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문학상/ 단편소설
무작정 J가 영어 공부를 했다는 도시로 왔다. J가 떠난 지 이 년 만이었다. J의 어머니와 여동생과는 멀어졌다. 아이가 없으니 연결된 끈도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함께 살겠다고 울먹이는 내게 그들은 나를 보면 J가 떠올라 힘들다고도 했다. J는 없는데 내가 있다는 사실이 죽을 만큼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내가 그들의 모습에서 J의 눈을, 높진 않지만 날카로운 콧날을, 하다못해 닮은 손가락 하나를 찾으며 위안을 얻는 것에 비해 그들은 나와 하나도 닮지 않은 J를 내게서 보았다. 나는 내 어디에 J가 있는지 궁금해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때마다 그를 닮았을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에이프릴이 보낸 사진 속의 아이가 자꾸 눈앞에 어룽댔다.
J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고 남들처럼 중얼거려보았다. 그러자 정말 다행인 것 같았다.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렸다. 그랬다. 우리 사이에 아이가 없는 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아이 하나 없다는 사실이 J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어쩌자고 그런 아이를 낳지 못했는지, 어쩌자고 그를 내 안에 담지 않았는지, 스스로 자책했다.
혹시나 다시 누군가와 살게 된다면 J와는 정반대의 사람을 만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코,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했다. 왜 어른들이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다는 지도 생각했다. J의 죽음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먹먹했다. 나는 바닷속을 뚫고 들어오는 빛처럼 고요했지만, 내 안에서는 두서없는 문장들과 이미지들이 마구잡이로 겹치거나 불쑥불쑥 솟았다. 사진은 어느 순간부터 그 이미지들의 일부가 됐다. 가볍게 살랑대는 물그림자가 됐다. 에이프릴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한 건 순전히 그 사진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 작은 도시로 와 삼 개월이 흘렀다.
처음 에이프릴을 만났을 때, 나는 스스로 소설가라고 소개했다. 나는 ‘소설가’라는 단어에서 조금 머뭇거렸다. 에이프릴도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주춤하며 손을 내밀었다. 주름이 많고 굵은 손이었다. 처음에 에이프릴은 계속되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레아와 학원장이 다른 사람을 주선해 주겠다고 할 정도였다. 나는 그럴수록 그녀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을 제시했다. 결국, 돈 때문이라니. 나는 그 정도 안목을 가진 J를 비웃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에이프릴은 밝고 상냥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처음에 제시한 가격으로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두 시간만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 에이프릴은 너무 많은 금액을 제시해 놀라서 달려왔다며 농담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런 그녀 앞에서 당황한 건 오히려 나였다.
에이프릴을 만나는 횟수가 늘수록 나는 J가 그녀를 정말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구불거리는 다갈색 머리카락과 햇볕에 검게 탄 피부, 불쑥 튀어나온 이마를 타고 이어지는 뭉툭한 코와 두툼한 입술. 미인이라 할 수 없지만, 대화를 시작하면 이상하게 마음을 잡는 매력이 있었다. 그건 사려 깊고 상냥한 시선 때문이었다. J도 이런 것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를 하다 보면 그녀의 입술로 시선이 갔다. 희고 가지런한 이들을 보게 됐고 입을 벌릴 때마다 그녀의 혀가 움직이는 것을 살피게 됐다. 어떻게 J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만졌는지, 어떻게 그의 입술이 그녀의 젖가슴을 애무했는지, 어떻게 그들을 사랑하게 됐는지 상상하게 됐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어떤 속도로 사랑을 나누었는지. 나는 J와의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에이프릴이 J와의 사랑 이야기를 할 때면, 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섹스 장면에 그들의 얼굴을 넣고는 했다. 멈추고 싶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애초에 J는 필리핀에서 삼 개월, 캐나다에서 구 개월 일정인 어학코스를 선택했다. 그런데 필리핀에 도착한 지 이 개월이 지나지 않아 J는 일 년을 필리핀에 머물기로 계획을 바꿨다. 그 후, J는 아파트를 구해 에이프릴과 동거했다. 동거를 시작하고 오 개월이 지났을 즈음엔 목사 앞에서 간단한 결혼식도 올렸다. J는 필리핀에 머물려 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난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틈틈이 J는 에이프릴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했다. 모두 절망적인 것들이었다. 에이프릴은 자신의 절망이라도 되듯 그렇게 말했다. J가 떠나고 에이프릴은 아이를 가진 걸 알지만, J의 절망에 다른 절망을 더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그 사실을 숨겼다. 숨겼다기보다는 잠시 미뤘다고 에이프릴은 정정했다.
“원망하지 않아요?”
내가 한국어로 말하면, 레아가 영어나 따갈로어로 물었다.
“전혀.”
“왜요?”
