라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곳에서는 거리에 늘어선 아이들을 외면하는 게 필수라던 레아의 충고가 뒤늦게 떠올랐다.
먼지 섞인 더운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이러다간 마사지고 뭐고 가는 길에 진이 다 빠질 판이었다. 트라이시클 뒤에 매달린 아이의 손이 자꾸 등에 닿았다. 뒤돌아 아이를 봤다. 아이는 고개를 들고 더운 바람에 맞서고 있었다. 어쩔 줄 모르는 나와 달리 아이가 먼저 이를 보이며 웃었다. 사라진 앞니 사이로 아이의 연분홍 혀가 보였다. 나는 자꾸 등에 닿는 아이의 손을 피해 앞으로 엉덩이를 조금 움직였다.
문제는 ‘가장 가까운’이라는 나의 말이었다. 소년이 최단 거리로 선택한 길은 주택가 골목이었다.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들이 빼곡했다. 게다가 길은 울퉁불퉁하기까지 했다. 엉덩이로 전해지는 아픔보다 더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두 꼬맹이가 앞뒤에서 끄는 트라이시클에 앉아 있는 동양 여자라니. 골목 중간쯤 들어섰을 때, 나는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노크하듯 소년의 젖은 등을 두드렸다.
“잠깐만 세워봐.”
발을 멈추지 않고 소년이 뒤돌았다.
“저기, 나랑 자리 바꿀래?”
러닝셔츠만 걸친 사내들이 베란다에서 맥주를 마시며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우리를 봤다. 테이블에는 붉은 말이 그려진 빈 레드 홀스 병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집 안의 텔레비전에서 여자들이 머리에 화관을 쓰고 허리를 돌리며 춤을 췄다. 하와이인 듯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가 골목을 채웠다. 집과 집들은 서로 이웃해 있건 마주 보고 있건 서로를 향해 열려 있었다. 문이라고 해봐야 얇은 천이 전부였다. 집안의 사람들은 신기한 것을 구경하듯 트라이시클에 앉은 나를 봤다. 손을 흔드는 아이들도 있었고 휘파람을 부는 짓궂은 사내들도 있었다. 내가 아닌 그들이 나를 스쳐 어딘가로 떠나는 착각이 들 만큼 자유롭고 들뜬 모습이었다.
“안, 돼, 요.”
소년이 단호하게 한국어로 말했다. 나는 프러포즈에 거절당한 소녀처럼 소년이 끄는 트라이시클에 앉아 모난 돌멩이들을 엉덩이로 느꼈다. 그러다 소년이 한국어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그쯤이야, 하고 생각할 즈음 소년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손님인데, 내 손님이어서 안 돼요.”
소년은 단칼에 제안을 거절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지 이를 다 드러내고 수줍은 듯 웃었다. 거의 정확한 한국어였다. 나는 뒤돌아 아이에게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아이를 옆에 앉히고 아이도 한국어를 할 수 있는지,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는지를 묻고도 싶었고 아이들을 혹사한다는 마음의 빚을 조금 덜어보자는 심사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그쯤 되자 그저 무사히 마사지 가게에 도착하기만을 바라게 됐다.
백 미터 앞으로 큰 도로가 보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드디어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엉덩이가 떨어졌다. 그것이 화근이 돼 소년이 중심을 잃었고, 설상가상으로 자전거는 길에 난 홈에 처박혔다. 아이와 나는 길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소년은 나를 향해 검고 여윈 손을 내밀었다. 소년의 하얀 손바닥에 검은 손금들은 야린 잎사귀에 굵고 억센 잎맥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내 뒤에 쓰러졌던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내가 약속한 이십 페소를 주자 소년은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이십 페소를 더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소년의 눈치를 살피며 돈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나는 유혹하듯 아이의 손을 잡아 돈을 쥐여 줬다. 어정쩡하게 돈을 받아 쥐고도, 아이는 나와 소년을 번갈아 보며 소년의 눈치를 살폈다. 거리의 아이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이는 도로 돈을 가져가라는 듯 나를 올려다봤다. 귀찮은 일을 피하듯 나는 서둘러 마사지 가게로 들어갔다. 그러나 마사지를 받는 동안에도 소년의 손바닥을 가르던 억센 잎맥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누구와 닮았는지 알고 있다. 나의 J. 내가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와의 삶이 떠올랐다. 억센 가지처럼 아무렇게나 뻗어 있던 굵고 선명한 그의 손금들과 함께.
어머니는 J를 음흉하다 했고 아버지는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라 했다. 결국, 같은 말이었다. 그래도 나는 J의 가족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육 년을 J와 살았다.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와 함께인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J의 위로 없이 그의 가족과 함께 사는 건 견디기 어려웠다.
