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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망각

전동균 시 <구석>

by 따시

사라지지 않는 망각으로 가득한 것

구석은 어두워요 환해요

구석은 따뜻해요 추워요

구석은 너무 넓고 깊어요

눈과 귀는 열리고 입은 닫히죠

전동균 시 <구석> 부분


프랑스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읽는다. 그의 책들에서 화자는 다양한 사유로 잊어버린 기억을 찾아 떠난다. 어떤 작은 실마리를 시작으로 출발한다. 문득 나의 망각을 찾아내고 싶어진다. 정말 내가 잊어버린 것은 세상에서 사라진 것일까. 보이지 않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일까. 그런 것들이 모여있는 곳이 구석이다. 쓰지 않는 물건들을 구석에 둔다. 먼지가 쌓이도록 잃어버리고 있다가 어느날 문득 기억하고는 반가워한다. 기억은 물건처럼 찾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의 뇌가 잊어버리기로 작정하면 그것은 내게서 떠나 구석으로 치워진다. 그러나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다. 구석에 머물다가 어느 순간 문득 느낌으로 나타난다. 기억의 구석은 정확한 사건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느낌으로 돌아온다. 잊어버린 사건을 느낌으로 저장해 놓는 곳이 구석이다. 따뜻한, 추운, 축축한, 보송보송한. 환한. 어두운 느낌. 살다가 비슷한 일을 겪을 때, 언제였던가 그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모든 삶은, 기억되거나 기억되지 않거나 하는, 사라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뇌가 구석으로 치워놓기를 원했던 것뿐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 <<지평>>을 읽다가 나의 어린애 시절을 찾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작은 실마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함께 기억해 줄 엄마는 이미 떠났다. 자매들은 얼마나 기억할까. 어린애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은 이름도 잊었는데 지금 만난다고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맞닥뜨리는 구석이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나의 사라지지 않은 망각 속에 남아있던 기억의 파편. 그럴 때 먼지 쌓인 구석을 뒤진다. 어떤 경우엔 찾아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엔 영영 기억해 내지 못한다. 어쩌면 그런 경우는 내게서 사라져 버린 망각 일 수도 있다. 이미 사라져 버렸다면 망각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내게 없었던 기억이다. 그런데 잊고 있던 기억의 구석을 애써 들추어 내야 할까? 잊고 있었다면 그냥 잊어버려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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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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