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 <쓰는 즐거움>
쓰는 즐거움,
지속의 가능성.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소멸해가는 손의 또 다른 보복.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 <쓰는 즐거움> 부분
삼 년 정도 책을 읽었다. 첫해는 띄엄띄엄 읽고, 두 번째 해는 빡쎄게 읽고, 세 번째 해는 열심히 읽었다. 읽은 책의 권수가 쌓여갈수록 뿌듯함도 늘어갔다.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다가 시작하게 된 ‘모닝 페이지’를 단 하루의 공백도 없이 쓴 것이 760일이 넘었다. 덕분에 나는 아침에 침대에서 뒹굴뒹굴하지 않는다. 새벽이건, 아침이건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나의 글쓰기 시간이다. 특별한 주제는 없다. 그냥 썼다. 시 창작 공부를 시작하고서도 오랫동안 詩를 쓰지 못했다. 쓰는 대신 읽었다. 처음에는 시를 필사하면서 읽고, 나중에는 마음에 남는 문장에 내 생각을 입혀 메모지에 남기면서 읽었다. 읽는 시간보다 잊히는 시간의 속도가 더 빠르다고 생각할 때부터 독서법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었다. 무엇인가 무릎을 ‘탁’ 칠만한 산뜻한 방법은 없었다. 내가 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았다. 메모하면서 읽기, 독서록 작성하기, 생각하기. 책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은 뇌의 노후화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마음에 드는 독서 노트를 샀다. 장르별로 나누어 기록한다. 한 권을 오래 쓰지 않아 지루하지도 않고, 여러 권을 동시에 쓰는 즐거움도 있다. 책을 다 읽고 바로 글을 쓰려고 하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걸으면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책의 내용들이 이해되기도 하고 질문이 생기기도 한다. 걷다가 서서 휴대전화 메모장에 메모한다. 영감은 머릿속에 진 치고 있지 않는다. 대개는 잠깐 스쳐 지나간다. 완전히 떠나기 전에 메모장에 가두어 놓아야 한다.
12월 한 달 동안 천 글자 에세이 쓰기 미션을 했다. 매일 주어지는 단어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인데 재미있었고, 착실하게 마무리했다. 마감이 있는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아침 글쓰기는 하루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쓰는 즐거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는 지금 ‘쓰는 일’에 차츰 빠져들어 가는 중이다. 글은 글을 불러온다. 첫 문장을 쓰면 다음 문장이 생각난다. 일단 쓸 때 “지속의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쓰는 일이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소멸해가는 손의 또 다른 보복”이라니. 그녀의 문장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런 문장 하나 건져 올리기 위해 그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