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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운동회날

자녀를 바꾸기보다는 환경과 스케줄을 바꿔라

by 흰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부터 시작해서 아이와 나의 생일,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까지 있고 심지어 결혼기념일까지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적자가 날만큼 벅차지만 심지어 학교에서 운동회도 한단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규모도 큰데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같이 할 뿐 아니라 학부모까지 초대했다.


1학기에 행사를 모두 몰아서 할 작정인지는 모르겠으나 학부모 초청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유치원에서 여러 전적들이 있었기에 학교의 이런 공식적인 행사들은 우리에겐 두려움 그 자체다.


세 번째 산이 두둥하고 눈앞에 솟아오른다.


하지만 극복해야 하는 문제다.

언제까지나 회피하고 숨을 수는 없다.

과정은 힘들었어도 큰 행사에서는 잘해왔던 아이이기에 믿어보자.




그날이 밝았다.

아이가 등교하는 동시에 남편과 나도 교문으로 들어가 돗자리 깔 자리를 찾았다.

이미 많은 학부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운동장의 하늘은 만국기로 펄럭인다.


첫 번째 관문, 소음

청각에도 예민한 아이이기에 스피커의 시끄러운 음악과 마이크 소리가 자극이 될까 봐 걱정했다.

다행히 아이는 끝까지 잘 앉아 있었다.


두 번째 관문, 달리기

왜소하고 대근육이 느려 운동 신경이 부족하다. 운동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에 자존감이 낮아 거부하거나 울까 봐 걱정이 컸다. 하지만 아이는 씩씩하게 뒤에서 두 번째로 뛰어 들어왔다.


세 번째 관문, 소고춤

유치원 때도 공연 거부가 여러 번이었고 학교 창체 시간에도 관련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할 만큼 아이는 앞줄에 서서 정확한 동작으로 마무리 인사까지 퍼펙트했다.


마지막 관문, 단체 게임

마지막 저학년 게임은 색판 뒤집기였다. 단체 활동이나 협력학습을 힘들어했고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다. 하지만 보통의 아이들과 잘 섞여 멋지게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브라보!


남편과 나는 쌍따봉을 날릴 만큼 만족스러웠다. 모래밭에 앉아 기다릴 때 아이가 모래를 입에 가져다 대는 것에 걱정이 앞섰지만 나머지는 완벽했다.


의기양양하게 급식까지 마치고 나온 아이를 꽉 안아주고 폭풍 칭찬을 퍼부었다.

그때까지 오늘은 너무나 달콤해서 당쇼크가 오더라도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반전은 태권도장에서 일어났다.


아이가 오늘 피곤할 거라는 것을 예상하긴 했다. 구경만 한 남편과 나도 이렇게 녹초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집에서 좀 쉬다가 태권도를 보낼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문에서 태권도 사범님을 만났고 남편도 보내자 했으며 아이도 웬일로 바로 가겠단다.

불길한 예감을 애써 모른척하며 집으로 돌아와 비빔면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다.

2시 10분.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다.

평소처럼 알아서 올라올 거라 방심한 그때.

빠--앙

경적 소리가 울리고 솜털이 삐쭉 선다.


또 일이 생겼구나!


나는 급하게 1층으로 뛰어내려 간다.

학원차를 운전해 주시는 이모는 신경질이 묻어난 손길로 차문을 열고, 울면서 안 내리겠다 생떼를 쓰는 아이를 데려가라 한다.

나는 왜 우냐고 소리치며 민망함에 아이를 안고 급하게 집으로 향한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몇 번 있었지만 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태권도 활동 중에도 자기가 잘 못하거나 피곤하거나 하면 아기처럼 떼를 썼고 이렇게 학원차에서 끌려 나왔다.


민폐를 끼치고 너무 민망했기에 저번에도 학원을 그만두고 줄넘기 학원을 갈까도 했었다.

아이가 좀 더 다녀보겠다 해서 기회를 준 것이지만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아이는 오늘 학원에서도 달리기 같은 활동을 한다고 해서 거부했다고 한다.

혼자 구석에 앉아 울다가 왔단다.


왜 울었냐 하니 아까 운동회 계주에서 자기 팀이 져서 그렇다 하는데 무리하게 학원에 보낸 우리의 탓이었다.


자녀를 바꾸기보다는 환경과 스케줄을 바꿔라!


얼마 전에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아이의 성향과 기질은 바꾸기 힘들다.

같은 자극이 주어진다면 그 문제 행동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그 행동이 나타나지 않도록 주변 환경을 조절해야 한다.

그 역할을 부모가 해주어야 한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기에 학원을 바꾸어 환경을 바꿔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선생님 또는 교육 내용이 아이를 자극하거나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선생님과 친구들이 아이를 부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이건 아이에게도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


또한 아이의 컨디션을 늘 고려해야 한다.

특별히 피곤한 날에는 아이와 잘 소통해서 컨디션을 회복시킨 후 갈 수 있도록 하자.


결국 또 아이와 나의 눈물과 잔소리로, 달콤한 줄만 알았던 하루가 조금은 씁쓸하게 끝을 맺었다.


예민하고 쉽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예민하고 기민한 레이더를 늘 켜고 살아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가슴 한편에 아프게 새긴다.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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