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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과거로 가는 표 한 장

류시화 시 <내가 말하는 기차역은 언제나 바닷가 그 기차역이지>

by 따시

내 발자국 소리 공허하게 울리는

폐쇄된 매표창구로 가서 나는 말했다

오래전, 이 역에서

기차와 사랑을 놓쳤어요

과거로 가는 표 한 장만 주세요

류시화 시 <내가 말하는 기차역은 언제나 바닷가 그 기차역이지> 부분


기억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기록되지도 않고, 그러나 분명히 있는. 뇌 속에 저장되어있는 시간이라고 하면 맞나? 내가 온몸으로 통과한 시간인데 몸은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 후에야 뇌는 기억하는 현상. 이런 질문이 생길 때는 어려워 덮어 둔 뇌과학책을 다시 읽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거다.

일전에 나는 그러니까 우리 교회가 강제 철거를 당하기 얼마 전, 문득 옛 교회 생각이 났다. 처음으로 믿음을 시작했던 작은 교회다. 기억속에 있는 골목을 더듬었다. 도시 재개발이 진행되는 곳이어서 모든 골목은 차단되었지만 다행히 교회가 있는 골목은 열려 있었다. 교회는 50년 전 내가 첫발을 내디뎠던 옛 모습은 아니다. 그 시절 교회 앞에는 수영장이 딸린 개인주택이 있었다. 명선씨네 집이었는데 빌라로 바뀌었다. 교회에서 아래로 두 번째 집이 우리집이었다. 정확하게는 주영이네 집이었다.

처음 이 도시로 이사왔을 때 우리 다섯 식구는 주영이네 문간방에 세 들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화장실이 있고 그 옆으로 연탄창고가 있어서 마루 끝에 있던 또 다른 부엌 달린 셋방에 살던 화경이네와 한 쪽씩 경계를 나누면서 사용했다. 창고와 화장실 위는 장독대였다. 화경이와 나는 주인 할머니가 없을 때 장독대에 올라가서 종이 인형 놀이를 했다. 그 친구 방에는 아픈 아버지가 늘 누워 있었고 부엌 위로 다락방이 있었다. 그 다락방에서도 놀았다. 집의 모양도 옛모습은 아니었다. 2층 다가구 주택으로 새로 지어졌다. 교회 뒤편으로 규영 씨네 기와집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위 골목에는 공동수도가 있었다.

50 년 동안 골목의 모든 집은 다 변신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것들이 현실에는 없다. 정말 그것들이 거기에 있었는지. 사람들이 모두 떠난 텅 빈 골목이다. “내 발자국 소리 공허하게 울리는 폐쇄된 골목에서 나는 말했다. 오래전, 이 골목에서 친구를 잃었어요. 과거로 가는 표 한 장만 주세요” 얼마 후면 이 골목도 사라질 것이다. 흔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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