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피는 꽃도 꽃이다
어느덧 3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큰 문제없이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편과 나는 걱정이 많다. 놀이치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언제 예민함이 폭발하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 최선의 노력으로 학교에 적응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놀이치료 선생님께서 놀이수업에도 참여를 잘하고 있고 유치원 보다 초등학교에 더 잘 맞는 것 같다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계속 주시니 좋으면서도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다.
하지만 전화만 오지 않았을 뿐 교실에서의 모습은 선생님 말고는 알 수 없기에 마냥 안심할 순 없다. 저학년 담임을 할 때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을 많이 봐왔고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아주 심각한 상황 아니고는 부모님께 연락을 되도록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선생님께 연락하는 것이 쉽지 않듯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태권도 수업에 갔을 때 여전히 떼쓰는 모습이 보이고 집에서도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조금씩 자주 짜증과 떼를 보이는 것이 영 불안하다.
이 와중에 드디어 학교 설명회 즉 학부모회가 열렸다. 이 학교는 커서 그런지 각 교실에서 행사가 계속 이루어진다고 한다. 늘 학부모를 맞이하던 내가 학부모의 입장이 되어 학교를 방문하려니 기분이 묘하다. 이번 기회에 같은 반 부모님들과도 안면도 틀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날 날씨는 좋았지만 아직 쌀쌀해서 봄재킷을 입지 못하고 또다시 코트를 걸치고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이미 학교에는 잔뜩 멋을 부리고 가방에 옷에 힘을 준 학부모들로 붐볐다. 나도 그들 속으로 들어가 평범한 한 명의 학부모가 되었다. 곧이어 아이들이 하교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10년 넘게 지내온 익숙한 교실의 모습이었지만 내 아이의 교실이라 생각하니 뭔가 처음 보는 듯 새로웠다.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색칠하고 오려둔 작품들이 전시된 교실에서 내 아이의 책상에 앉아 내 아이가 보는 세상을 보니 괜스레 울컥한다. 서랍 속 아이가 서툴게 정리해 둔 교과서와 공책들도 들춰보고 매만져 보니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싶다. 학부모들이 아이들 서랍과 사물함을 살펴볼 때 정리가 안되어 있을까 봐 불안했던 교사의 마음과는 다른 부모의 마음.
방송으로 학교 설명회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께서 올해 학급 운영 계획을 이야기해 주셨다. 나의 엄마, 아이의 할머니 같은 친근하고 조그마한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떻게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곤조곤 알려주셨다. 1학년 선생님들 중에 내가 아는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차마 아는 척을 하지 못했다. 따로 만날 일도 없지만 우리 아이가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할지 몰라 되도록이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잘 생활해서 편하게 선생님들께 인사할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1시간이 조금 지나고 학교 설명회가 끝났다. 아쉽게도 학부모들과 인사하는 시간이 없어 결국 이번에도 같은 반 부모님들과 안면을 트지 못했다. 조금씩 학부모들이 빠져나가고 담임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얘기하는 분들도 계셨다. 상담 주간까지는 아직 한 달이 남아 잠깐이라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주변을 서성거렸다.
잠시 뒤, 선생님께서 혼자 계실 때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냐고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똑똑하고 잘하고는 있지만 아이의 힘든 부분도 이야기해 주셨다. 이미 예상했던 이야기들이어서 당황하진 않았지만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책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너무 집중하면 얘기를 잘 듣지 못하고 오전에 힘이 없어 보인다고 하셨다. 유치원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행동들이 학교에서도 보이고 있었고 약 복용으로 오전에 가라앉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선생님께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교실을 뛰쳐나간다거나 아예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모습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아 안도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 말씀이 날카롭게 가슴을 찌른다.
다른 아이들하고는 좀 달라요.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특별한 내 아이. 아직 선생님께 아이의 자세한 상태에 대해서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고, 약도 복용 중이지만 여전히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보이는 내 아이. 하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 앞으로 더 나아지고 좋아질 거라고... 엄마, 아빠가 끝까지 도와줄 거라고 다시 또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2025.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