J를 제외한 그의 가족과 나는 모두 나사 하나로 간신히 버티는 꼴이었다. 시어머니는 육 년 내내 나를 남편 뺏은 첩 대하듯 했고, 고등학교 삼 학년을 지나 대학에 들어간 그의 여동생은 울면서 들어와 소리를 지르며 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신경쇠약이기 때문에 참아야 했고, 그의 여동생이 어머니를 닮아 예민해서 참아야 했다. 그는 스스로 쓸데없는 감정들을 잔가지 치듯 자르면서 내게는 인내와 울화라는 불필요한 것들을 익히게 했다.
그는 매일 자신의 나사들을 꽉 죄고 어느 것 하나도 풀려 덜컹대거나 길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았다. 나는 육 년을 넘게 그런 J를 사랑했다. 그것은 절대 내가 가질 수 없는 종류의 단단함이었다. 단단한 슬픔이었으며 견고한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J를 닮은 아이가 갖고 싶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 단단한, 그런 아이를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이가 없었다. 그의 책임이라는 집합소에 들어갈 우리의 교집합이 없었던 거다.
갑작스러운 J의 죽음 후, 나는 그의 삶을 정리할 책임을 지게 됐다. 그 일은 은행과 각종 카드사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는 일로 시작됐다. 전기와 수도, 그 밖의 공과금 용지에서도 그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갔다. 단단히 조여 있던 그의 나사들을 천천히 풀어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나사들을 하나씩 나의 빈자리에 채워 넣었다. 무언가 내 안에서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이메일을 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예상했던 비밀번호가 모두 틀렸을 때, 어쩌면 J에게도 은밀한 사생활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휴대전화 인증을 받아 비밀번호를 새로 바꿔야 했다. 그의 이메일을 읽고 없애는 일은 또 다른 그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었다. 거기서 나는 에이프릴로부터 온 이메일을 읽게 됐다. 4월이라니. 4월은 그와 내가 결혼한 달이었고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떠난 달이기도 했다. 결국, 나는 그의 이메일을 없애지 못하고 종종 훔쳐보았다.
“한때는 사탕수수 농사로 모두가 부유했대요. 저희 엄마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지만요.”
“사탕수수?”
“네. 저도 거기서 일하는 애들 가르친 적 있어요.”
별 의미 없이 한 대꾸에 레아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고된 노동 후에 학교에 오는 그곳의 아이들은 희망이 없다고 할 때, 레아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기까지 했다. 정규 교육만 마치면 아이들은 다시 사탕수수밭으로 돌아가 평생을 보내게 될 거라고 할 때는 깊은 한숨을 쉬기도 했다.
“자꾸 레아가 선생님이라는 걸 잊어.”
레아는 정 원장이 가이드 겸 영어 선생으로 소개해 준 아이다. 필리핀 대부분 아이가 그렇듯 일찍 대학을 졸업하고 돈벌이에 뛰어든 만큼 눈치가 빨랐다. 거기다 레아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작가님은 어떤 소설을 써요?”
사탕수수 농장으로 막대한 부를 이룬 사람들과 그곳에서 값싼 노동을 하는 어린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던 레아가 불현듯 물었다. 나는 레아의 입에서 나온 작가라는 말에 멈칫했다.
“책이 비싸서 많이 못 읽지만, 일본에서 엄마가 가끔 중고 책을 보내줘요. 존 어빙도 좋고 필립로스나 폴오스터도 좋아요. 가끔 일본어로 된 책도 있는데, 읽을 순 없지만 그냥 좋아요.”
J와 살면서 블로그와 카페에 써 내려간 것들이 사람들에게 읽혔다. 누군가 읽는 것도 알지 못하고 쓴 것들이었다. J와 나의 이야기였다. 생활의 남루함을 제외한 사랑만을 써 내려갔다. 내가 믿는 우리의 사랑을 말이다.
“로맨스 소설을 써.”
“와, 로맨스요? 그럼, 사랑에 대해 잘 알겠네요.”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로맨스 작가가 돼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작가라는 말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단지 내가 로맨스 소설을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건 J의 어머니가 내게 보였던 적개심과 다르지 않았다. J의 아내가 됐을 뿐인데, 그의 어머니가 나를 싫어하는 수백 가지 이유를 찾아냈던 것처럼, 몇몇 사람은 우연히 잡은 내 행운을 시기했다.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운이 좋다고 했다. 어떤 이는 노골적으로 내가 쓴 글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치열함이 없다고 얼굴에 대고 소리 지르는 이도 있었다. 황당하고 불편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J가 내 글을 읽길 바랐다. 내 안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J는 내가 무엇을 쓰든 관심이 없었다.
“그럼 이번엔 어떤 로맨스 소설이에요? 에이프릴하고 관계있는 거예요? 코리아노와 필리피나의 사랑 이야기예요?”
로맨스라는 말에 신이 난 레아가 끊임없이 물었다. 코리아노와 필리피나의 사랑 이야기……. 이 말이 가슴에 걸렸다. 코리아노는 한국 남자를 말하는 거다. 필리핀 남자를 필리피노라 하고 여자를 필리피나라 하는 것처럼 레아는 한국 남자를 코리아노라고 칭했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쏟아지는 비에 앞이 하얗게 보였다. 택시 밖의 사람들이 소리치며 비를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