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뉴파인스키 5

단편소설

by 명희진

아기는 눈, 코, 입을 다 갖췄다. 열 개의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아론의 팔에 난 털처럼 황금빛이었다. 아기는 요니의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고추와 비밀이 담긴 주름진 두 개의 작은 주머니도 제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아기는 아델라의 뱃속에서 죽었다.


아론과 루프스가 아기의 관을 고르는 동안 요니는 아기를 안아봤다. 아기를 둘둘만 담요의 무게 말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요니는 아기가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상상을 했다. 아기가 자라는 동안 아기의 대모가 되어주고 아기가 말을 배울 즈음에는 아기보다 폴란드어를 유창하게 하는 자신을 그려보았다. 그들의 삶에 아기가 있는 상상이 그전에는 행복이었는데 이제는 불행이 돼버렸다.

요니가 아기 이마에 키스했다. 그게 아기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때때로 아기는 요니의 꿈에 나타났다. 아델라처럼 신비로운 숲의 눈으로 요니를 애잔하게 바라보다 사라졌다.


일 년여가 지나자 아델라는 괜찮아졌다. 아니,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다. 아론과 아델라는 프랑스로 휴가를 떠났다. 아기를 가지려는 여행이었다. 와인은 혹시 있을지 모를 기쁜 소식을 위해 준비한 거였다. 요니는 빈 와인병을 테이블에서 치웠다. 얼마간 나이프와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데, 자고 가는 건 어때, 아다?

루프스는 아델라에게 물으면서 허락을 구하듯 요니의 얼굴을 쳐다봤다. 요니는 창밖을 보며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을 표했다.

아냐, 이것만 먹고 일어날래. 그래도 밸런타인데이잖아.

아델라는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 훌쩍였다.

그래? 그럼 내가 바래다줄게.

루프스가 잔에 든 와인을 한 번에 넘기고는 입술에 묻은 와인을 혀로 훑었다. 요니가 여러 번 고치라고 지적한 습관이었다.

디저트로, 초콜릿무스 케이크가 있어요.

요니가 마른침을 삼키며 거의 울 듯한 소리로 외쳤다. 루프스와 아델라의 시선이 잠시 요니의 얼굴에 머물렀다.

내가, 내가 직접 구운 거예요. 특별히 아델라를 위해.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델라를 위해 양을 두 배로 늘렸으니까.

나 초콜릿무스 케이크 정말 좋아하는데.

사랑스러운 초록빛 눈을 빛내며 아델라가 활짝 웃었다.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눈빛으로!


요니는 찻물을 끓이고 케이크 담을 접시를 꺼냈다. 아델라와 루프스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폴란드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 단어는 귀에 익숙했고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도와줄까?

소파에 앉은 채 아델라가 물었다.

아니요. 다 됐어요.

요니는 찻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양팔을 벌린 예수의 머리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생크림을 얹은 크리스마스 케이크 위에 예수가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예수의 머리 위 가시관이 초의 심지처럼 보였다. 생크림 케이크 위에 예수를 올린다면 루프스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요니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청동상 예수를 올려다봤다.

아뉴 파인스키!

아델라가 요니의 어깨를 잡으며 속삭였다. 성당에서 종이 울리고 있었다. 종은 루프스가 일어나 회사에 갈 준비를 하는 새벽 여섯 시에 한 번, 점심시간인 열두 시에 한 번, 저녁인 여섯 시에 한 번 울렸다. 저녁 종이 울릴 때면 루프스와 요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거나 식사 후에 차를 마셨다. 요니는 둘만 즐기는 그 시간을 특히 좋아했다.

기도라도 하는 거야?

아, 아니요. 그냥 눈이 너무 예뻐서…….


찻잔에 물을 따르며 요니는 허둥댔다. 아뉴 파인스키. 천사의 시간이라고 루프스가 말했다. 밀레의 만종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했다. 만종은 석양이 지는 밭에서 남자와 여자가 감자 바구니를 가운데 두고 서서 기도하는 그림이다. 모자를 손에 그러쥔 남자의 투박하고 거친 손과 고개를 푹 수그린 여자의 수수한 모습은 경건해서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최근에 감자 바구니가 죽은 아기의 관이라는 보고가 새롭게 나왔다. 그래서 기도하는 남녀의 모습이 더 애처로워 보이는 거라고. 기도하는 그들 뒤로 우련히 성당이 비친다.

그날 낮에 요니는 성당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먹구름이 가득한 겨울 하늘 아래 선 예수는 금방이라도 땅으로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양팔을 벌리고 그대로 추락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얼굴엔 슬픔과 고뇌가 가득했다. 그의 발밑에 놓인 금색 시곗바늘은 열두 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요니는 시계의 분침과 예수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슬픈 듯, 여린 듯 수연한 예수의 얼굴은 묘했다. 어디를 가나 나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만날 수 있었다. 십자가가 화려하건, 가시관이 화관처럼 아름다운 색을 하고 있건, 한 가지 사실은 같았다. 그들 모두가 예수이며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거였다. 요니는 그 모습이 가학적이라며 투덜댔지만 처음 폴란드에 왔을 때 성당 꼭대기에 선 예수 때문에 길을 잃지 않고 집을 찾을 수 있었다. 한참을 헤매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팔을 벌린 예수가 멀리 보였다. 그가 선 곳으로 가면 그곳에 집이 있었다.


금색 분침이 열두 시에 서자 종이 울렸다. 큰 종이 먼저 울리고 작은 종들이 뒤이어 울렸다. 곧 크기가 다른 종들이 한꺼번에 울려 아름다운 화음을 이뤘다. 베레모를 쓴 노인이 요니의 옆에 서서 모자를 벗어 가슴께에 얹었다. 요니는 옆에 선 노인을 힐끔거렸다. 요니는 채소며 고기 따위가 든 봉지를 양손에 들고 예수를 올려다보며 우울한 낯빛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진지한 얼굴로 요니의 옆에 서서 눈을 감고 주름진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 기도하는 듯 했다. 노인의 모습이 하도 엄숙해 요니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요니도 노인처럼 눈을 감았다. 이상하게 죽은 아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발그레한 볼은 홍조로 가득했고 황금빛 머리카락이 햇살에 반짝였다. 아기는 아델라보다 아론을 더 닮았었다. 큰 종이 마지막으로 울리면서 종소리가 멈췄지만, 요니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언젠가 아델라가 아기의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편안해 보였어?

아델라가 물었다. 요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델라는 미소 지었다.

아들이었어.

요니가 덧붙이자 아델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요니가 눈을 떴을 때, 노인은 저만큼 멀어져 있었다. 요니는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천사와의 면담은 끝났고, 이젠 우리의 티타임이야.

아델라가 손에 찻잔을 들고 거실로 가며 밝은 목소리를 냈다.

우리?

요니는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옮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난로 앞에 선 루프스에게 아델라가 찻잔을 건넸다. 요니가 탁자에 접시를 올려놓고 다른 접시를 가지러 부엌으로 가는데도 두 사람은 벽난로 앞에 선 채 액자 속 사진에 대해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요니는 싱크대 앞에 서서 크게 숨을 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아델라와 루프스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다 어느 순간 끊겼다. 요니는 아델라가 돌아갈 때 주려고 남은 케이크를 따로 포장하고 카드를 상자 속에 넣었다.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고 카드에 적었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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