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 <모란 앞에서 반성할 일이 있다>
아침을 맞이한 모든 것은, 설령 고뇌일지라도
어둠을 통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류시화 시 <모란 앞에서 반성할 일이 있다> 부분
모든 아침에 무사히 당도하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매일 아침 우리의 영혼이 육신으로 돌아와 안착하는 일은 기적이다. 반복되므로,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므로 무덤덤하게 넘어가는 것뿐이다. 얼마 전,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고 영면에 든 어떤이가 있다. 그는 당연히 아침을 맞이할 줄 알고 잠자리에 들었을 거다. 아침이 되었을 때 그의 영혼은 육신 속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래전, 젊은 청년 아이가 “엄마 피곤해서 일찍 자야겠어요”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긴 적도 있다. “피곤하다더니 늦잠도 자네”하는 마음으로 아침에 아들을 깨웠을 때 이미 아이의 영혼은 육신을 떠나고 거기 없었다. 그들의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천국에 있는지, 다른 곳에 있는지 가보지 않았으므로 확신할 수 없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믿음이라 했는데 천국은 믿으려 할수록 자꾸 의심이 만들어진다.
최진영 작가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 죽은 ‘구’가 있는 곳은 살아있는 ‘담’의 곁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그 세계에 ‘담’은 없고, 담이 있는 세계에는 ‘구’가 없다. 구는 죽었지만 먼저 죽은 이모도 노마도 만나지 못했다. 구는 "죽은 영혼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무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모나 노마도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죽은 영혼은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담이 죽는다 한들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너는 천 년을 살라고. 나도 너의 곁에서 같이 천년을 살 거라고. 『구의 증명』이다.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창밖의 어둠을 만날 때, 햇살 가득 번지는 아침에 당도하여 커튼을 열 때 감사한다. 지난밤 육신을 떠났던 내 영혼이 다시 나를 잘 찾아와준 것에 대해. 밤새 어둠속에서 내 영혼을 인도했던 것은 신의 발걸음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둠이 걷히는 찰나. 신의 창이 열리는 시간. 푸른새벽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침을 맞이한 모든 것은. 설령 고뇌일지라도 어둠을 통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온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