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눈이 많이 내리네.
루프스는 고개를 들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요니와 아델라도 루프스를 따라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설탕을 잔뜩 뿌린 것처럼 정원이 하얗게 반짝였다. 창에 루프스와 아델라, 요니의 모습이 되비쳤다. 식탁 위에 음식과 식탁의 양쪽 끝에 놓인 촛대도 창에 되비쳤다. 촛대 위 촛불이 어밀어밀 은밀하게 흔들리는 것까지 다 보였다.
이것도 직접 구운 거야?
아델라가 이탈리언 볼 반쪽을 집어 토마토수프에 찍어 입에 넣었다.
그건 요 앞 사거리 제과점에서 샀어요.
거기 할머니 아직도 살아계셔?
아다, 아직도 라니!
루프스가 어린아이를 나무라듯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청동상 예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요니의 손을 잡아 내릴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요니는 후루룩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수프를 삼켰다. 수프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땐, 그 뜨거움에 놀랐지만 소리내지 않았다.
우리 어렸을 때도 백 살은 넘은 것 같았잖아.
요니는 제과점 한쪽에 항상 앉아 있는 노파를 떠올렸다. 요니가 제과점 안으로 들어서면 노파는 슬쩍 눈길을 주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파는 갈라지고 깨진 제과점의 낡은 벽처럼 그곳의 일부 같았다. 장식장 귀퉁이에 오래된 모형 빵처럼 풍미가 당기지는 않지만, 그곳에 없으면 왠지 허전할 것 같았다.
요니는 루프스와 아델라가 자신들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는 걸 묵묵히 들었다. 학교를 빼먹고 함께 극장에 갔다가 뒷자리에서 영화를 보던 선생에게 걸린 일화와 함께 스페인 여행을 갔다가 가방을 도둑맞은 일,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호텔까지 걸어온 일 같은 것들. 너무 자주 들어서 더는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아델라와 루프스는 마치 처음인 양 떠들어댔다. 서랍 속 배냇저고리까지 꺼낼 듯 쏟아내던 이야기도 한 시절의 일화만은 쏙 빼고 건너뛰었다. 마치 그 시절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듯이.
루프스와 아델라가 수프를 먹는 동안 요니는 소스를 준비했다. 팬에 버터를 두른 후, 양파를 넣고 볶았다. 요니는 요리하는 게 좋았다. 재료를 고르고 다듬는 시간부터가 요리의 시작이었다. 적확한 양의 조미료를 배합하고 준비된 재료를 정확한 타이밍에 넣는 게 좋았다. 자꾸 들여다보고 신경 쓰지 않으면 음식의 맛이 달라졌다. 기분이 좋으면 맛도 좋았다. 아프거나 피곤해 신경을 덜 쓰면 맛에 그것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요니는 음식이 사람을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는 슬픔까지도 요리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양파가 노릇노릇해지며 고소한 향이 퍼졌다. 레드 와인 네 컵을 붓고 나무 주걱으로 휘저었다. 마지막으로 전분 한 스푼을 물에 풀어 넣었다. 소스가 걸쭉하게 졸아드는 동안 오븐에서 꺼내 식혀 두었던 스합제슬리브콩을 고기 도마 위에 올렸다. 고기는 여전히 따뜻했다. 나무 위에 쌓였던 눈이 다시 와르르 바닥으로 쏟아졌다. 어쩌면 아델라가 하룻밤 자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요니는 고기를 잘라 작은 물고기가 가득한 사기그릇에 올렸다. 삶은 감자를 볼에 담아 버터와 소금 간을 한 후 으깼다. 으깬 감자 한 덩이를 고기 옆에 놨다.
크리스마스 같아.
루프스가 고기 위에 소스를 부었다. 와인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요니는 와인잔 세 개를 준비해 루프스와 아델라 옆에 놨다. 아델라가 와인을 따느라 낑낑대자 루프스가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 와인을 땄다. 펑, 공기 빠지는 소리에 요니는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오늘은 뭐 배웠어?
아델라가 자신의 잔에 와인을 따르는 요니를 올려다봤다.
날씨에 대해.
누구도 프랑스에서 아델라가 가져 온 와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와인에 대해 물으면 아론을 거론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프랑스 여자친구도. 그 일은 요니에게도 충격이었다.
빠다 시넥(눈이 내려).
요니는 시넥(눈)에 힘을 주어 발음하며 자신의 잔에 와인을 따랐다.
빠다 두조 시네구(눈이 많이 내려).
루프스가 ‘두조’를 붙여 ‘눈이 많이 내린다’로 문장을 바꿨다. 탁탁(그래, 그래). 요니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루프스 옆자리에 앉았다.
해피 밸런타인데이!
아델라가 와인잔을 들며 경쾌하게 외쳤다.
행복한 두 여자를 위해!
루프스가 요니와 아델라를 번갈아 보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 사이의 한 남자를 위해서도!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아델라가 외쳤다. 그때 누군가의 발이 요니의 발을 건들었다. 요니는 그게 아델라라는 걸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고롱초 투타이(열기가 뜨거워).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요니가 말했다.
짐노 탐(밖은 추워).
아델라가 맞받아쳤다. 탁탁(그래그래). 요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다리를 의자 안쪽으로 옮겼다. 아델라가 요니의 와인잔을 채우며 루프스의 것도 채웠다. 자신의 잔에 나머지 와인을 채우고는 빈 병을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붉은 와인 한 방울이 하얀 식탁보에 얼룩을 남겼지만 요니 말고는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병이 빈 걸 확인이라도 하듯 아델라가 다시 병을 흔들었다. 다시 와인 한 방울이 하얀 식탁보에 떨어졌다.
텅 비었어.
아델라가 아쉬운 듯 중얼거리며 와인 병을 허공에 들어 보였다. 와인이라면 서랍장에 몇 병 더 있었지만 요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델라가 와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텅 빈 와인 병처럼 자신도 텅 비었다는 의미였다. 아론과의 결혼 생활은 아델라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려 애썼다. 한번은 거의 성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일 이후 아델라는 오랫동안 아팠다. 아론과 아델라는 한동안 아이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