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뉴파인스키 2

단편소설

by 명희진

요니와 루프스의 집 앞에도 성당이 하나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 올린 거였다. 성당 지붕에는 육각으로 된 기둥이 하나 서 있었다. 육각기둥을 따라 올라가면 원통 모양의 옥색 지붕이 보였다.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상이나 하늘을 찌를 듯한 금빛 첨탑 같은 건 없지만, 지붕 끝에 청동으로 된 예수가 세상을 품에 안듯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예수의 발밑에는 여섯 개의 면에 여섯 개의 금빛 시계가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면에 서서도 양쪽의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예수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방향에서든 정확하게 같은 여섯 개의 시간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커다란 예수의 머리 위에는 가시 면류관이 칼날처럼 빛났다. 예수는 양팔을 벌린 채 삭연한 눈빛으로 자기 발밑을 내려봤다. 어쩌면 발에 박힌 대못을 보는지도 몰랐다. 처연한 눈빛과 달리 거리를 지나는 모두를 품에 안듯 손바닥이 마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서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도 팔을 벌리고 고개를 숙인 예수였다. 궂은날 성당 꼭대기에 선 예수는 처량하면서도 섬쩍지근한 구석이 있었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는 날에 가시 면류관을 쓴 채 대성당 꼭대기에 선 예수의 모습을 보면 요니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곤 했다.


저걸 보면 기분이 안 좋아.

요니는 청동상 예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누가 엿듣기라도 하듯 루프스에게 소곤거렸다.

손가락질하지 마.

루프스는 그녀의 손을 잡아 내렸다.

가시 면류관까지 씌어 저 위에 올려놓는 게 더 나빠.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어.

요니는 포기하지 않고 투덜대며 루프스의 손을 바로 잡았다.

그래야 그의 희생을 기억하지. 사람들은 자꾸 잊으니까. 그가 어떤 희생을 했는지.

루프스는 아이를 대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가학적이야.

요니는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루프스의 부드러운 눈빛이 좋아 그의 볼에 키스하는 것으로 불평을 대신했다.


요니는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지수의 남편을 떠올렸다. 각진 얼굴에 동글동글하고 선한 눈을 한 남자였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때도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미소 짓는 것처럼 보였다. 지수의 어머니가 반한 미소라고 했다. 하지만 거부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지수가 친구들에게 예비 신랑을 소개한 날이었다. 신부 친구들의 어깨를 감싸고 그들을 택시에 태워 보내던 그의 친밀감은 결혼할 여자에 대한 배려가 없게 보였다. 모임 후에 친구들도 그의 배려가 거북스러웠다고 뒷말했다. 요니도 그의 손이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같이 가던지.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니잖아.

어떻게 그래.

지수의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 여자가 최근에 이혼했다는 것과 남편이 보여준 친절한 행동의 역사로. 요니는 지수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루프스와 아델라 그리고 아론이 함께 있는 사진을 들었다. 사진 속 아델라는 아론에게로 기울어져 있었다. 아론의 팔이 아델라의 잘록한 허리를 감쌌다. 루프스는 팔짱을 낀 채 그들 옆에 서 있었다. 그의 미소가 어색했다. 요니는 사진을 치울까 하다가 그 자리에 내려놨다. 아론이 있는 사진은 그 한 장만이 아니었다. 아론과 요니는 말이 잘 통했다. 아론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시나리오와 시를 썼다. 요니도 소설 읽는 걸 좋아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소설을 쓰기도 했었다. 요니는 아론의 시나리오를 읽고 의견을 나누고 아론에게 책을 빌려 와 읽곤 했다. 침대 옆 협탁에는 아론에게 빌려 온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라>가 놓여있었다. 아론을 지우는 건 그들이 함께한 모든 시간을 지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수와의 전화는 이미 끊어져 있었는데, 지수가 끊은 건지 끊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너는 사람 말을 듣는 거니 마는 거니? 통화 도중 지수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지만,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 요니의 착각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요니는 벽난로 위에 쌓인 먼지를 입김으로 날렸다. 입자들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내친김에 걸레를 들고 와 액자 위의 먼지를 닦아냈다. 바비큐 집게를 들고 서 있는 아론과 그의 허리를 꽉 안고 있는 아델라, 맥주를 홀짝이며 그들 옆에 선 루프스가 찍힌 사진을 들어 꼼꼼히 닦았다. 다시 아론이 들어간 사진들을 집었다가 놓았다. 망설이듯 사진을 들여다보던 요니는 액자들 뒤쪽으로 그의 사진들을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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