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뉴파인스키 3

단편소설

by 명희진



요니는 부엌에 서서 루프스가 자전거를 타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걸 보고 현관으로 갔다. 오후 내내 먹구름이 어둑 충충하더니 기어코 눈이 내렸다. 비처럼 추적추적 내리던 눈은 어느새 함박눈이 되어 펑펑 쏟아졌다.


눈이 엄청나게 내려.

열린 문으로 예수의 형상이 언뜻 보였다가 사라졌다.

항상 그렇잖아.


그의 머리와 어깨 위에 앉은 눈송이가 어느새 물방울로 변해 현관 바닥에 떨어졌다. 요니는 욕실에서 수건을 가져와 아이를 돌보듯 젖은 그의 머리를 말렸다.

폴란드는 다 좋은데 겨울이 너무 길어.


요니는 준비한 수건으로 그의 몸에 물기를 닦으며 투덜댔다. 가끔 사월에도 눈이 내렸다.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도 했다. 일 년이 지나자 폴란드의 지붕이 하나같이 뾰족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불평하는 거야?

루프스가 코트를 벗으며 요니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루프스는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벌컥 문을 열었다. 요니는 밖의 산득한 기운이 자신의 얼굴을 찰싹 때리는 것 같은 불쾌함에 인상을 썼다.


문 앞에는 아델라가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와 같은 색인 초록색 털모자를 쓴 아델라의 얼굴은 러시아 도자기 인형처럼 창백하게 빛났다. 모자와 그녀의 어깨 위로 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그녀 뒤로 주먹만 한 눈이 쏟아졌다. 어느새 바닥에도 제법 쌓여 불빛에 반짝였다. 팔을 벌린 예수가 쏟아지는 눈 속에 얼푸름히 비췄다.


일찍 왔네.

루프스가 그녀 뒤에 문을 닫으며 미소 지었다. 루프스가 아델라를 껴안는 것처럼 보일 만큼 둘은 가까워졌다.

어, 끝나고 바로 왔어.

루프스와 아델라는 익숙한 동작으로 서로를 안고 양쪽 뺨에 키스했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이지.

루프스가 들고 있던 수건을 아델라에게 건네자 그녀가 물기를 닦으며 유쾌한 목소리로 농담을 했다.

요니. 이런 날 초대해줘서 고마워.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아델라가 요니의 양쪽 뺨에 서둘러 키스했다. 아델라가 검은색 코트를 벗자마자 옆에 선 루프스가 기다렸다는 듯 코트를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음, 맛있는 냄새.

토마토 수프를 좀 끓였어요.

그것만이 아닌 것 같은데?

아델라는 커다란 가죽 가방에 손을 넣어 와인 한 병을 꺼냈다. 가방 안에 들키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는 듯 신중한 손짓이었다.

전에 사 온 거.

와, 고마워요. 하지만 이거…….


요니는 와인을 받아 들고 입을 달싹이다가 그만뒀다. 별일 아니라는 듯 아델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루프스가 거실로 나왔다. 요니는 부엌으로 들어가며 테이블에 와인을 올려놓았다.

요니, 자기 옷 아델라한테 빌려줘도 될까?

요니는 노란 불빛 아래서 익어가는 고기를 바라봤다. 스합 제 슬리브콩이라는 폴란드 요리였다. 요니가 폴란드에 다니러 왔을 때, 루프스의 어머니가 만들어준 요리였다. 돼지 안심에 말린 자두나 살구 혹은 치즈 등을 넣어 오븐에서 한 시간 정도 구워내면 됐다. 안심 속에 말린 자두를 넣는 게 관건인 요리다. 기다란 꼬챙이로 고기 가운데를 뚫은 후, 그 안에 말린 자두를 쑤셔 넣었다. 처음에는 구멍이 일자로 곧지 않아 애를 먹었다.


폴란드 사람인 나보다 요니 네가 더 폴란드 사람 같아.

어느새 다가온 아델라가 오븐 안을 바라보는 요니의 어깨를 감쌌다.

그렇게 넋 놓고 본다고 빨리 익는 거 아니야.

뒤집을 타이밍을 놓칠까 봐서…….

아델라는 미니마우스가 그려진 레글란 소매 티셔츠에 밑단이 펑퍼짐한 요가 레깅스를 입었다. 모두 요니의 것이었다.

이거? 루프스가 꺼내 줬는데. 티셔츠는 괜찮다니까…….

요니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아델라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다가 입으니까 귀여워요.

정말?

아델라는 현관 앞에 전신 거울로 달려가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추며 루프스를 불렀다.

루프스! 요니가 나 귀엽대. 정말 그래?

글쎄 내 눈에는 포켓몬 같은데.


아델라는 폴란드어로 투덜대며 루프스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곧이어 화통한 웃음소리가 났다. 미니마우스 티셔츠는 에버랜드에 갔을 때 루프스가 사준 거였다. 커플티를 입고 에버랜드를 다니는 사람들을 루프스는 낯설어하면서도, 가게에 들어가 미니마우스와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를 사왔다. 요니와 루프스는 화장실에 들어가 티셔츠를 갈아입고 나왔다. 루프스의 가슴에는 미키마우스 한 마리가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날 루프스와 요니는 미키마우스 덕에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나는데도 그들은 맞잡은 손을 서로 놓지 않았다. 요니는 어떻게 손을 놔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루프스는 요니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렸다. 나무 위에 쌓인 눈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무슨 눈이 이렇게 내린담.

요니는 한국어로 중얼거리며 오븐 안의 스합제슬리브콩을 뒤집은 후, 양파 한 알을 꺼내 껍질을 깠다. 쏟아지는 눈을 보며 양파를 씻은 후, 채를 써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다. 요니는 다진 양파를 그릇에 담아 한쪽에 놓은 후, 토마토 수프가 든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 따뜻하게 데웠다. 양파는 고기가 완성되면 적포도주와 전분을 넣어 소스를 만들 거였다.


토마토 수프에 파스타를 넣을까요? 밥을 넣을까요?

요니는 소파에 앉아 함께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웃는 루프스와 아델라에게 물었다.

둘 다 만든 거야?

루프스가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되물었다.

네. 둘 다 있어요.

나는 밥.

아델라가 왼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나는 파스타로.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루프스가 말했다. 요니는 냉장고에서 미리 삶아둔 파스타와 밥을 꺼내 그릇에 담았다.

나는 아무것도 안 넣을래.

한국어로 중얼거리며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두었던 감자를 냄비에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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