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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만난 적 없는 인생

신용목 글 <결정적인,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by 따시

……하루하루 죽어간다고 해서 죽음을 만난 것이 아니듯이, 하루하루 살아 간다고 해서 인생을 만났다고 할 수 없으니까. 아직 나는 인생을 만난 적 없으니까.

신용목 산문 <결정적인,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부분


참 많은 사람이 인생에 대해 말한다. 나도 더러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치 내가 삶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시인은 아직 인생을 만난 적 없다고 한다. 하루를 산다는 것이 그만큼 죽음 쪽으로 가까이 간다는 것이지만 죽음을 만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그렇게 만나지 않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만나자 한다. 죽음은 순간이다. 어제를 지나고 지금을 지나서 만나는 찰나의 순간. 오래 병상에 있었어도, 갑자기 맞닥뜨려도 죽음이란 한순간이다. 그렇게 만나는 죽음처럼 인생도 한순간인가?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이 시간은 무엇인가? 아직 인생을 만난 적 없다고 하면 이것은 죽음도 아니고 삶도 아닌 도대체 무엇이라고 명명해야 하나. 인생은 한방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한방은 한주먹. 인생은 한주먹인가. 죽음이 순간이듯 인생도 찰나다. 한 컷씩 끊어진 필름이 이어져서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지듯이 인생도 한 컷씩 만들어지고 편집되어 상영되는 것이다. 나는 배우인가 연출자인가 편집자인가. 사람들은 모두 주연배우이기를 소망한다. 주연배우는 제멋대로 연기하지 않는다. 연출자의 뜻을 따른다. 찍힌 필름은 그대로 이어지지 못한다. 편집자의 손을 거쳐서 영화가 만들어진다. 내 인생을 편집하는 것은 누구인가. 당신이다. 우리는 수많은 당신들 사이에서 주연배우가 찍은 날것의 필름들을 꺼내놓고 다듬는다. 오늘은 나의 순간을 어제는 당신의 찰나를. 세상의 영화처럼 시나리오, 연출, 연기 그리고 편집의 순이 아니다. 인생의 영화는 연기, 시나리오, 편집, 연출의 순이다. 인생의 시나리오는 끝이 감추어져 있다. 주연배우는 시나리오의 모든 컷을 다 찍었을 때 일이 끝난다. 언제 끝날지는 연출자만 안다. 연출은 신의 영역이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인생의 컷들은 차곡차곡 신의 하드웨어에 쌓였다가 마지막 씬을 찍고 나면 그 순간 빠르게 연결되어 주마등처럼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때 개인은 자신의 인생과 만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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