내가 왜라고 묻기 전, 레아는 에이프릴에게 따지듯 물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에이프릴은 따갈로어로 답했다. 에이프릴의 영어는 수준급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자주 소통했다. 레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어라 간단한 말을 던졌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가만히 있어도 자신의 감정까지 더해 레아가 질문할 거라는 걸 알았다.
“작가님, 나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사랑하면 그래요? 에이프릴은 다 괜찮대요. 그 사람이 못 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래요. 한국에 어른들은 이런 거 못 받아들인다고 그 사람이 그랬대요. 그 사람이 효자래요. 그건 나쁜 게 아니래요. 그래서 괜찮대요. 에이프릴은 다 이해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뭐라고?”
나는 J가 효자라는 에이프릴의 말을 되새기며 성의 없이 물었다. 결혼을 약속하고 J가 먼저 물었던 것도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지였다. 자신은 항상 어머니의 편에 설 거라며. 나는 그때 현명한 아내가 되기로 했다. J와는 시댁에 관한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속엔 J와 내가 그의 어머니보다 오래 살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천사 콤플렉스라고요. 아니면 착한 여자 콤플렉스거나. 다 같은 말이죠.”
“그런가? 그보단 자신이 상대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았겠지. 내가 상대보다 약하다는 걸 안거야. 사랑하는 감정이 더 컸던 거야.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안 거고. 그건 착한 게 아니라 현명한 건지 몰라. 상대방에겐 적당한 상황과 이유를 만들어주고 스스로에겐 위로를 주거든. 버림받았다는 느낌보단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거야. 스스로에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레아는 아직 그런 사람을 못 만난 거겠지.”
“치. 사랑이라면 저도 할 만큼 했어요.”
레아와 내가 한국말로 대화하는 동안 에이프릴은 망고 셰이크가 든 잔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에이프릴은 우리의 웃음에 맞추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화에 집중하거나 상황을 파악하려는 의도보다는 어떤 생각에 깊이 빠졌다가 웃음소리에 놀라서 보이는 미소 같았다.
“레아는 한국어를 어디서 배웠어?”
창밖을 바라보던 에이프릴이 물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하늘이 온통 하얗게 보였다.
“그건, 비밀인데.”
레아는 부끄러운 듯 끝말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레아가 어떻게 한국어에 능한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아, 에이프릴은 왜 한국어를 못해요? 알아듣는 거 아니에요?”
레아가 곤란한 질문으로부터 빠져나가듯 화제를 돌렸다. 나 또한 에이프릴이 기초적인 인사 말고는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도 그게 부끄러워. 아이에게도. 그이는 나와 있는 동안 한국어를 한마디도 쓰지 않았어. 빨리 영어를 익히는 게 우선이라고 했거든. 간혹 내가 혼자 배워서 한국어를 써도 불같이 화를 내거나 무시했어.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천천히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어. 천천히 해도 된다고. 그의 부모님이 허락하면 한국에 살 거니까. 그때 가서 해도 된다고 생각했어.”
레아가 발연히 일어나 무어라 중얼거리며 방 밖으로 나갔다. 레아가 나간 문을 멀뚱히 보다가 나와 같은 곳을 보던 에이프릴과 눈이 마주쳤다. 에이프릴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센 비가 쏟아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사람 정말 나빠요. 아주 나빠.”
잠시 후, 방문을 열고 들어선 레아가 방 한가운데를 향해 영어로 소리쳤다. 마치 J가 그곳에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에이프릴이 놀라 벌떡 일어섰다. 노란 망고 셰이크가 에이프릴의 바지 위로 쏟아 졌다. 나는 욕실로 수건을 가지러 가면서 레아가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걸 들었다.
수건을 가져 왔을 때, 레아는 에이프릴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레아를 일으켜 의자에 앉힌 후 에이프릴에게 수건을 건넸다. 에이프릴과 나는 기다렸다. 잠시 후, 눈물을 그친 레아는 미안하다며 다시 울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고 무슨 연유인지 궁금했다. 그건 에이프릴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에이프릴은 돌아가지 않았다. 언제나 인터뷰가 끝나면 아들이 기다린다며 먼저 일어서던 그녀였다.
“나도 알아. 그 사람이 나쁘다는 거.”
에이프릴이 레아를 안으며 영어로 말했다. 영어를 사용하는 건 나를 위한 배려였다.
“단 한마디의 한국어도 가르쳐 주지 않은 거. 영어를 빨리 익히려는 그 사람만의 방법이었겠지. 그리고 나와 함께 산 것도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몰라. 아니 그랬을 거야. 그렇다고 거기에 사랑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거야. 나는 그렇게 믿어.”
그 후 에이프릴의 목소리는 자장가를 부르듯 조용하고 부드러워서 알아듣기 어려웠다. 이상하게 에이프릴을 보면 소리가 지르고 싶었다. 에이프릴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J의 냉정함에서 온 상처를 사랑과 연민으로 포장하려던 과거의 나와 부딪히는 것 같아 불편하고 불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