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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밥 하나도 안 먹었어요

by 흰돌

봄이 진짜 왔나 보다. 따뜻한 햇살에 몸도 마음도 녹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브런치 작가도 되었고 아이도 잘 적응하고 있으니 말이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오르막에 있는 아파트에서 10분 정도를 산책하듯 가볍게 걸으며 든 기분 좋은 생각이다.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12시 50분에 맞춰 학교 후문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서로 재잘거리는 친해 보이는 엄마들 사이로 외딴섬처럼 아이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우리 반 아이들이 선생님의 뒤를 따라 병아리들처럼 급식소에서 나와 교실로 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를 보면 늘 환하게 웃어주던 아이를 찾았다.


그런데 중간에서 줄이 끊겼다. 뒷줄 앞에는 내 아이가 우두커니 서서 아이들을 가로막고 있었고, 아이들은 우리 아이의 이름을 신경질적으로 부르며 앞으로 뛰어 나갔다. 같은 반 친구들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온 아이는 뒷반 줄과 섞이더니 결국 혼자 벽에 몸을 비비면서 느적느적 교실로 향한다.


뭔가 기분이 싸하다.


곧이어 아이는 햇살에 눈이 부신지 오늘도 한쪽 눈을 찡그린 채 미어캣처럼 엄마들을 보며 두리번 거린다. 나를 찾고 있다. 나는 아이를 반갑게 맞이하며 오늘 어땠냐고 으레 하는 질문을 한다. 그런데 아이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튀어나온다.


오늘 밥 하나도 안 먹었어요


나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늘 조금 먹었다며 음식 투정은 했지만 그래도 밥을 먹지 않은 적은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아연실색하며 왜 안 먹었냐며 아이를 보챘다. 그러자 아이는 배가 좀 아파서 안 먹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작은 몸집에 작고 하얀 얼굴, 아직도 애기티를 벗지 못한 내 아이가 진짜 아기처럼 울어버린다. 태권도는 이따 가기로 하고 우선 아이를 달래서 집으로 향한다.


집에 와서 다시 물어보니 급식실 가는 길에 어떤 친구가 자기를 쳐서 기분이 나빴고 배도 아파서 밥을 안 먹었다고 한다.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렸냐고, 선생님께 급식판을 확인 안 받았냐고 나무라기 시작한다. 다음부턴 배가 아프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급식도 배가 많이 아프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그 친구에겐 행감바를 하라고 잔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우선 배고픈 아이의 배를 간단한 걸로 채워주고 태권도를 보내고 난 후, 아이의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얼마 전에 학부모 총회에서 뵈었고, 안심 알리미 때문에 전화 통화도 했었는데 또 전화드리기가 망설여졌지만 어떤 일 때문에 아이가 저랬는지 알고 싶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오늘 비빔밥이 매워 대부분 잘 먹지 못했고, 아이가 먼저 버린 후에 하나도 안 먹었다며 선생님께 안기며 말했다고 한다.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렸다는 사실을 알고 그나마 안심했으나 혹시 무슨 일이 있어서 그랬나 싶어 걱정되어 연락드렸다 하니 쉴 새 없이 오늘 있었던 일들과 그동안의 문제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쏟아내셨다.


오늘 도서관에서 고집을 부리며 혼자서만 책을 빌리지 않은 것, 수업 시간에 짝과 놀이를 하지 않으려 해서 혼난 일 등으로 토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급식 줄을 설 때부터 맨 뒤에 서고 제대로 따라오지도 않으려 했단다. 평소에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잘 안 하려 하고, 혼자 책을 보는 경우도 많으며 친구와 서로 양보하지 않아 다툼도 가끔 있어 보였다. 실내화를 벗고 다니기 일쑤고 책상 정리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단다.


나는 그저 아이가 또 무슨 일 때문에 떼를 쓰거나 한 건 아닌지 싶어 연락을 드린 거였는데 담임 선생님의 하소연과 같은 아이의 문제점들을 쉴 새 없이 들으니 멍해지기도 하고 민망해지기도 했다. 나는 죄송하다 집에서 잘 지도하겠다 하고 얼른 마무리를 지어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시는 먼저 전화하지 않겠다. 아주 큰일이 아니고서는.


나도 교직 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부모들은 아이의 얘기만 듣고 걱정이 커져 선생님께 연락을 하거나 민원을 넣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또는 다 지도된 부분이고, 사소한 일들인데도 연락이 올 때면 너무나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되도록이면 연락을 안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 보니 아이의 갑작스러운 모습에서 불안이 커지고 아무런 설명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아이의 말을 온전히 다 믿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희망을 본 건 마음대로 교실 밖을 나갔다는 말씀은 안 하셨다는 것. 아이가 여전히 학교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봄이 계속 이어지길 희망한다. 오늘 같은 일들이 반복되어 아이가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우리 가족에겐 다시 겨울과 다름없을 것이니 말이다.


선생님과의 통화가 끝나고 유치원 때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고 아이에게 또 폭풍 잔소리로 마무리를 했지만, 아이도 나름 노력하고 있고, 힘들고. 그럼에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음을 단단하게 먹자. 아이를 믿자.


모든 사람들은 꽃이고 내 아이도 언젠가는 활짝 피어날 소중한 꽃이므로.


2025.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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